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빠른 답장 고마워. 나도 이번엔 빠른 답장을 쓰려 하루 종일 네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이어 답장을 쓴다.
다니엘 오빠와 네가 테라스에서 소주 6병을 비웠다니, 숯불에 구운 꼬치구이라면 6병은 순삭(!!)이었겠다. 완벽한 만취의 행복을 얻은 다음날은 두통과 울렁거림... 감수해야 할 고통이지. 그러고 보면 모든 쾌락에는 어느 정도의 책임이나 고통은 늘 뒤따르는 것 아닐까?ㅋㅋ 숙취 하면 이도연, 이도연 하면 숙취인데 최근에 다이어트를 하면서 운동+식단 관리를 꾸준히 한 탓인지 평생 고질병처럼 앓던 숙취가 없어졌어.(이건 기적이야!!) 요즘 나도 소주 3병쯤 마시는 편이야. 오빠도 소주를 잘 마시는 사실을 알았으니 다음에 파나마에서 한잔하게 될 때는 소주를 두둑이 사두자.
채리와 다니엘 오빠, 둘 다 에이형이라는 재미있는 사실. 나도 남자 친구도 둘 다 에이형이야... 심지어 MBTI에서 나는 ENFP, 남자 친구는 INFP. 엔프피, 인프피라고도 불리는 이 두 성향은 너무나 비슷한데, 외향형인가 내향형인가의 차이라고 해. 물론 모든 면이 같을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 피의 성질, 성향이 비슷한 형태라는 통계를 나는 믿어. 나는 혈액형이나 MBTI 같은 성향 이야길 좋아하는 사람이야. 너도 알지?ㅋㅋ 그런데 남자 친구는 보통의 남자들처럼(?) 혈액형이나 MBTI 말만 꺼내도 질색을 해서 피의 성질에 대해선 되도록이면 말 안 하려고 해. ("그런데 그거 아니? INFP가 MBTI 검사지를 주면 이런 거 도대체 왜 해? 그걸 믿어?라고 해놓고 제일 열심히 하는 유형이래ㅋㅋ"라고 했다가 정말 싸울 뻔했어.)
부부싸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요즘 서른여섯이나 나이를 먹고, 그리고 또 연애라면 질리도록 했는데 아직도 연애나 관계에 대한 성숙도가 너무 낮은 것 같아서 생각이 많았어. 남들한테는 쿨하고 멋지고 착하고 배려 깊은 나인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팍팍하게 굴고, 소심하고, 안 쿨하고, 이해 안 해주고 더럽게 치사한 건지. 꽁한 A형의 나쁜 성질만 똘똘뭉친 나라서 그런가? ^^ 그만큼 기대를 하고 기대기 때문일 테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많이 이해해주고, 품어주고 배려해주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숙해져 가길, 오늘도 반성하며 잠에 들어야지.
다니엘 오빠의 자유 남편 데이는 잘 보내셨나 모르겠네. 그러고 보면 코로나 덕분이라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빠도 엄마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시호의 나날이 커가는 모습을 하루도 놓치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어서 불행 중 다행히 아닌가 싶어. 파나마에도 어린이 집 같은 어린이 돌봄 서비스 같은 게 있다고 했지? 시호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가 되면 코로나가 잠식되어서 공원도 산책하고 친구들도 사귀었으면 좋겠다. 그때에도 시호는 엄청 사랑스럽겠지? 첫째 조카가 5살이 되었는데 말도 잘하고 어찌나 귀여운지 몰라. 그때는 또 그때만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장착하면서 자라니까 말이야. 시호가 "도도 이모 안녕하세요~" 하며 만나는 날을 기다려볼게.
한국은 지금 일요일 밤, 오늘도 남자친구의 병간호(라고 쓰고 병원밥을 축내러 다녀왔다 적는다)를 다녀와서 밀린 글을 쓰다 잠들려 해. 채리도 주말 마지막 밤을 천사 같은 시호 곁에서 꿈같은 하루를 보내길 :)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