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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an 03. 2019

외로운 게 너무 좋아

로맨스가 필요해3, JTBC 2012






친구가 어느 날 새벽에 youtube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 주연과 주완이 처음 술을 마시는 장면이었다. 주연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고, 주완이 그녀의 앞에 앉아 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냐고 질문했다. 주연은 쏘아붙였다.



"이 시린 겨울밤,

친구도 없이, 애인도 없이 술을 마셔서
내가 불쌍하고 쓸쓸해 보여요?
그래요,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요."



이 장면을 몇 번을 돌려보는데 서러움이 복받힌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기분에 휩싸여 마음속에 서리가 끼도록 시린, 숱한 밤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 넓은 지구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지독하게 잔인하다. 그리고 그 잔인한 현실이 왜 나를 향해 있는 것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원망하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엔 온통 잘 어울리는 커플이 럽스타그램을 해시태그 하고,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평생 배필을 만나 연락이 끊어진지 오래되버린 어느덧 서른의 중반. 20대에 외로움은 ‘날 좀 봐줘!’ 관심의 갈망이었다면, 삼십 대의 외로움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생각에 시린 마음이다. 불현듯 초라해진다 .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존감이 바닥을 친 후 회사에 사표를 쓰고 온전히 혼자인 시간을 보내며 철저한 고독 속에서 2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나는 ‘자발적 유배’라고 표현하는데. 자발적 유배의 시간 동안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했고, 나에게서 사랑을 뺏어간 하늘과 신을 원망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사랑받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았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지긋지긋한 사랑 같은 것 영원히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이렇게 간절해 질지 모르고 말이다.



"어차피 세상은… 나 혼자거든요.
같이 있어도 혼자잖아요. 우리는.
나는 사랑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려고 태어났어요.
그리고 나는요. 외로운 게 너 – 무 좋아!"






고독을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그 고독의 시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는지를.

 2016년 5월이었다. 연고도 없는 통영에 내려와 혼자 사계절을 보내고 또 두 계절을 보냈다. 서른이 넘어 뒤늦게 발견한 취향이지만 나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큰 미련은 없지만 손안에 모래처럼 빠져나간 술 값과 관계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혼자서 고독했
던 시간들이 나로서는 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혼자된 김에 더 철저히 혼자가 되려 내려간 통영에서 나는 한 가지를 얻어서 돌아왔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내가 혼자라 생각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나에게 어깨를 두드려주는 이들이 곁에 있었다는 것. 가족도 친구도 그 먼 곳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와 나와 소주 한 잔을 같이 기울여주었고 내 이야기에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같이 눈물지었으며, 함께 웃었다.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내 곁을 늘 지키는 강아지 한 마리와 내가 기르던 귤나무 대추나무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잔디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견디게 한 것은 책이었지만, 모두 나를 위로했고 나를 성장시켰다. 나는 믿는다. 내가 혼자 고독 속에서 흘려보냈던 시간이 좋은 에너지가 되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분명한 사실을. 그래서 나는 가끔, 외로운 게 너무 좋다.

 주연의 대사처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태어난 건 더더욱 아닐 것이다. 사랑을 받는 것 만이 존재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태어난 이유가 어찌 됐건 이 세상에 숨 쉬며 사는 이상, 사랑은 ‘해야만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는 모든 것에 이 한 몸을 던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냥 외로우면 된다. 외로움과 고독은 단언컨대 너-무 좋은 것이니까.


당신은 혼자이면서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책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중



사 발췌 : 로맨스가 필요해3, JTBC 2012  /  극본 정현정


드라마 명대사를 인용하여, 작가 개인의 삶을 이야기 한 에세이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의 브런치 연재 글을 모아, 브런치 북으로 재 발간합니다. 출간 후, 작가가 직접 일부 수정하였으므로 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왜울'의 종이 책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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