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my" only Reality
그는 내가 그가 떠올리면서 웃을 만한 기억이 되기를 바랐다.
이미 진행 중이지만, 나는 그 “기억"이라는 단어가 버거웠다.
인간의 메모리. 는 과거에 근거하지만, 그 과거의 패턴으로 미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전제 하에, 그는 나를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오히려 더 보장할 뿐이었다.
나를 깔끔하게 보내주려는 그의 마음이 고마운 방식으로, 차마 쉽게 수긍할 수 없는 그 사각지대에서 나는 항상 울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 대한 관념에 더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 대해 이 정도까지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은 꽤 여러 차원으로 많이 생각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서술하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 정보가 많이 읽히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떠한 사람을 상상하는 영역은 내 자유이기에, 그가 부재할 때 나는 그에 대한 추측과 행동에 대한 묘사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가 존재할 때에는 그가 내 눈 앞에 차지하는 공간과 질량, 그의 의식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방식으로 그를 마음 놓고 읽을 수 없는 방식으로 그의 실재를 드러내는 목소리와 표정, 눈빛, 행동 등에 그렇게 매료되고는 했다.
그렇게 의식이 포장하는 인간과, 감당해내야 하는 인간은 아주 다른 “가치"를 가지는 방식으로
나는 내가 묘사하는 그와 감당해야 하는 물리적 향기를 매우 사랑했다.
사
랑
개념이 좋아 보여서 사용하기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그 개념이 사람을 포함하는 순간, 아주 변질되기 쉬운 형태로 변한다.
어쩌면 사람의 개입을 포함하지 않은 채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사랑"이어야 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라고 하는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물론 곁에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거리가 떨어져도 그 사건으로 인해 섭섭한 감정을 가지지 않고, 그가 세상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유지되도록, 내 wish나 act of hoping something 이 결코 그 삶의 자기장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도, 적어도 그를. 그의 세상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게, 그렇게 하는 방식으로 그가 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 준 것처럼, 자유로울 수 있게, 놓아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정의하는 아까 전이 지난 지금은 멋지게 포장해도 되지 않으니까, 마음껏 그냥 후회하면서
실질적으로 너를 잊고 살 수 있는 그 기약 없는 시각까지, 나 그냥 혼자 그리워할래.
정의해서 구분할 수 있는 글의 영역이랑, 살아내야 하는 영역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이렇게 깨닫는 방식으로 나는 인간으로 사는 것 중에 가장 어려운 건,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식을 조정하여 나를 우선순위로 둘 수 있게 하는 물리적 힘도 필요하지 않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보다 친밀했던 관계가 아니라 한 인맥으로서 그에게 고마운 건, 내가 부족한 사회적 능력을 보고 무시해주는 방식으로 내가 스스로 인지하고 변할 수 있게 기다려 줄 수 있었던 시선과 여유였다.
늘 잘 삐지고, 혼자 토라지고, 대화보다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고,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만 대화가 가능한 나라는 성질을 나 스스로 자각하는 방식으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게 모른 척해주고, 여전히 웃으며 잊어줬던 그 기억으로 나는 나의 그런 모습을 감당해주는 타인으로 인해 내 태도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또한 그가 주변에 있어서 가능한 조건화의 요소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나는 다시.
나로 살고 있었다.
다시 살고 있다 나는.
살아내고 있다.
그렇게 인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소유격"에 대한 개념을 잊고 살았었는데, 내가 “소유"했다고 착각한 것들이 단지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방식으로, 그 소유에 대한 개념은 전적으로 나에게서부터 정의, 소용된다고 전제했을 때,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은 “인생"이지만, 내가 “내" 인생이라 정의하는 건 “당신"과의 1년이었다고.
"Radiohead- Exit Music (for a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