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요.
밤이 불안하면
일요일 오후 두 시
시끄럽지 않은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를 상상해.
20분 마다 깨서 울어야 하면,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으면
그래서 30일 뒤에 오후 4시에
친구를 만나서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
어제 뿐이었던 인생에서
현재가 보장하는 과거의 패턴과
알 수 없음이 보장하는 불안함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 시점에는
버티고 있는 저장된 기억과 기록이
있었지만,
그것의 소용은
어디까지나 이 개체의
안녕에 근거했다.
내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묘사와 비유와 무관하게
현실은 발이 붙어있고, 그리하여
시선이 머물고, 그리하여 배가 부르고,
결과적으로 잘 잠드는
프레임의 더도 덜도 아닌 방식으로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목적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에는
그 일이 집중에 비례하여
그리고 일말의 운에 비례하여
이루어지기도 했다.
일어나야 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났으며,
일어나지 않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보잘것 없이 일그러진
이 인생도 인생이어야 한다면,
그리하여 일말의 부모님의 희생과
그래도 하는 기대에 대한 양심이 있어야 한다면,
그리하여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홀로 이고 지고, 잠이 오지 않음에
떠밀려서 일어나, 살기 싫다는 입버릇도
밥은 먹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깨달을 때,
아무것도 아닐 수가 없는 그
이성적인 팩트에 의해
막 부서진 것 같은 인생도
붙어있는 숨에 의해
지켜야 하는 가족들에 의해
살아져야 했다.
이토록 부정적인 글을 조합하다가
깨달아야 하는 건,
굳이 멀쩡한 프레임을
이런식으로 조합하는 주체와
그를 인지하는 객체 모두
"나"라는 사실이었고,
얼마나 이 인생을 불안하게 묘사하든,
얼마나 그 인생들을 멋지게 찬양하든,
내 인생은 철저하게 이쪽 인지 개체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었고,
타인에 기생하여 존재하는 것 같은
나의 목소리, 나의 표정, 나의 불안한 눈짓은
타인의 가장 적은 주의 속에서나 있을 법한 방식으로
나는 타인에 "의해" 존재하려고 했던
모든 시간들이 결국에는
그 타인들이 자기에게로 관심을 돌리는 사이
다 증발한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알던 사람이기를 포기할 때,
나는 울어서 기댈 사람조차
기대하는 것이 실제로 허상임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흘릴 수 없어진
눈물이 고여, 불안이 되고, 겁 많은 인생이
되는 방식으로 그 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기대하는 만큼
그 기대에 의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도
존재할 수 있고,
꾸준히 오래 서로를 믿고
"사람"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공간과 시간에 있어봐야 아는 것들이자,
공상 속에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것인 방식으로
나는 이미 온점을 찍은
일기장을
내가 내일을 인지할 수 있고,
그리하여 오늘을 오늘이라고
알아서 현재에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한
그만 쓸 수 없음을 아는 방식으로
이제는 멀어진 타인에 대한
비이성적 집착이 슬슬
옅어지는 이 때
나는 한 개체가 인지하는 문제는
단순히 그 현재 1과 현재 2의 위치가
어긋나 있어서라는 것을 알고는 한다.
내가 아직 그 곳에 있고,
그를 부를 수 있는 합리적인
거리에 존재한다면, 이런 일련의 감정적 문제,
실존적 아픔, 후회와는 별개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때의 내 "현재"를
지킬 발판을 마련하지 않았기에,
그 때의 벅찬 사랑으로 이별의 시간을
달콤하게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이제 좀 현재가 내 인지체계에
들어오면서 다시 깨달아야 하는 건,
내가 돌아온 날 이미 내가 지금 인지해야 하는
그 잘난 "현재"의 체계로 입장하였다는 것과,
내가 30일 동안 부인하였든, 100일 동안 부인하였든,
생명체계의 불일치로 인한 병을 막기 위해서는
시간이 약이어야 하고,
그리하여 나도 그를 잊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겨야 함을 깨닫는 방식으로
너무 싫은 현재를
어떻게 멀쩡하게 버텨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현재를 사는 방식으로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에 대한 희망없이는
버틸 수 없다고 여겨지는
무언가가 동력이 되어
나는 결과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임을, 그리고 그렇게 일치시킨
삶을 이토록 쉽게 놓아버리는 일은 없을 것임을
나에게 약속한다.
이제 덜 울릴게.
더 웃길게.
나에게도
그에게도
"사랑"이 "상처"가
되게 해서 미안하고,
우리가 "잊을 만 한" 현재를
살고 있어야 한다면,
다음에 우리가 만나는 시공간에서는
나 돌아오지 않을거야.
다시 만나자. 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