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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Nov 08. 2020

가진 게 뭔데요

지금이요.

밤이 불안하면

일요일 오후 두 시

시끄럽지 않은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를 상상해.



20분 마다 깨서 울어야 하면,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으면

그래서 30일 뒤에 오후 4시에

친구를 만나서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



어제 뿐이었던 인생에서

현재가 보장하는 과거의 패턴과

알 수 없음이 보장하는 불안함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 시점에는

버티고 있는 저장된 기억과 기록이

있었지만,


그것의 소용은

어디까지나 이 개체의

안녕에 근거했다.


내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묘사와 비유와 무관하게

현실은 발이 붙어있고, 그리하여

시선이 머물고, 그리하여 배가 부르고,

결과적으로 잘 잠드는

프레임의 더도 덜도 아닌 방식으로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목적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에는

그 일이 집중에 비례하여

그리고 일말의 운에 비례하여

이루어지기도 했다.



일어나야 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났으며,

일어나지 않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보잘것 없이 일그러진

이 인생도 인생이어야 한다면,

그리하여 일말의 부모님의 희생과

그래도 하는 기대에 대한 양심이 있어야 한다면,



그리하여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홀로 이고 지고, 잠이 오지 않음에

떠밀려서 일어나, 살기 싫다는 입버릇도

밥은 먹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깨달을 때,



아무것도 아닐 수가 없는 그

이성적인 팩트에 의해

막 부서진 것 같은 인생도

붙어있는 숨에 의해

지켜야 하는 가족들에 의해

살아져야 했다.



이토록 부정적인 글을 조합하다가

깨달아야 하는 건,

굳이 멀쩡한 프레임을

이런식으로 조합하는 주체와

그를 인지하는 객체 모두

"나"라는 사실이었고,



얼마나 이 인생을 불안하게 묘사하든,

얼마나 그 인생들을 멋지게 찬양하든,

내 인생은 철저하게 이쪽 인지 개체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었고,

타인에 기생하여 존재하는 것 같은

나의 목소리, 나의 표정, 나의 불안한 눈짓은

타인의 가장 적은 주의 속에서나 있을 법한 방식으로

나는 타인에 "의해" 존재하려고 했던

모든 시간들이 결국에는

그 타인들이 자기에게로 관심을 돌리는 사이

다 증발한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알던 사람이기를 포기할 때,

나는 울어서 기댈 사람조차

기대하는 것이 실제로 허상임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흘릴 수 없어진

눈물이 고여, 불안이 되고, 겁 많은 인생이

되는 방식으로 그 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기대하는 만큼

그 기대에 의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도

존재할 수 있고,

꾸준히 오래 서로를 믿고

"사람"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공간과 시간에 있어봐야 아는 것들이자,

공상 속에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것인 방식으로



나는 이미 온점을 찍은

일기장을

내가 내일을 인지할 수 있고,

그리하여 오늘을 오늘이라고

알아서 현재에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한

그만 쓸 수 없음을 아는 방식으로



이제는 멀어진 타인에 대한

비이성적 집착이 슬슬

옅어지는 이 때



나는 한 개체가 인지하는 문제는

단순히 그 현재 1과 현재 2의 위치가

어긋나 있어서라는 것을 알고는 한다.



내가 아직 그 곳에 있고,

그를 부를 수 있는 합리적인

거리에 존재한다면, 이런 일련의 감정적 문제,

실존적 아픔, 후회와는 별개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때의 내 "현재"를

지킬 발판을 마련하지 않았기에,

그 때의 벅찬 사랑으로 이별의 시간을

달콤하게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이제 좀 현재가 내 인지체계에

들어오면서 다시 깨달아야 하는 건,

내가 돌아온 날 이미 내가 지금 인지해야 하는

그 잘난 "현재"의 체계로 입장하였다는 것과,

내가 30일 동안 부인하였든, 100일 동안 부인하였든,

생명체계의 불일치로 인한 병을 막기 위해서는

시간이 약이어야 하고,

그리하여 나도 그를 잊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겨야 함을 깨닫는 방식으로



너무 싫은 현재를

어떻게 멀쩡하게 버텨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현재를 사는 방식으로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에 대한 희망없이는

버틸 수 없다고 여겨지는

무언가가 동력이 되어

나는 결과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임을, 그리고 그렇게 일치시킨

삶을 이토록 쉽게 놓아버리는 일은 없을 것임을

나에게 약속한다.



이제 덜 울릴게.

더 웃길게.

나에게도

그에게도



"사랑"이 "상처"가

되게 해서 미안하고,

우리가 "잊을 만 한" 현재를

살고 있어야 한다면,

다음에 우리가 만나는 시공간에서는

나 돌아오지 않을거야.



다시 만나자.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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