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Mar 28. 2019

계절과 계절 사이

겨울 뒤에 봄이 오고,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새로운 계절이 오듯.




계절과 계절 사이엔 언제나 비가 내렸다.


곧 계절이 바뀌겠구나. 비가 한바탕 시원하게 내리고 나면, 지난 계절은 서서히 흩어졌다. 나는 겨울과 봄 사이에 내리는 비가 좋다. 곧 봄이 온다는 생각에 겨울의 끝자락에 내리는 비가 그저 반갑기만 하다.


계절은 때가 되면 찾아왔다가 또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떠나가는데,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왜 이렇게 설레고 반가운지. 봄이 온다는 믿음만으로 겨울의 끝자락은 괜히 희망찬 시작이 되었다.






핸드폰에 그녀의 이름이 뜨면 둘 중에 하나였다. 사랑을 시작했거나, 아님 사랑이 끝났거나. 그녀와 나는 꼭 그럴 때만 연락을 했다. 각자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겨야만 연락을 하는 사이랄까. 우리의 독특한 인연은 학창 시절 같은 남학생을 좋아하며 시작됐다. 당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서로 울고불고했는데, 남학생이 다른 여자애와 사귀는 덕에 우리의 우정은 전보다 더 깊어졌다. 첫 단추가 애정문제로 끼워져서인지, 우리가 나누는 주된 얘기의 주제는 어째 시간이 지나도 사랑이었다.


그녀와 한 번 통화하면 기본이 두 시간이었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다 큰 애들이 밤을 새 가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우리의 대화가 긴 것은 일 년에 한두 번 전화하는 탓도 있었는데, 대화 주제가 어딘가 철학적이고 심오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진실한 사랑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같이 정확하게 답이 떨어지지 않는 대화였다. 그윽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랑에 대한 질문은 보통 그녀 입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 방대한 질문들의 답은 간결했다. 사랑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한 사람만 사랑하며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다는 희망이 담겨 있는 질문이었다. 우리가 새벽 내내 졸음을 참아내며 어딘가 대책 없는 사랑 토론을 하는 건, 질문 뒤에 숨겨진 서로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5년이 넘도록 사랑을 찾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그녀의 희생적인 사랑을 쉽게 대했고, 또 다른 사람은 이유 없이 그녀의 연락을 단절해버리기도 했다. 어떤 관계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또 어떤 관계에선 그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쉽게 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어려울까,

나도 사랑을 할 수는 있을까 하는 말을 하고 숨죽여 울곤 했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보일만큼 울고 나면, 그녀는 신기하게도 사랑은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언젠가 예쁜 사랑이 자신에게도 찾아올 거라는 희망 어린 고백을 했다.


그녀와의 전화는 언제나 넋두리로 시작해서 사랑을 향한 믿음으로 끝났다.







그녀가 전화를 마무리하며 항상 하는 말, 사랑에 대한 희망은 전화가 끝나고도 내 가슴에 맴돌았다. 그녀가 사랑에 아파할 때마다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사랑에 있어 언제나 헌신적이고 순수한 그녀의 사랑 법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를 생각할 때면, 그는 마치 계절과 계절 사이에 서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은 아픔 속에서 조금씩 배워간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녀도 그런 의미에서 겨울의 끝자락에 내리는 비,

그 비를 맞고 서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나는 믿는다.

겨울 뒤에 봄이 오고,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새로운 계절이 오듯,


그녀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거라고.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청민의 말:


오늘은 유난히 힘든 날이었습니다.


아마 아침 일찍 했던 어느 실수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 실수 하나가 오전 내내 저의 감정을 앗아갔기 때문입니다.


시야를 달리해 생각해 보면,

오늘 아침의 어느 실수는 제 인생 전체에서 보았을 땐 점 같이 작은 존재이지만,

저는 그 점 같은 존재에 하루 종일 마음을 쏟았습니다.


찰나의 순간은 어쩌면 이렇게 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바람결이 따스합니다.

봄이 오나 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계절과 계절 사이에 서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봄바람에 저의 작은 바람을 실어 보냅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그리고 목요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mail _ romanticgrey@gmail.com

insta _ @w.chungmin

댓글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