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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Sep 05. 2020

입학식을 앞둔 스무 살의 봄

#5. 스물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 믿었던 외로움을 여전히 안고 삽니다


#청민의플레이리스트

다린의 '저 별은 외로움의 얼굴'과 함께 들어주세요. 지난겨울, 우연히 듣게 된 이후 사랑하게 된 노래입니다. 조용한 새벽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딘가 쓸쓸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우리 둥글게 앉아 손을 맞잡으면 가리워진 길 눈 앞에 보일까 아무도 모르는 그대 외로운 밤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듯해도 작은 후회 안부처럼 돌아와 길을 묻지 너의 매일은 내일의 빛이었다고.' - 외로운 밤을 보내는 분들께, 보내는 노래입니다.







입학식을 앞둔 스무 살의 봄, 아빠는 말씀하셨다.


딸. 새로운 사람들 사귀는 일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람은 사실 다 외로운 존재거든. 네 눈엔 대학에서 만난 모두가 다 행복해 보이고 빛나 보이겠지만, 다들 보이지 않는 외로움을 가슴 한켠에 다 안고 살거야. 물론 너는 알아챌 수 없겠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말을 걸어 보렴. 용기를 내고 먼저 다가가 보렴. 어쩌면 네 생각과는 다르게 네 인사를 반가워할지 몰라. 사람은 모두 외로움을 갖고 사니까,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용기를 가져도 괜찮아. 서로의 외로움에 말을 걸어주고, 그렇게 친구가 되는 거란다.


새로운 세계의 입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두려움에 떠는 스무 살의 내게 아빠의 말은 사실 뜬구름 같았다. 아빠의 말을 들으며 나는 부모란 자식에게 언제나 이상향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괜찮다'는 아빠의 말은 요즘 애들을 잘 모르는 어른의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무 살 현실을 사는 내게 그 말은, 말 그대로 이상향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서른이 된 지금, 아빠의 이야기가 자주 떠오른다. 그 사이 나는 그렇게 커 보이기만 했던 대학을 졸업했고, 몇 번의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짧은 프리랜서를 거쳐 직장인이 되었다. 몇 번이고 새로운 세계에 들어갔고, 그때마다 크고 작은 마음의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일 그리고 새로운 사람에 적응하는 일. 그렇게 십 년을 문을 열고 닫으며 살았다. 그 시간을 지나고 돌아보니, 이제야 아빠가 했던 말이 옳았음을 깨닫는다.




나이가 늘어남에 따라 만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만날 수 있는 사람도 함께 줄어들고, 누군가와 약속 한 번 잡는 것도 각자의 상황에 쉽지 않은 날만 늘어난다. 결혼한 친구들과의 약속도, 오래된 인연들과의 시간도. 예전에는 쉬웠던 일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어렵게 잡은 약속들이 각자의 이유들로 취소가 될 때면 나이가 늘어난다는 건 어쩌면 생활 반경은 점점 좁아지고, 새로움은 줄어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가는 게, 어떤 작은 공간에 갇혀 쳇바퀴 구르듯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지나는 게 아닐까, 하는 뭐 그런 생각.


스물이 지나면 외로움은 사라질 거라 믿었던, 어리고 여렸던 시절이 있었다. 서른의 나는 여전히 그 외로움을 한 켠에 안고 살고, 앞으로 모두 그럴 것임을 알고 있다. 서른의 나는 스물의 나는 몰랐던 순간을 알고 있다. 나만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 모두 말하지 않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래서일까. 누군가 가진 외로움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우연한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어딘가 울적하고 어딘가 뜨겁기만 하다. 정말 사람은 아빠 말씀처럼 모두 누군가 와서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존재들일까, 어느 밤엔 그런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저 사람과 시간을 쌓아서 언제 마음을 터놓을까 하는 생각, 저 사람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사람을 마주할 때 느끼는 어색함, 경계, 어설픈 계산 모두. 다 모르겠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은 좀 즐겁고 싶다. 내일 일은 잘 모르겠고, 오늘의 웃음에 조금 기대고 싶다. 별 것 아닌 걸로 어색하게 웃고, 할 말 없어서 시답잖은 날씨 얘기만 하고, 작은 컵에 담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상대를 계산하지 못하는 어설픈 시간까지.


살다 보니 혼자라서 즐겁지만 혼자라서 충분하지 않은 순간들과 작은 웃음으로만 채워지는 삶의 구간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날이면, 작은 말을 건넨다. 오랜만에 만난 인연에게도 어떤 침묵이 외로움을 낳지 않도록 가벼운 안부를 묻는다.


'사람은 모두 혼자'라던 한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당신이 아니고 당신은 내가 아니니까. 선배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혼자겠지만, 그래서 우리가 함께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서로의 외로움에 귀 기울이며 조금은 덜 쓸쓸하도록 안부를 건네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두 혼자인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 외로움을 오늘의 어설픈 웃음에 기대어 지나가는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웃음이 필요한 요즘. 아버지와 글 한 편, 영화 한 편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입학식을 앞둔 그 스무 살의 봄처럼. 아빠는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그럼에도 잘 컸다고, 잘 살아내고 있다고 다시 격려할까. 보고 싶은 얼굴이 늘어나는 밤이다.






청민│淸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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