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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Oct 03. 2020

퇴근 후, 작은 캠핑을 떠납니다

#33.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방법


퇴근 후, 자주 공원에 간다.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 미리 만들어둔 저녁 도시락과 물 그리고 얇은 책 한 권을 바리바리 챙겨,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일몰까지 남은 시간은 두어 시간. 빨리 움직이면 가볍게 밥을 먹고 노을을 맞으며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자주 가다 보니 좋아하는 구석이 생겼다. 내가 애정 하는 구석은 호수가 보이지만,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계단 끄트머리.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자전거를 주차하고, 그 앞에 가져온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한다. 처음엔 요령이 없어 간단한 테이블을 조립하는 데 시간을 다 썼지만, 이젠 5분 만에 뚝딱이다. 머리는 온종일 쓰느라 에너지가 다 했으니, 이제는 몸이 바지런히 움직여줘야 할 시간.     


여름은 해가 길어 좋다. 앉아서 챙겨 온 도시락을 까먹으며 호수와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해와 사람들을 구경하며 멍을 때린다. 퇴근해도 아직 퇴근하지 못한 정신을 그냥 멍하니 내버려 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도록, 회사에서 챙겨 온 잔열이 툭툭 털어지도록. 손가락은 기계처럼 반찬을 집어 입으로 넣고, 입은 손이 넣어준 반찬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일하면서 써버린 에너지를 채운다. 입으론 먹고 머리는 멍하게. 각자가 원하는 식량을 채워준다.     


가끔 이렇게 작은 캠핑을 떠난다. 비록 근처 공원이고, 해봤자 회사와 멀지도 않지만. 마음을 빠르게 환기하기 위해 고안한 나름의 루틴이랄까. 퇴근을 하고 집에 와도 자꾸만 회사에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온종일 달렸던 머리가 퇴근 결승선을 넘고도, 달려왔던 속도 때문에 잘 멈추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날은 금방 멈췄지만, 또 어떤 날은 한 시간이 넘게 멈추지 못한 날도 있고, 회사에서 실수를 한 것 같은 날에는 밤새도록 달리기도 했다.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날에도 잔열 같은 달리기를 계속하는 날이 생겨났다.     


직장인이 되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일상에 작은 버튼들을 숨겨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소진되었을 때, 썩 좋지 않은 감정과 스쳤을 때, 나를 단박에 안전한 마음으로 이동시켜 줄 버튼 말이다. 퇴근을 했는데도 퇴근하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 때면, 집에 돌아와 다시 작은 캠핑을 떠났다. 몸이 마음을 대신해 부지런을 떨었다. 캠핑의자와 테이블을 챙기고 김밥을 한 줄 사고,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공원의 좋아하는 구석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지는 해를 보며, 그것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오늘 나와는 다르게 느리게 느리게만 흘러간다. 지는 햇빛을 품은 호수의 물결처럼 사람들도 결을 이뤄 잔잔히 흐른다. 여기만큼은 세상의 시간이 잠시 비껴간 것 같기도 하다. 느리고 잔잔히 흐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으로 오늘의 기분을 씻는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저 그런 기분이든. 내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오늘의 기분을 마무리한다. 좋아하는 계단 끄트머리에 숨겨놓은, 나만의 작은 버튼을 꾹 누르면서 오늘의 균형을 맞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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