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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Oct 09. 2020

식물을 키우는 마음이란 뭘까?

#38. 계속 마음을 써야지.

처음엔 외로워서였다. 퇴근 후 돌아온 집이 쓸쓸하게만 보여서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피스텔 촌 사이에 겨우겨우 끼여있는 나의 네모난 공간. 불이 꺼진 집에 돌아와 어둠 사이에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며 더듬더듬 손 끝으로 벽을 짚으며 불을 켠다. 오늘 아침 정신없이 나간다고 어질러져 있는 이불과 쌓인 설거지, 귀찮아서 개지 않고 내버려 둔 빨랫감을 마주한다. 나를 외롭게 했던 건 바닥에 뒹구는 허물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이런 공간에 유일한 생명체가 '나' 뿐이라는 것. 숨 쉬고 온도를 갖고 시시각각 변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가 나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혼자 사는 친구들이 식물을 키운다는 소리를 듣고 선인장 두 개를 데려왔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집이라, 씩씩하게만 자라 줄 식물이 필요했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선인장이 제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몇 달 을 못 버티고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한 달에 한 번 잊지 않고 물을 주었는데, 뭐가 문제일까. 그들이 죽고 다시 선인장 둘을 데려 왔다. 이번엔 기필코 오래 키워보겠노라 다짐하면서. 하지만 그들도 몇 달 후 줄기가 마르더니 죽은 빛을 뗬다. 멀쩡한 생명을 끝냈다는 미안함과 더불어, 여긴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곳인가 하는 허탈함에 며칠 가슴 한쪽이 서늘했다.


월급 날이 물 주는 날임을 잊지 않기 위해 이름을 이렇게 지었었다. 늦었지만 미안해.


나와 달리 다보의 식물은 잘도 자랐다. 그의 가게엔 빛이 잘 들었다. 특히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 오후의 아름다운 빛들이 공간으로 쏟아졌다. 다보는 산세베리아와 이름 모를 작은 나무 같은 화분을 키우는데, 그의 일터에 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그들을 보며 신기했다. 역시 내 선인장들이 죽은 건 빛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다보에게 물었다.


"어쩜 이렇게 잘 자라? 어떻게 키운 거야?"

"그냥 키우는 거지. 매일 물 주고 자리 바꿔주며."


우리 집에선 키우기 쉽다는 선인장도 맥을 못 추리는데, 다보의 화분은 어쩜 이렇게 생명력이 넘치는 걸까. 눈 앞에 놓인 생명이 아름답다가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식물을 키우는 마음이란 뭘까? 어떤 마음으로 키워야지 이렇게 자랄까?"

서걱서걱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말했다.


"계속 마음을 써야지."

내가 마음을 쓰지 않아서 선인장이 넷이나 죽었을까.


"식물은 물을 주고 자리를 바꿔줘야 해. 사실 되게 귀찮고 불편해. 특히 매일 물 주기 엄청 귀찮아. 바쁘면 잊을 때도 있고. 근데 키우다 보니까 정이 붙는다? 얘네는 매일 변하니까. 물을 안 주면 잎이 마르기도 하고, 잎이 떨어지기도 하고. 변화가 있잖아. 사람이나 계절처럼."


다보네 가게에 놀러 올 때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화분에 물을 꼬박꼬박 줬다. 무심한 듯 툭 하는 행동처럼 보였지만, 화분을 잊지 않는 그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쟤랑 나랑 함께 시간을 지나는구나 싶어. 시간을 보내면서 정이 들더라. 마음이 쓰이고. 그러니까 귀찮아도 자꾸 마음을 쓰게 되고. 식물을 키우는 마음이란 그런 것 같아."


다보의 말은 구구절절 다 맞았다. 우리는 언제나 약한 것에 마음이 쓰이곤 하니까. 약한 틈으로 시간은 언제나 흐르곤 하니까. 다보의 말을 들으며 무엇을 키우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보낸 네 개의 선인장을 돌아본다. 그들에게 나는 얼마만큼의 마음을 주고, 내 자신에게는 얼마만큼의 마음을 주었을까.


다보가 준 선인장. 새살이 돋았다.


다보는 며칠 뒤 내게 선인장을 사줬다. 이번에 키울 땐 자리도 가끔 바꿔주고, 바람구멍도 만들어 주라고. 그가 준 화분을 창가 옆 책장 위에 두었다. 한 달에 한 번 조금 물도 주고, 오후 4시에 집에 해가 잠깐 들 땐 자리를 해 쪽으로 놓아주었다. 바람이 통하도록 화분이 놓인 쪽으로 창문을 늘 열어 두었다. 그랬더니 신가하게도 늘 죽기만 했던 화분에 초록색 싹이 돋았다. 선인장에도 새살이 나는구나. 처음으로 선인장이 품은 연한 살을 보았다. 새로 난 살은 원래 살보다 더 초록 초록하고 빛났다. 누가 봐도 새살인 걸 알도록. 생명은 다시 생명을 낳는구나. 이 척박한 공간에서 생명을 틔운 선인장이 기특하기만 했다.


생명은 신기하다. 조금만 마음을 써도 빛을 낸다. 새롭게 난 선인장 새싹을 보다가, 집을 둘러 보았다. '오늘은 하기 싫으니까 나중에 해야지'하고 미뤄 두었던 나의 약한 틈이 그제야 보인다. 마음 먹은 김에 창문을 활짝 열고 집을 정리한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빨래대에 매달린 이미 마른 빨래를 차곡차곡 개어 제자리를 찾아준다. 머리맡에 매일 잊고 쌓아 둔 유리컵들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린다. 이제야 보이는 집의 윤곽.


식물을 키우는 마음이란 뭘까, 하는 질문에 '계속 마음을 쓰는 거'라던 다보의 말을 곱씹어 본다. 약한 틈으로 빠져 나간 나의 일상을 돌아 본다. 외로움을 알면서도 그냥 서늘한 곳에 방치해 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는 생명이 피지 못한 곳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마음을 더 쓰지 않았을 뿐. 식물을 키우는 마음으로, 자리를 바꿔주고 바람 구멍을 내어 주며 나를 돌본다. 작은 생명에게 어떤 위로를 선물처럼 받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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