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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Oct 17. 2020

무리해서 떠난 캠핑

#45. 힘들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고, 살아있는 기분만 든다.


캠핑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수요일 점심이었다. 사무실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캠핑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급하게 금요일 오후 반차까지 썼다.



캠핑을 가야지, 스스로에게 시간을 내줘야지 하며 마음이 자꾸 신호를 보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바빠서, 지쳐서,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게 알면서 모른 척 모서리로 미뤄둔 일들에 불을 붙인 건 다름 아닌 한 마디였다. ‘무리하지 않고 마음을 사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늙기 시작하는 거 아닐까?’라는 친구의 말. 물론 나이를 먹으며 내 마음을 지키는 평균값을 알게 되었으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무리를 하지 않는 것과 틈이 없어 마음의 소리를 저버리는 것은 다른 문제였으니까.



목요일 밤, 급한 마음에 가방을 쌌다. 백패커에게 40L 가방은 언제나 작다. 우선 꼭 필요한 것부터 준비하기로 한다. 텐트, 그라운드시트, 에어 매트, 침낭, 오리털 파카. 여기까진 늦가을 캠핑의 필수품이라 뺄 수가 없다. 그다음엔 의자, 베른 테이블, 컵, 작은 칼, 숟가락, 냄비, 누룽지 등을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타프와 테이블을 마지막까지 가지고 갈까 말까 고민했으나, 결국 그 두 가지는 제외했다. 백패킹에서 무엇을 넣고 빼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온전히 내 몸으로 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가벼워야 하고, 가벼움에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어야 했다.


내일의 목적지는 여주. 차가 없이 두 발로 가는 온전한 백패커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걸어 그곳까지 가야 한다. 일산에서 여주까지는 대략 4시간 정도. 지하철은 2시간 반, 버스는 1시간 정도니, 중간중간 기다리는 시간까지 넉넉하게 잡으면 네 시간 정도 되겠다. 반차를 쓰고 출발하면 아슬아슬하겠지만 해가 지기 전엔 도착할 수 있을 듯 했다. 지도를 열어 가는 길을 다시금 확인한다. 분명 고된 길이 되겠지만, 벌써부터 마음이 뛰었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한다. 빠르게 움직인다고 움직였는데, 두시가 다 되어 집을 나섰다. 지금부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아주 긴 길을 가야 하므로. 운이 좋게도 3시간 내내,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탈 때도 자리가 남아 앉아서 갔다. 다리 사이에 묵직한 가방을 두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갈 길은 멀었지만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늦게 도착한 만큼 해는 이미 지고 없었다. 버스도 오지 않아 택시를 타고 도착한 강천섬. 가로등이 길을 따라 놓여 있지만, 새카만 어둠을 다 밝히기엔 부족해 보였다. 괜한 무서움에 밤길을 더듬더듬 걸으며, 무거운 가방을 지고 강천섬으로 들어가는 길. 어깨도 아픈데 그것 보단 배가 너무 고팠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작은 불빛을 잡고 부랴부랴 텐트를 친다.



한 시도 쉬지 않았는데 시간은 부지런히 간다. 분명 해가 쨍쨍할 때 출발했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렸다. 평소에 자주 치던 텐트였는데 배가 고파 힘이 없어 그런지, 폴대에 텐트 꼭지를 넣기가 어려웠다. 결국 20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사투한 끝에 꼭지를 끼워 팩을 박았다. 다 치고 나니 검지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았는데, 그 통증보다는 배가 고팠다. 잠시 앉아 쉬지도 못하고 가져온 밥을 데운다. 다 데워지지도 않았는데 입으로 가져간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캠핑에 오면 생각이 쉰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이 뒹구는 출근 전의 우리 집처럼, 두고 온 업무들도 잠시 접어 둔다. 떠나 오면 몸만 바쁘다. 몸의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 먼 곳까지 와 있을까, 어두컴컴한 곳에서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데도 손 감각으로 텐트를 치고 있을까, 갑자기 추워진 밤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데운 밥을 먹고 있을까. 먹은 것을 또 치워야 하는 이 상황에 우스워 나는 대체 여기에 왜 이러고 있나 싶어 웃음이 났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이렇게 평온해도 될까 싶을 만큼.



지난 한 달 동안 새벽 4시가 넘어 잠들었다. 아프지도 않고 힘든 일도 없었는데. 내내 그래서 힘들었는데, 텐트에선 머리를 대자 마자 잠이 들었다. 새벽에 비도 왔다는데 깨지도 않고 잘만 잤다. 추워서 핫팩을 대고 침낭과 오리털 파카를 꽁꽁 싸매고 잤는데도, 깨지도 않고.


그렇게 맞이한 아침. 텐트의 창을 여니 맑은 풍경이 펼쳐진다. 무해하고 순진해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이 풍경을 보며 생각한다. 가끔 이렇게 무리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무리하고 나면 좀 살 것 같다고.


매일 반복되는 회사 집 회사 집.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이 주는 안정도 있지만, 때론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말을 건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잠시 한 템포 쉬었다가 가도 된다고, 잊고 있는 네 마음을 돌아보라고. 그 소리에 이끌려 떠나온 캠핑. 탁 트인 풍경을 보며 떠나오길 잘했다고, 삶에 틈을 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선순위대로 챙겨 온 물건들은 제 몫을 톡톡하게 했다.


무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렇게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무작정 달리고 싶은 날이 있다. 떠난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행복해질 수 있음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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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淸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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