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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Oct 19. 2020

콩고의 9살 드보라와
함께 걸은 밤

#47. 이 작음이 누군가의 걸음을 멈추게 하기를 바라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World Vision Global 6K for Water에 참여했다. 삶이 바빠 인증 마지막 날인 오늘이 되어서야 시간을 내어 걸었다. 작년에는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글로벌 6K 마라톤을 뛰었는데(이름하야 탱그리 프렌즈!),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버추얼런으로 진행되었다. 특정 기간 동안 각자가 가능한 시간에 거리측정 앱을 켜고 6K 마라톤을 인증하면 되는 형식.



코로나 19로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풍경이 모두 변했다. 마라톤도 마찬가지. 평생을 마라톤은 주말 아침 일찍 함께 모여 마라톤 총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운동이었는데, 한강에 친구와 둘이 나와 조용히 뛰는 풍경이라니. 2020년은 원래 알고 있던 풍경들이 모조리 재정립되는 느낌이다. 만나는 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뜻을 모아가는 일.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빼앗긴 뒤에야 깨닫는다.     


내가 오늘 걸은 길은 망원 한강지구부터 여의도를 거쳐 다시 돌아오는 길. 조금 먼 길이지만 부지런히 발걸음을 뗀다. 밤에서도 잘 보일 것 같은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질끈 매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서 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거칠어진 숨 사이로 찬 바람이 자꾸 들어가서, 2km밖에 걷지 않았는데 목이 건조해졌다. 물이 필요했다. 미리 챙겨오지 못한 탓에 한강변에 놓인 편의점에서 900원을 주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데, 아! 생각해 보면 내겐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은 풍경은 코로나 이전에도, 언제라도 있었구나 싶었다.     



10대와 20대에 걸쳐 크게 습진을 앓았다. 건조해서 피부가 갈라지는 아픔은 매일 물 2L를 마시는 습관을 갖게 했다. 물은 언제나 손 닿는 가까운 곳에 있었고, 없으면 오늘처럼 편의점에서, 식당에서, 원하면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물이란 내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기본 중의 기본 값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는 물을 얻기 위해선 아이들이 6km의 거리를 걸어야 한다. 깨끗하지도 않은 물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은 멀고 험한 길을 매일 걷는다고. 오늘 내게 주어진 콩고의 9살 드보라, 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그 아이도, 그의 친구들도 그러지 않을까. 물 한 모금을 위해 매일 먼 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 편의점에서 손쉽게 산 500ml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생각했다.


오늘 참여한 글로벌 6K 마라톤은 ‘깨끗한 물’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기부런 캠페인이다. 한 사람에게 한 아이의 이름과 몫이 주어지고, ‘깨끗한 물’을 위해 함께 걷고 달리는 따듯한 캠페인. 참가비는 월드비전 식수위생사업에 기부되어 깨끗한 물을 위한 사업을 위해 사용되는데, 올해는 총 7,500명이 모였고, 약 1억 5천만 원이 모잠비크와 에티오피아 식수위생사업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마음이 이렇게나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하게.     




6km를 걷고 4km를 조금 더 걸었다. 다리가 땡땡하게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주황빛 티셔츠는 늦가을의 찬바람에도 조금씩 뜨겁게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다른 주황빛 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하나 둘 나를 지나쳐갔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곁눈으로 슬쩍 보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걸었다. 아마 저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걷고 있지 않을까.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으로 걷고 있지 않을까.    


콩고의 9살 드보라가 깨끗한 물을 편하게 마실 수 있기를, 물로 인해 지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태 한강을 크게 걸었다. 당연하지 않은 시절에 살고 있는 지금, 어쩌면 내가 당연하다고 여긴 시대에도 당연하지 않은 시간을 사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황빛 티셔츠를 입은 이들은 조용히 걷는다. 우리는 모두 아주 멀리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된 뜨거운 마음으로 6km를 걷고 뛰지 않을까 하는 작지만 분명한 믿음으로. 지구 반대편이라는 아주 먼 곳에서 보내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 작음이 누군가의 걸음을 멈추게 하기를 바라는 작고 작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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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淸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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