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Oct 01. 2020

작은 것에 마음을 기대는 방법

#31.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바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한 잔의 위로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샷을 내리고, 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포터 필터를 청소하고, 다시 원두를 담고.. 마치 에스프레소를 뽑는 기계 마냥 커피를 만드는 나를 발견할 때면, 카페에 있는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점심시간만 되면 쏟아지는 손님들. 군데군데 섞여있는 무례한 손님들까지 상대하다 보면, 지친 마음으로 내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언제 그렇게 바빴냐는 듯이 카페가 조용해진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소모품을 채워 넣고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면, 내가 카페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 바로 내 커피를 만드는 시간이다. 포터 필터에 아주 곱게 간 원두를 넣고 템핑을 한 다음, 에스프레소 머신에 끼워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진하게 풍기는 커피 향과 샷잔에 흐르는 황금빛 크레마를 보고 있으면, 그제야 긴장이 풀려 몸이 노곤 노곤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따듯한 라테. 컵에 잘 만들어진 샷을 넣고 스팀밀크를 곱게 낸다. 부드럽고 곱게 만들어진 스팀밀크를 마셨을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폭신폭신함이란. 따듯하게 데운 잔에 샷을 넣고, 컵을 기울여서 스팀밀크를 붓는다. 어느 정도 우유가 들어갔다면, 피쳐 주둥이 부분을 컵에 가까이 대고 대범하게 우유를 밀듯 넣어준다. 그렇게 탄생한 봉긋한 하트. 진한 황금빛 에스프레소 사이에 하얀 하트가 쏙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작지만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렇게 마시는 커피 한 잔. 입안 가득히 퍼지는 커피의 향. 정성 들여 만든 따듯한 라테를 마시면, 기분이 좀 나아지곤 했다. 아침부터 무념무상으로 기계처럼 샷을 뽑던 시간, 바쁜데 자꾸 자기 커피 먼저 달라고 떼쓰던 손님,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아이들 때문에 지쳤던 마음이 새살처럼 다시 돋아나곤 했다.


어른이 되어가며 배운다. 작은 것에 마음을 기대는 방법을. 지친 일상 속에서 한 잔의 커피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진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그래도 괜찮은 오늘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어떤 날은 커피가 영영 밉다가도, 또 어떤 날엔 커피에만 위로받는 시간이 있다.






* 100일 매일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원고는 초고입니다:)

▲ 100일 매일 쓰기 프로젝트가 궁금하시다면, 클릭




청민│淸旻
* mail   _ romanticgrey@gmail.com
* insta  _ @w. chungmin :여행/일상 계정
                 @chungmin. post : 책/출판 마케터 계정


댓글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스위트 스폿(Sweetspo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