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Oct 23. 2020

때로 창은 액자가 되기도 하지.

#50. 사람들은 액자 속에 소중한 것을 담는다는 걸.


혼자 살기 시작하며 집안 곳곳에 사진을 붙였다. 가족사진을 집구석구석에 두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지난날의 내가 알면 깜짝 놀랄 일이었다. 예전엔 가족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걸어두는 친구 집들이 왜 그렇게 촌스러워 보였는지. 그런데 혼자 살면서 알았다. 사람들은 액자 속에 소중한 것을 담는다는 걸.      


어디를 가도 가족사진은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고고하게 세워져 있다. 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매일 액자 속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건 아니지만, 집안에 이곳저곳 사진을 붙이고 나니 이상하게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 속 순간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달까. 그래서 사람들은 액자를 사고 집안 곳곳에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담아 두는구나.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존재들이라, 좋았던 조각을 증표 삼아 살아 내는 생명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족과 여행을 떠나면 차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아빠는 운전을 하고 엄마는 아빠의 옆에, 뒷자리에 동생과 나 이렇게 나란히. 우리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움직이는 걸 이상할 만큼 좋아했는데, 아마 우리 가족이 캠핑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 없이, 온전히 우리만 있는 공간. 아빠의 차 안에서는 어떤 사람이어도 괜찮았다. 모가 나도, 살이 쪄도, 발걸음이 느려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도 미움받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 적어도 우리에겐 그랬다.     


함께 수많은 길을 달렸다. 떠남이 주는 설렘으로 이야기를 쏟아 내다가도, 금세 졸음이 쏟아지던 뒷자리. 눈을 비스듬히 감고 창을 멍하니 바라보던 풍경이 가끔 떠오른다. 높은 빌딩이 나왔다가 햇빛에 빛나는 강이 지나갔다가, 논과 밭이 나오고 때로는 어두움에 삼켜진 밤하늘이 나왔다. 스쳐 지나는 풍경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생각했다. 때로 창은 액자가 되기도 한다고. 솔솔 불어오는 졸음에 잠이 들다가도, 아름다운 풍경이 자동차 앞 유리로 펼쳐지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엄마 아빠의 상기된 목소리. 은, 찬! 빨리 앞에 봐봐! 너무 아름다워! 그럼 우리는 눈을 비비다가 일어나선, 그들의 시선에 우리의 시선을 더했다. 아름다운 건 함께 보자고, 함께 웃자고. 그렇게 함께 걷던 시간들.     



홀로 살다 보면 언제나 온기가 그립다. 집에 돌아와서 불 꺼진 방을 볼 때, 넷플릭스 주인공들의 소리를 마주하고 밥을 먹을 때, 다림질이 어려워 구겨진 옷을 툭툭 털고 입고 나가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옆에서 복닥복닥 장난을 걸던 식구의 온기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커튼을 젖히는 일, 집에 돌아오면 집안의 온 불을 켜는 일. 혼자 살아서 행복한 날도 많지만, 지친 발걸음을 집까지 끌고 오는 날이면 사무치게 가족의 온기가 그리워진다.     


그런 날 우리가 함께 보았던 창을 떠올려 본다. 풍경을 보며 꾸벅꾸벅 졸던 뒷자리의 분위기를 곱씹어 본다. 그럼 가쁜 하루를 보내다가도 힘이 난다. 맞아, 내겐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있지, 소중한 기억이 있지. 유년의 아름다운 시절이 담긴 액자를 안고, 나는 오늘도 씩씩하게 살아낸다. 사랑은 이렇게 누군가를 걷게 한다. 희망 쪽으로.








* 100일 매일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원고는 초고입니다:)

▲ 100일 매일 쓰기 프로젝트가 궁금하시다면, 클릭!



청민│淸旻
* mail   _ romanticgrey@gmail.com
* insta  _ @w. chungmin : 일상 여행자 계정
                 @ruby.notebook : 출판 마케터 계정


댓글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밤 조림으로 가을을 기록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