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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Oct 19. 2020

캠핑에서 좋아하는 순간들

#46.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


캠핑에서 특히 좋아하는 순간들이 있다. 캠핑은 편한 집을 떠나 헤매는 고된 여정이지만, 좋아하는 순간들은 언제나 다시 짐을 싸게 만드는 이유다. 도시를 떠날 수 있어서 좋고, 머리는 쉬고 몸이 움직이는 생활이어서 좋고, 가방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어서 좋아하는 캠핑. 그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순간을 소개한다.







일. 텐트 액자


새소리에 눈을 뜬다. 핸드폰 알람을 끄는 것을 반복하지 않아도, 재잘대는 새들의 소리에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한다. 드문드문 부지런한 사람들의 분주한 아침 식사 준비 소리도 들린다. 포근하고 작은 텐트 안에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들. 그 소리들을 따라 눈을 비비며, 가장 먼저 창을 연다. 밤에 텐트에 머문 따듯한 온기를 내보내고, 아침의 새로운 공기를 맞이하는 순간.


여전히 누워 텐트 창을 연다. 지퍼 열리는 소리가 마치 작은 철도가 움직이는 소리 같다. 얇은 텐트 창이 열리고 펼쳐지는 세상. 10월의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누워서 바라본 하늘은 마치 바다 같기도 하고, 맑은 호수 같기도 하다. 흘러서 흘러서 내게 쏟아질 것만 같은 풍경. 저 멀리 지난밤 함께 이 공간을 나눈 이들의 텐트가 보인다. 분명 그들도 나도 도시에서는 비슷한 모습이었을 텐데, 여기에서 우리는 마음껏 여유롭기만 하다.


캠핑을 떠나선 자주 침낭에 누워 텐트 밖을 바라본다.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 마지막 날이 언제였던가. 집에서 창을 열면 건너편 집 거실이 훤히 보일만큼 가까워, 매일 블라인드를 내리고 사는 사람에게 텐트 창은 한 폭의 액자 같다. 숨구멍 같기도 하다. 하늘이 보일 뿐인데 나는 훨훨 자유로운 무언가가 되는 것 같다.






둘. 책 읽기


가방이 아무리 무거워도 꼭 책 한 권은 챙긴다. 이번 캠핑에 챙긴 책은 박연준 시인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이제와 보니 2020년에 꼭 알맞은 제목 같기도 하다. 시인의 '소란'을 잔뜩 밑줄 긋고 인덱스를 붙이며 읽었기에,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가 출간되었을 때 기다리지 않고 바로 구매를 했다. 물론 올해 초 출간된 '모월 모일'은 한 권을 더 구입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도 했다.


그냥 나다운 상태로 꾸준하고 소소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몸에 마음을 가져다 댈 때 그 ‘꼭 맞음’의 느낌으로. 허리가 구부러질 때 마음이 허리에 가 같이 구부러지고,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땐 마음도 손에 가서 얼른 잡히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는 상태로 지내면 좋겠다.

-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중에서    


매일 책을 살피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가방엔 늘 책을 가지고 다닌다. 약간의 죄책감이 섞인 일이라고 해도 될까. 다 읽지 않더라고 꼭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캠핑을 떠나올 때는 읽고 싶었으나 짬이 없어 읽지 못한 책을 가지고 온다. 그중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담은 책이면 더 좋겠다. 햇살을 받으며 읽는 따듯한 문장. 이상하게 집에서 읽는 것보다 마음에 더 오래 남는 구석이 많다. 햇살은 이렇게나 마음을 돋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돋보기로 자세히 살피는 것처럼.










셋. 커피 한 잔


전직 커피 전문점 직원 출신으로(ㅋㅋㅋ) 커피는 없어선 안될 존재. 아직 캠핑용 드립 용품을 구입하지 못해, 실장님께서 주신 커피를 하나 슥 가지고 왔다. 물만 부어 마시면 되는 간편함에 드립백은 짧은 캠핑에 유용하다. 머리 위로는 따듯한 햇살이 내리쬐어,  내 주변을 큰 동그라미 같은 비눗방울로 감싸는 것 같다. 커피 향은 방울 속에서 흘러, 주변을 온통 기분 좋은 냄새로 채운다. 같은 커피라도 아침 캠핑장에서 마시는 커피는 왜 이렇게 고소하고 향기롭고 맛있는지. 아마 계절을 담은 햇살이 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넷. 침낭과 텐트 굽기


햇살이 좋을 때, 침낭을 꺼내 굽는다. 마치 빵을 굽듯이 텐트 위에 올려두어 햇살을 맘껏 쬐게 해 준다. 습기를 먹어 푸석푸석해지지 않도록, 따듯한 온기를 여기저기 바짝 넣어준다. 텐트도 마찬가지. 철수하기 전에 햇빛에 삼 십분 정도 말려주면 밤새 내린 물방울이 언제 내렸냐는 듯 쏙 사라지고, 보송보송한 얼굴만 남겨 둔다. 잘 마른 텐트와 침낭에는 햇살 냄새가 배긴다. 고슬고슬하니 만지면 기분 좋은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다섯. 내게만 쏟아지는 별


별이 보인다. 도심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어린 시절 배운 별자리를 더듬더듬 떠올려 본다. 내가 아는 거라곤 오리온자리와 북두칠성. 도심에선 그렇게 잘 보이던 두 별자리가 오늘은 하늘에 쏙쏙 박힌 다른 별들 때문에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아름다움을 마주하면 이상하게 간직하고 싶어 진다. 조리개를 잔뜩 열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별 사진을 담아 본다. 셔터를 누르고 그 자리에서 오래 카메라를 기다린다. 그러고 보면 별은 언제나 저기 있었구나 싶다. 있다는 걸 잊고 살았을 뿐. 








해야만 해서,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 말고, 정말 내가 좋아서 하게 되는 일.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는 일. 햇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함께 시선을 돌리고, 바람이 부는 결을 손을 뻗어 닿아보는 일. 좋아하는 문장을 뒹굴거리며 읽고, 잊고 있었던 별들을 기억해 내는 일.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내가 조금 좋기도 했다. 


일상을 또 열심히 살아내다가 문득 좋아하는 것들이 그리워지는 날에 용기 있게 배낭을 싸서 다시 캠핑을 와야지 싶다. 문득 지치는 날이 생기면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서 다시 발견해야지. 그렇게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라는 걸 다시금 기억해 내야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또 열심히, 성실히, 햇빛처럼 바람처럼 별처럼 살아가야지 다짐하게 되는, 좋아하는 순간들.





* 100일 매일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원고는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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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淸旻
* mail   _ romanticgr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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