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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Oct 21. 2020

쏟아지는 별똥별을 보며 사랑을 빌던 밤

#49. 수없이 떨어지는 몽골의 별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지.

몽골로 떠나기로 결심한 건 오래된 친구의 채근도 있었지만, 누군가와 헤어진 나 때문이기도 했다. 어느 초여름, 나는 오랜 권태기 끝에 한 사람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있었다. 간단해 보였던 정리에는 헤어짐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속이 뻥 시원했다가도 분노와 슬픔이 번갈아 찾아왔고, 곡선을 이루는 감정의 그래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폭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작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갔다를 잔잔하게 반복하곤 했었다.     



마음이 끝난 것과 지난 시간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음을 몸소 깨닫고 있던 초여름,  떠나자는 친구의 말에 기대 도망치듯 몽골로 발걸음을 옮겼다. 핸드폰도 잘 터지지 않고, 편한 잠을 잘 수 없는 곳. 툭 치면 쏟아질 것 같은 별이 있고,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이 있다는 곳. 광활한 자연 속에 있다 보면 나의 혼란은 자연스레 정리될 것만 같은 기대가 있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싶었고, 누군가에게도 기대지 않고 온전히 혼자이고 싶기도 했으며, 이미 안녕을 고한 기억과 새롭게 안녕- 인사를 건네는 사람 사이에 서 있는 나를 선명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몽골은 아름다웠다. 정말 말로만 듣던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이 세상에 진실로 존재한다는 걸 배웠다. 처음 만나 서먹한 여섯 청춘을 태우고 달리던 푸르공. 우리는 매일 초원을 달리고 또 달리고 다시 달렸다. 땅의 선들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고, 초록과 초록도 하나의 선처럼 이어졌다. 몽골의 초원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하나님이 도화지에 처음 가운데 선을 딱 긋고서는, 위에 있는 걸 하늘로 아래에 있는 걸 땅이라 부른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늘과 초록밖에 없는 세상. 세상엔 이런 풍경도 있고 이렇게 다양한 초록이 있는데도, 자꾸 나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 해 여름, 나는 안녕과 안녕 사이에 끼여 있었다. 지난 사람이 두고 간 안녕이란 말을 애도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안녕- 하고 새로운 인사를 건네 왔다. 그 인사는 다정했고 조심스러웠으며 내가 다치지 않을 만큼 보드라웠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서울의 거리를 함께 걷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몽골에서 그냥 모두 탈탈 정리하고 가고 싶었다. 등을 보이며 멀어지는 사람도, 내게 다정하게 인사하며 다가오는 새로운 사람도. 모든 안녕이 내 속을 헤집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이상한 게, 왜 달리면 달릴수록,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깊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내게 새롭게 안녕- 인사하는 그를 생각하면, 창문 밖을 보며 몰래 웃었다가도, 금세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두려웠다. 내게 새롭게 인사하는 그가 궁금하고 좋았지만, 불안했다. 그도 내 생각을 문득문득 하고 있을까. 그도 나의 지금이 궁금할까. 만약 그렇대도,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그다음은.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전과는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몽골로 떠나온 게, 누군가를 정리하려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다시 누군가를 마음에 들여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 위해 온 게 아니었을까. 계속되는 창밖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욕심내지 말자고. 그와의 관계는 가끔 만나 함께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지만 자꾸만 삐져나오는 마음을 다 잘라낼 순 없었다.     



몽골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 땅 속으로 몸을 숨기는 태양의 얼굴을 온전히 목격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챙겨 나온 에어베드를 펼쳐두고 누워지는 해를 바라봤다. 그리고 찾아온 밤. 노을 뒤에는 후 하고 불면 바람 결에 흩어질 것 같은 별들이 박힌 밤하늘이 있었다. 함께 하늘을 바라보던 친구들은 춥다며 하나 둘 게르로 돌아갔고, 밤하늘 아래엔 나와 함께 떠나온 친구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만 남았다. 우리는 각자의 에어베드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우리가 몽골로 떠나온 이유가 같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무거운 마음이 우리를 몽골로 오게 했던 걸까.     


별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영화처럼 막내와 내 주변을 회전했다. 왼쪽 끝에 있던 별자리가 오른쪽 끝으로 이동할 때까지, 우리는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 사실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몽골에 왔거든. 뭔가 안녕과 안녕 사이에 끼어있는 것 같아서. 근데 초원을 달리는데 자꾸 내게 다가오는 한 사람의 얼굴이 깊어지는 거야. 내 앞에 이렇게 믿기지 않는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 사람과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 누나, 나도. 나도 차에서 좋아하는 그 사람과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

- 지금도 그래. 별이 쏟아질 것 같잖아. 그 사람이 이 풍경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싶어.

- 나도 그래, 누나. 근데 그들은 우리가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걸 알까.



이런 바보 같은 대화가 이어지는데, 저 멀리 별똥별이 떨어졌다. 조금 늦긴 했지만 우리는 급하게 소원을 빌었다. 그런 거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이 풍경 앞에선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소원을 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별똥별이 떨어졌고 그렇게 일곱 개의 별이 하늘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땅으로 쏟아졌다. 우리는 그 풍경을 보고 하나라도 놓칠까 소원을 빌었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고요했다. 아, 그때 알아버렸다. 내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다는 것을.     


쏟아지는 별똥별을 보며 사랑을 빌었다. 일곱 번 모두 똑같이, 저 멀리 한국에 있을 한 사람만을 떠올렸다. 별을 보는데 애를 쓰며 막아보려고 했던 마음이 삐져나온 틈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해. 그와 걷는 서울의 거리를 좋아해. 그가 다정히 건네는 인사를 좋아해. 온통 깜깜한데 별만 밝은 몽골의 밤. 옆에 막내가 있었지만 서로도 보이지 않던 밤이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몽골의 밤은 어두웠고 내 마음만큼 큰 별이 저 하늘에 무수히 떠있으니까.     


끝없이 재고 따졌던 불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좋아한다는 읊조림 하나로 사랑은 다시 피어올랐다. 도망치고 도망치다 인정하게 된 순간, 나는 당장에 그에게 뛰어가 말하고 싶었다. 나,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밤하늘의 별 하나가 떨어져 내 속에 들어온 것 마냥, 터질 것 같던 밤. 인정할 수밖에 없던 밤. 그와 내 마음과 같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알아가는 게 여전히 두렵더라도,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된 밤. 나는 보이지도 않는 하늘의 사진을 찍어 그에게 보냈다. 보이지 않지만, 여기엔 무수히 많은 별이 있다고. 그래서 당신도 여기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신만 좋아서 반짝이던 밤을 나는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채. 그렇게 몽골의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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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淸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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