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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Dec 01. 2020

스물아홉 그 어느 날의 이야기들

이제와 솔직히 하는 이야기지만..


이제야 하는 이야기지만, 스물아홉은 어려웠다. 일월 일일 첫날부터 십이월 삼십일일까지, 빼곡하게. 365일, 나의 달력엔 촘촘하게 어떤 마음들이 매일 스케줄처럼 채워져 있었다. 부채감이 느껴지는 미룰 수 없는 일정들에,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운 날이 많았다.     



시작선엔 취업이 있다. 처음 직장이란 걸 가지면서 대구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왔고, 언제까지나 함께일 거라 생각했던 가족의 품을 떠났다. 엄마가 한 푼 두 푼 아끼고 아껴 모은 돈을 염치도 없이 덜컥 빌려서는 홀로 오피스텔촌에 터를 잡았다.      


아직도 기억하는 출근하기 전날 밤. 온 가족이 대구에서 올라와선 이 좁은 원룸 오피스텔에 복작복작 낑겨 누워있던 밤. 너는 내일 출근 첫날이니 일찍 자라고 침대로 밀어 넣었던 첫 출근 하루 전날 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가족의 목소리가 따숩고 정다운데, 이상하게 눈물이 뚝뚝 나서 몰래 울었었다. 이젠 정말 혼자로 살아간다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곳에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싱숭생숭한 와중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혼자 사는 사람이 되었고, 어딘가의 신입사원이 되었다. 마음 붙일 곳 없는 낯선 도시에서도 부지런히 밥을 지어먹고 커피를 마시고 호수공원에서 달리기를 했다. 스물아홉의 신입사원은 먹은 나이가 무색하게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사수였던 옆자리 과장님이 없었다면 나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뭐가 그렇게 다 어렵고 모르겠던지.(물론 여전한 부분이 많지만) 이것도 모를까 하는 것도 몰랐고, 이건 알겠지 싶은 것도 몰라서, 뭐랄까. 지금까지 어설프게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재조립되는 느낌이었달까. 나머지 공부를 하듯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이해가 가지 않은 것들을 짚어야만 겨우 발걸음을 맞출 수 있었고, 기다려주는 선배들이 없었다면 참을성 없는 나는 따라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겨우 발걸음을 종종 따라가는 때에, 오래 준비했던 출판 계약을 파기했다. 그 과정에 이런저런 상처가 생겼고, 이미 연약해질 대로 연약해진 나에게 믿었던 사람들의 또 다른 얼굴은 쉽게 마음을 무르게 만들었다. 홍시나 바나나처럼. 쉽게 치이고 쉽게 물러 버리는 과일처럼, 차마 마음을 어떻게 숨겨야 할지 모르는 멍든 얼굴처럼.     



다음엔 연달아 이별을 했지. 오래 만난 누군가와.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나를 쉽게 버리고 떠난 사람. 차마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쏟아 낸 그의 사람들까지.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도시에서 홀로 버티고 있는 나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그 덕분에, 나는 달리기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버거운 마음을 안고 호수공원을 걷고 뛰었고, 몇 달이 지난 어느 여름 말. 나는 4km를 30분 안에 뛸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적어도 단단한 몸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


그래도 사람은 적응에 빠른 존재라, 가을 즈음되니 어느 정도 이 정신없는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출판을 파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떤 생채기도, 아침 드라마 같은 대사를 남기고 사라진 (이제는 헤어진) 사람과의 기억까지 익숙해지고 괜찮아지니, 이젠 일이 바빠졌다. 어쩌다 맡은 도서가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나는 다시 많은 밤을 야근으로 채우며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12월 마지막 날. 한 해 동안 마음을 유난히 많이 써서 그럴까, 아님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게 싫어서였을까. 평소 같으면 일주일이면 뚝딱 나을 감기를 한 달이 넘도록 훌쩍이던 어느 밤, 내게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우리 가족과 동일하게 사랑하는 사람. 그 소식을 듣고 몇 날 며칠을 울다가, 또 울다가. 심하다는 말에 다시 울다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울던 날들이었다.     


이 모든 시간들이 지나고 이천 이십 년이 밝았다. 서른이 된다는 생각에 지난해 내내 자잘하게 우울했었는데, 도리어 서른이 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이미 저질러져 버린 일들엔 미련을 두지 말자.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마음들은 흘려보내버리자. 스물아홉엔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서른의 나는 삶의 흐름에 수긍하고자 힘을 빼본다.     



 년이 지났다. 나는 2  마케터가 되었고,   시간만큼 업무와 회사에 익숙해졌고 능숙해졌다. 출판사에 일하다 보니 그깟 계약 엎어진   그게 별건가 싶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처음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언니는 감사하게도  견뎌주고 있다. 지나서 이제야 이야기하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봐도 나는 아팠구나, 불안했구나, 싶어 마음이 가끔 애달퍼 지곤 한다.


불 꺼진 방에 홀로 돌아와 침대에 엎어져 베갯잇 홀딱 젖을 만큼 울던 날. 잘 마시지도 않았던 와인 병을 잔뜩 쌓아 두었다가 버린 날. 혼자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날들을 지나 지금의 내가 있다. 불 꺼진 방에서도 울지 않고, 어려운 업무들 앞에서도 우선순위를 머릿속으로 먼저 정하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는 내가.


이천 이십 년이 되면 뭔가 나아질 거야, 마냥 기대했던 이천 십구 년의 나를, 이천 이십일 년을 앞둔 요즘 생각해 본다. 삶의 과도기 같은 시절을 겪으며 오늘의 나는 어제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었을까. 아무리 셈을 해보아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하면, 작년의 나는 올해의 나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의미가 있다. 삶은 이상하고 또 이상해서, 시간이 흘러야만 이해가 되는 법칙이 있다. 지난 일들의 새로운 의미를 곱씹으며, 이런 희한한 규칙은 사람의 어리석음에서 시작된 건지, 아니면 신의 계획에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없어 알쏭달쏭하다.


하지만 혹여 다시 지난해를 겪겠냐고 신이 물으신다면, 음 나는 다시 똑같이 겪어 보겠다고 하지 않을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어쩌면 내일의 내게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발자국일 테니까.


그냥 작년의 내가 떠올라서, 그날들을 떠올리면 오늘의 마음 아픔 따윈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떠올려 본, 스물아홉 그 어느 날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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