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5월 24일 07화

6화 : 보내지 못한 메시지

보낼 말은 많았지만

by 낭만피셔

늦은 밤, 윤섭은 익숙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불 꺼진 거실은 낮의 소란스러움이 완전히 지워진 채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그는 현관에 잠시 서서 어둠 속을 응시했다. 오늘 낮, 카페 <바바블랙쉽>에서의 일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다가도, 바로 조금 전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현이었다. 김지현. 12년 만에 본 그녀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기도, 혹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를 본 순간 자신의 정신이 멈췄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보같이 얼어붙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는 것. 옆에는 경진이도 있었다. 둘 다 자신을 봤을 텐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윤섭은 가방을 소파 옆에 툭 내려놓고, 깊숙이 몸을 묻었다. 온몸에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왜 거기 있었을까. 정말 12년 전 그 약속 때문에? 아니면 그냥 우연히?


한참 후,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익숙하게 인스타그램 앱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이미 여러 번 눌러봤을 그녀의 계정을 다시 찾아 들어갔다. 화면 가득 그녀의 시간들이 펼쳐졌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 통번역가로서 일하는 듯한 모습들,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 윤섭은 스크롤을 멈추고 사진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12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는 잠시 사진을 바라보다 화면을 껐다. 연락해야 할까?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손은 다시 휴대폰으로 향했다. DM 창을 열었다. 하얀 입력창이 깜박였다.


‘지현아, 나 윤섭인데.’ ‘잘 지내?’ ‘오늘 카페에서 봤는데…’


어떤 말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손가락이 키패드 위에서 몇 번 망설였다. 지금 연락하는 게 맞는 걸까?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나 때문에 불편했던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입력하지 못하고 메시지 창을 닫았다. 스마트폰을 소파 쿠션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유리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컵을 들어 물이라도 마시려다, 이내 그냥 내려놓았다. 길고 깊은 한숨이 거실의 정적을 갈랐다. 그의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다.


외로움과 망설임, 그리고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아쉬움이 스탠드 불빛 아래 짙게 가라앉았다. 12년 만의 재회는 그에게 또 다른 질문만을 남긴 채 밤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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