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5월 24일 08화

7화 : 현실의 목소리

삶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어 있었다

by 낭만피셔

깊은 한숨이 가라앉은 거실의 정적 속에서, 윤섭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이 꺼진 스마트폰만이 그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12년 만에 마주친 그녀의 얼굴, 그리고 차마 건네지 못한 말들이 어지럽게 떠다니며 그의 밤을 잠식했다.


바로 그때, 그의 상념을 깨듯 휴대폰이 짧게 진동하며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엄마’. 윤섭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그의 현실이었다.


“응, 엄마.” 애써 다정한 아들의 목소리를 꺼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섭아, 오늘은 일찍 들어갔나?”


“그냥 조용히 있었어. 엄마는? 저녁 먹었고?” 그가 물었다. 목소리에 남은 피곤함을 엄마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며.


“먹었지. 근데 엄마가 요 며칠 허리가 좀 안 좋더라…”


엄마의 목소리에 섞인 희미한 통증에 윤섭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또 허리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혹은 조금만 무리하시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통증.


“허리? 계속 아프다더니. 병원 가봤어?”


“아이고 뭘 또 병원을 가. 파스 붙이고 좀 누워있으면 괜찮아져. 병원 괜히 가면 너 돈만 깨지지.”


역시나 익숙한 대답이었다. 아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윤섭은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내가 병원비 걱정 말라니까. 내가 낼 테니까 꼭 예약해. 이번 주 안으로.”


그는 엄마의 괜찮다는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나 바빠도 엄마 챙길 시간은 있어. 이번엔 진짜 약속해, 병원 가기로. 응?”


한참의 실랑이가 오갔다. 결국 엄마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알았다고 대답했다.


“알았다, 알았다. 잔소리는 늘어가지고…”


전화를 끊고 나자, 윤섭의 어깨는 아까보다 더 무거워진 기분이었다.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12년 만에 불쑥 찾아온 아련한 감정 위로, 그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선명하게 포개졌다. 그는 소파에 등을 깊게 기댄 채, 창밖의 어두운 도시를 말없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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