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확인한 그 짧은 메시지 하나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커튼 틈으로 스며든 부연 햇살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지현은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습관처럼 침대 맡 협탁 위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밤사이 도착한 몇 개의 알림들. 무심하게 화면을 넘기던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 상단에 뜬 인스타그램 알림 위에서 우뚝 멈췄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신윤섭]
12년 동안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단 한 번도 완벽하게 지워본 적 없는 그 이름 석 자. 어젯밤 그가 보낸 다이렉트 메시지(DM) 요청 알림이었다. 지현의 호흡이 순간 가빠졌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어젯밤 경진과의 대화 이후 애써 묻어두려 했던 감정들이, 그의 이름 세 글자에 속수무책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왜? 12년 동안 단 한 번도 먼저 연락한 적 없던 그가, 왜 하필 지금?
떨리는 손가락으로 알림을 눌렀다. 그의 프로필 사진은 낯설었다. 12년 전과는 다른, 어른 남자의 얼굴. 그리고 그 아래, 그가 보낸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지현아, 나 윤섭이야. 잘 지내?
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스무 살, 조금은 서툴지만 다정했던 그 목소리. ‘잘 지내?’라는 너무나 평범한 안부가 왜 이렇게 심장을 날카롭게 찌르는지. 그녀는 마른 침을 삼켰다.
오늘 회사 후배가 ‘멋진 하루’ 얘기하는 거 듣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나더라.
멋진 하루. 그 영화. 지현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핑계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그 영화 때문에 정말 문득 자신의 생각이 났던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의심과 아주 작은 기대감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우리 옛날에 그 영화 좋아했잖아.
과거형. 그래, 우리는 좋아했었다. 그 영화를 보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 함께 웃고, 울고, 서로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던 시간들. 부정할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이 날카로운 파편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아프면서도, 이상하게 아릿한 기억들.
...시간 괜찮으면 언제 커피라도 한잔 할까?
결국, 이것이었을까. 커피 한 잔. 너무나 가볍게 던지는 제안처럼 보였지만, 지현에게는 그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다시 그를 만나도 괜찮을까. 12년 전의 우리처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이성훈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처참하게 무너졌던 믿음, 산산조각 났던 마음. 그녀는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답장을 해야 할까. 뭐라고 답해야 할까. ‘오랜만이다’라고? 아니면 ‘무슨 일이냐’고 차갑게 물어야 할까. 혹은 그냥 이대로, 12년 전 그랬던 것처럼 모른 척 덮어버릴까.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린 듯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장만 요란하게 뛰어댔다.
그녀는 한참 동안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타자를 치려 엄지손가락을 움직여보았지만, 허공에서 멈출 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옆으로 밀쳐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커피를 내리고,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방금 확인한 그 짧은 메시지 하나가 그녀의 아침을, 아니 어쩌면 그녀의 하루 전체를, 혹은 앞으로의 시간을 온통 뒤흔들고 있었다. 평온했던 수면 위로 던져진 돌멩이. 그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