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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Apr 02. 2020

소주 한 잔 하고 싶네요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미치게 보고 싶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가 끝나던 금요일 저녁이면 아빠는 종종 내게 전화했다.

“큰딸! 끝났어? 은행사거리 닭발 집에서 소주 한 잔 어때?”

마냥 친구 같던 아빠가 더없이 좋을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또 싫어서

-왜 맨날 나랑 술먹제, 나 오늘 약속 있어 싫어! 하며 타박하기도 했다.





봄 향기가 살랑살랑 코 끝을 간지럽히던 날

창을 활짝 열어두고 아빠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은행사거리 닭발 집 이모가 요즘 우리 안 온다고 궁금해하겠다 그치?" 아빠가 먼저 말 문을 열었다.

-정류장 옆 삼겹살 집 아저씨도 우리 기다릴걸, 그러니 얼른 쾌차하셔!  하고 나는 대답했다.


"아직 오려면 멀었겠네"

-누가?

"네 엄마랑 동생 말이야"


불현듯 대화는 목욕을 간 엄마와 동생이 돌아오려면 아직도 멀었다로 전개되었다.

-여자들이 원래 오래 걸려, 뭘 새삼스레

그러고 보니 딸 둘 뿐인 아빠는 목욕도 항상 혼자였구나 싶으니 별개 다 서운한 거다


"잘 몰랐었어 그땐,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 생각했거든, 마냥 맛있는 것 사주고, 좋은 옷 입혀주고

하고 싶다는 거 해주고 그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아니더라, 그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었어, 지금 가장 후회되는 건 니들이 어릴 때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했던 것 그거 하나뿐이야 "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그냥,, 미안해서 그렇지, 미안해서"


무뚝뚝의 대명사 경상도 싸나이 아빠가 미안하다고 했다.


- 에잇, 별소릴 다해, 그러게 엄마는 오시려면 아직 멀었으려나, 아빠 뭐 좀 드실래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대로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다가는 펑펑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빠와 나, 우리 단 둘의 마지막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빠는 본인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젊은 날 오지게도 혹사시켰다 (물론 음주가무에도 능했기에 부정할 수는 없는 부분도 있다)

언젠가의 검진에서 신장이 한참 나빠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장 약을 복용했건만, 신장은 지켰고 대신 간을 잃었다.


’3개월 남았습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황당무계한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을 만큼 어이없는 3개월 시한부 판정

보통 드라마에선 의사 선생님 발목이라도 붙잡고 울며 불며 살려달라 뭐든 다 하겠다, 3개월 그 이상 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난리를 치던데 너무 당황스러우니 그냥 처연해지더라


-그 이상은요? 한마디 되물었고

불가능하다고, 힘들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확고한 답변만이 되돌아왔다.


마음의 준비, 서슬 퍼렇던 그 말이 아직도 악몽을 꿀 때면 귓가에 맴돈다.


당신의 3개월 시한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알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우린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그냥 그렇게 늘 똑같던 삶 속에서 아빠와의 더 없는 시간을 함께하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말하지 않았어도 아마 당신의 남은 시간을 누구보다 당신 먼저 알아차렸던 듯도 하다.


참 많이 좋아했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치워버렸던 믹스커피부터 다시 사다 두고

매일 아침 아빠와 믹스커피 찐하게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따두었던 운전면허증, 도로연수시켜준다고 무지막지하게 혼나면서 다시는 아빠 앞에서 운전 핸들 잡지도 않을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아빠와 함께 드라이브도 즐겼다.

틈틈이 사진도 찍고 몰래몰래 아빠와 나누던 대화들도 녹음했다.

3개월의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건만 그럼에도 3개월은 너무나 촉박하고 아쉬운 시간임에는 틀림없었다.


꽉 찬 3개월을 보내고 그날따라 영 기운이 없던 아빠는 이제 그만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갑갑하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당신이었는데 이젠 당신이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다 했다 

영 내키진 않았지만 그날 저녁 병실에 모셔드리고 아빠가 잠시 잠든 사이 오늘 밤은 엄마가 병실에 있을 테니 집에 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 교대하자 했다.

집으로 돌아와 숨 고르기까지 30분 남 짓 

집에서 그다지 먼 거리의 병원도 아니었으니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건만 이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진아!  지금 다시 좀 와야겠어, 아빠가 니들 어디 갔냐고 보고 싶다 하네"


씻으러 욕실에 들어 간 동생에게 서두르라고 말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는 마지막 힘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 우리 왔어요, 아빠? 나 보여? 우리 목소리 들려?

나와 동생을 번갈아 마주한 아빠는 옅은 미소를 띄며 우리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빠의 손은 따뜻했다.

우리가 다시 돌아와 아빠 눈 속에 비칠 때까지 아빠는 버티고 또 버티고 있었다


삐---


아빠와 연결되어있던 기계에선 마치 드라마처럼 거친 한 음을 울리며 한 줄로 그어졌다.


나의 우주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아빠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아빠 볼을 부비며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동안 너무 하고픈 말이었지만 차마 그 말까지 아빠에게 직접 해버리면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비로소 너무나 하고팠던 내 진심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아빠는 최고였다고 고마웠다고 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당신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매 순간 최선을 다했듯 당신 역시 마지막 힘을 내어 최선을 다했고 두 딸을 눈 속에 마음속에 담고 싶으셨던 거다.


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는 4월이 되면 아빠의 기일이 돌아온다

매 순간 그립지만 더더욱 그리운 4월

더없이 따뜻했던 아빠의 마지막 온기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끼고 아빠와 나누었던 대화 녹음을 들어본다

귓속에 울리는 아빠 음성, 함께 누워 이야기하던 마치 그날 같다


나는 이탈리아로 떠나왔고 아빠는 나보다 더 먼 여행길에 올랐다.

은행사거리 닭발 집 이모는 여전히 우리를 궁금해할까? 정류장 삼겹살집은 아직도 있을까?


아빠! 오늘 밤 많이 바빠?  

아니 조금 바빠도 오늘은 내 꿈에 찾아와 줄래요?

오랜만에 나하고 소주 한 잔 해요,

아빠 큰딸 이제 아빠 소주 정도는 원 없이 사드릴 수 있을 만큼 돈도 꽤 벌어, 

아빠랑 같이 목욕 갈 사위도 손주도 둘 씩이나 있는데,,


너무 보고 싶네 우리 아빠

아빠 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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