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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08. 2021

쓴맛이 사는 맛이다

RIP( 채현국 선생님)


 봄비가 내리던 지난 주말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트위터를 보다가 시대의 어른으로 존경받던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2014년 1월에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 두어라”라는 다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헤드라인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팔순의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생각이 깨어 있고 삶에 대한 태도가 진심일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오히려 젊은 내가 부끄럽고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분의 삶을 나열할 필요는 없지만 시대정신을 잃지 않고 늘 솔선수범하며 타의 귀감이 될만한 삶을 살고 가신 채현국 선생님께 삼가 조의를 표한다.



“그렇게 두루 사회운동가들에게 나눠주셨지만 개중에는 과거 경력을 입신과 출세의 발판으로 삼거나 아예 돌아서서 배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돈이란 게 마술이니까… 이게 사람에게 힘이 될지 해코지가 될지, 사람을 회전시키고 굴복시키고 게으르게 하는 건 아닐지 늘 두려웠다. 그러나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다. 비겁한 게 ‘예사’다. 흔히 있는, 보통의 일이다. 감옥을 가는 것도 예사롭게, 사람이 비겁해지는 것도 예사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서운하거나 원망스러운 적 없으신가?”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흔치 않은 시대의 어른이셨다. 그냥 바쁘게만 살아가던 중에 우연히 알게 된 선생님의 삶과 촌철살인의 통쾌한 해답에 깊은 감동이 있었다. 팔순의 나이에도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정신이 맑고 향기로울 수 있는지 궁금했고, 또한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신 삶에 경의를 표하고 귀감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머리로만 이해했을 뿐 약간의 비겁함이 예사로웠기에 존경하고 더 우러러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선생님 연배에 이른 분들을 뵈면, 4·19에 열렬히 참여하고 독재에 반대했던 분들이 나이 들며 급격히 보수화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의제든 종북이냐 아니냐로 색칠을 해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시하는데, 이런 세대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그럼 산파적인 직업은 뭔가?”


 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 장의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실제 장의사는 산파적인 사람들인데. 여하튼 갈등을 먹고사는 장의사적인 사람들이 이런 노인네들을 갈등 속에 불러들여서 이용하는 거다. 아무리 젊어서 날렸어도 늙고 정신력 약해지면 심심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심심한 노인네들을 뭐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꾸며 가지고 이용하는 거다. 우리가 원래 좀 부실했는 데다가… 부실할 수밖에 없지, 교육받거나 살아온 꼬라지가…. 비겁해야만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야비하게 남의 사정 안 돌봐야만 편하게 살았는데. 이 부실한 사람들, 늙어서 정신력도 시원찮은 이들을 갈등 속에 집어넣으니 저 꼴이 나는 거다.”




“젊은 친구들한테 한 말씀 해 달라. 노인세대를 어떻게 봐달라고….”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 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 중 일부만 소개했기 때문에 전문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어쩌면 도발적인 헤드라인에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적어도 나이가 오십이 넘은 사람들은 그 인터뷰 내용을 읽어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깽깽이풀꽃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고 한 어른이 돌아가시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채현국 선생님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의 한 구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대의 어른,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나신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님의 명복을 빈다.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이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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