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얼마 전에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님이 선종하셔서 나라의 큰 어른을 잃었다. 많은 사랑과 가르침으로 우리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시곤 하셨던 터라 더욱 큰 슬픔이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정 추기경님이 평소에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씀을 남겼다고 전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지만 현실에서는 매일매일이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활을 하게 된다. 행복을 지상과제로 생각하고 오롯이 그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만 너무 매달리면 오히려 더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별히 이거다 하고 정의할 수 없는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집착하다 보면 계획대로,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모든 것들에 의해서 더 불행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영화 ‘미나리’를 보고 난 후 저녁 먹거리를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허겁지겁 먹은 탓에 배탈이 났다. 왼쪽 옆구리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나아지길 반복해서 식사 때마다 여간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고, 또한 다른 원인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미련하게 꼬박 이틀을 고생한 후에야 동네에서 명의라고 소문난 내과를 찾았다. 그간의 사정을 듣고 난 후 의사 선생님이 배를 만져보고는 배에 탈이 난 거니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 먹으면 된다고 그냥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말씀하셨다.
며칠을 고생하고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난 후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완쾌가 되었다. 나의 평온하고도 행복한 일상을 한순간에 불행하게 만든 복통으로 인해 새삼스럽게도 오랜만에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한순간 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항상성을 가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몸의 중심은 머리도, 가슴도 아닌 ‘아픈 곳’이라는 것과 결국 행복이라는 것도 어떤 대단한 것이 아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매일매일의 일상의 소중함,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일상을 지키면 무너지지 않는다. 한편으로 보면 우리들의 일상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루틴과 지루함일 수도 있겠지만 그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는 금방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회사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또 퇴근 후 함께 먹는 저녁이 있는 삶, 매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우리는 이미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모두가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수필 '힐링역에 내리다'중에서
영화 ‘행복(2007, 감독 허진호)’에서 오늘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보다는 내일의 삶에 대한 준비와 걱정으로 돈 벌 궁리에만 골몰하는 주인공 영수(황정민) 와의 말다툼 끝에 은희(임수정)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난 내일 몰라.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면 안 돼? 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앞날을 지금부터 걱정해. 오늘 하루 잘살면 그걸로 됐지. 그리고 또 내일도 잘살고. 그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 나는.”이라는 은희의 말처럼 하루하루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오늘의 매일매일의 일상이 모여서 내일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