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시선에 내 인생을 빼앗기지 말자'

주변의 시선과 거리두기

by 봄날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 취업 대신 도배사로 일을 시작한 청년이 있었다. 얼마 전 유퀴즈란 프로그램에 나와 이름처럼 반짝이는 모습(윤슬)으로 대담을 나누는 그녀는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요즘 때아닌 이슈가 된 손과 발을 사용하는 정직한 노동의 현장에 사회적 시선과의 거리두기를 하고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는 일하는 정직함 이상으로 많은 다른 느낌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7,80년대의 급속한 경제개발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사회적인 분열과 투쟁의 최 전선에서 노동이라는 말이 자주 쓰여서 그런지 아직도 노동이라는 말에 단어 그 자체의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사회 전반에 걸쳐 노동에 대한 존중과 가치가 지켜지지 않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도배사로 일하겠다고 결정한 그녀와 그녀를 응원하는 가족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보낸다. 단순히 특별한 취업에 도전했다고 박수를 보내고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에 대한 상식의 파괴와 도전에 대해 그 뜻을 우러러보는 것이다.



오래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엄마의 손이 조금 덜 가도 될 때쯤 아내가 문득 부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팀장으로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의 삶을 꾸려가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는 급여 수준이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내의 말인즉슨, 아이들이 크고 나니 여유가 좀 생겨서 그런지 정직한 노동을 하면서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란 잔칫상에 높이 쌓아 데코레이션 하는 하얀 플라스틱 사출물인 박하사탕에 빨간색 줄과 초록색 줄을 긋는 것이었다. 박하사탕 한 개당 오원이 안 되는 돈이었다. 아내는 일주일마다 한봉다리씩 가져다주는 하얀 사탕모양에 줄 긋기를 작업량 이상으로 매일 신바람이 나서 밤새 하기도 했다.



물론 한 달에 몇십만의 부수입도 생겼고 아내는 매우 즐겁게 노동했지만 나는 아파트 주민들의 시선이 꽤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잔 사 먹을 때마다 그 돈이면 아내가 하얀 박하사탕에 빨간 줄과 초록 줄을 천 개는 긋는 노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매사 스케일이 작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이 갈수록 하얀 사탕에 줄을 긋는 붓질이 한석봉은 울고 갈 정도였다. 그러나, 일 년쯤 지난 어느 날 장인어른께서 집에 오셨다가 베란다에 수북이 쌓인 하얀 박하사탕 봉다리를 보고 난 후 아내의 그 정직한 노동의 즐거움은 끝이 났다.



물론 그 박하사탕 줄 긋기 이후에도 밤 모양의 플라스틱 사출물을 진짜 햇밤과 같게 그리는 작업도 이어졌지만, 아내의 건강에 대한 염려와 장인의 오해를 부담스러워 한 나의 간곡한 요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 살면서 주변의 시선 또한 부담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도배사로 일하게 된 그녀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시선에 대해 창조적인 파괴와 도전을 한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그녀의 인생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당당하고 멋져 보였으니 비범한 일이다. 앞으로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하던 그 정직한 노동의 개념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의 손과 발을 사용하지 않는 대체노동이란 존재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선과의 거리두기에 성공한 그녀의 신선한 용기와 멋진 삶에 박수를 보낸다. 어느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듣게 되는 가장 후회하는 말이 남들의 시선 때문에 내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의 시선에 내 인생을 빼앗기지 말자'라는 그녀는 이미 인생의 절반은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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