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이야기
대관령에서 해마다 열리는 겨울 음악제를 관람하기 위해 알펜시아 리조트 호텔에서 숙박을 하던 중 계속된 폭설에 음악제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때 TV에서 몽골 고비사막에서 생활하는 한 몽골인이 쌍봉낙타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서 마두금이란 첼로와 유사한 악기를 켜고 있었다.
몽골에서는 어린 새끼 낙타가 어미를 잃고 나면 굻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모성애가 강한 낙타는 자신의 새끼가 아니면 다른 새끼 낙타에게는 젖을 물리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다른 어미 낙타를 앞에 세워두고 마두금이란 악기를 구슬프게 연주하면 어느 순간 어미 낙타는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이내 큰 눈망울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그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신비롭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어미 낙타가 어떻게, 무슨 사유로 저렇게 마두금이란 현악기의 슬픈 음률에 맞추어 그 낙타를 안쓰럽다는 듯이 목덜미를 쓰다듬어주며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이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지 신비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쌍봉낙타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미 잃은 새끼 낙타를 데리고 와서 젖을 물려도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젖을 내어주고 어린 한 생명을 구하는 의식을 치러낸다. 어미 잃은 새끼 낙타를 살리는 몽골인들의 지혜롭고 신비스러운 의식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어미 낙타의 젖동냥을 할 수 없고 어미 잃은 새끼 낙타는 결국 굻어 죽고 만다고 한다.
한편, 산 소의 가죽을 벗겨 제물로 바쳤다는 무슨 법사의 엽기적이고 끔찍한 저녁뉴스를 보면서, 자신은 인간을 신뢰하지 않기에 ‘동물의 왕국’만 즐겨 본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가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다. 집에서 농사일을 거침없이 도와주던 힘이 무척 센 소가 있었다. 몇 년이 흐르고 무슨 연유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소를 먼 거리에 있는 우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에 일어났던 신기한 장면이 생각났다.
이른 아침부터 유달리 뽀얀 콩을 많이 넣고 함께 끓여낸 쇠죽을 먹이고 있었다. 특별한 아침을 먹인 후, 아재들은 그 소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함께 일해 온 석별의 정을 나누고 먼길을 떠나려 할 때 그 소의 큰 눈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눈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울고 있는 소를 보고는 어린 나이에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난 후로는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아무렇게나 대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개구리 한 마리도 함부로 살생하는 일이 없었다. 물론 그 이후 어린 시절은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언젠가부터 마음의 준비가 되면 반려견을 입양할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함께 일했던 회사 선배가 경비업체에서는 그 직원들은 보신탕만큼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무상의 필요에 의해 체력증진과 건강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그들이지만 함께 경비를 서는 동료 의식과 더불어 충성스럽게 주인을 지키는 개는 그들이 고객의 재산을 지키는 진심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대관령겨울음악제’에 가기 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성을 인용한 스토리인지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물을 마시기 위해 우물을 파지 않았다. 우물 속이 궁금해서 우물을 팠다"는 말처럼 세계적인 명감독이 재해석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그 뮤지컬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노래와 안무, 그리고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눈에 먼저 들어오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화면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특히, 그 영화 대사들 중의 한마디, “생명은 사랑보다 소중한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