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 조지 포먼(Big George Foreman)
시월초, 가을 여행으로 전남 신안군에 있는 ‘섬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했다. 신안군은 우리나라의 3천 개가 넘는 섬 중에서 1025개가 분포하고 있는 곳이다. 섬은 일단 접근성이 떨어져서 쉽게 여행할 수 없는 곳이지만 기회가 되어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그중에서도 소악도, 기점도를 중심으로 그 언저리 섬에 나누어져 있는 ‘순례자의 섬’이 특히 인상 깊었다. 예수님의 제자 12 사도의 이름을 딴 작은 교회 12곳을 순례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처음의 기획의도와 달리 세계적 작가들이 참여한 그 12곳의 작은 교회를 12 사도의 이름에서 일반명사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었지만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아, 아니 게을러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내게는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내 덕분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어 섬티아고 순례길을 가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성당에 다니지는 않지만 저녁 산책을 할 때 가끔씩 동네 성당에 들러 마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 서서 아내가 촛불을 켜고 기도할 때 나도 덩달아 짧게 기도 한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용서를 빌거나 회개는 없고 그저 기복만 하는 낮은 단계의 믿음이다. 그것도 세계평화나 이웃이 아닌 가족을 포함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순례도 다녀왔으니 앞으로는 더욱 성숙하게 가끔 회개도 하고, 두나라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 젤렌스키 말고 우크라이나와 하마스 아닌 팔레스타인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저항의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 하마스도, 복수심에 이성이 마비된 이스라엘도 지지하지 않는다. 또한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저지른 만행에는 외면하던 서방국가 사람들의 불공정한 분노에 동의하지 않는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침묵하고 동조했던 콤플렉스인 것은 알지만 모든 생명의 가치와 무게는 동등하기 때문이다.
해 질 무렵 무안에 있는 비치호텔에서 저녁 산책을 마치고 다음날 순례자의 길을 걷기 위해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TV에서 보여주는 영화 예고편에서 너무 반가운 이름을 보았다. 그 이름은 무하마드 알리만큼이나 유명했던 전설의 복서, 세계헤비급 챔피언 조지 포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빅 조지 포먼’(Big George Foreman, 2023)이었다. 섬티아고 순례길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영화를 찾아보았음은 물론이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올랐지만 천부적 재능 탓에 교만했던 조지 포먼은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하고 난 뒤 링을 떠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고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지역사회를 돕기 위해 38세에 다시 복싱을 시작하게 되면서 45세의 고령에 아들 뻘의 마이클 무어러를 물리치고 거듭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는 내용이었다. 이기면 조금 배울 수 있지만 지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가 운영했던 지역 청소년센터의 유지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핵심역량을 재활용하기로 한 조지 포먼과 같은 생각을 잠깐 했던 적이 있었다. 무탈하게 회사의 소임을 마치고 얼마 후 다른 회사를 맡아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몇 번 받았지만, 내 인생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고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돈 말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몇 년만 더 참고 일하면 그 돈을 가지고 ‘좋은 일’에 충분히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조지 포먼처럼 그런 큰 인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치열하게 살았으니 앞으로는 내가 꿈꾸던 또 다른 내 인생을 열심히 살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런 나눔의 결핍 때문인지 나는 인생 후배들인 배우 정우성, 가수 아이유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추앙한다. 그 이유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이웃들을 생각하는 그들의 개념과 의식이 내게는 이 시대의 챔피언이고 또 다른 빅 조지 포먼인 것이다.
평소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사는 것조차도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나눔 또한 돈을 더 벌고 말고의 문제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단지 베풂과 배려에 대한 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개 인간은 권력을 쥐면 본심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너무 많은 돈을 벌면 본색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및 남아메리카를 포함 많은 독립운동의 리더들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달콤한 유혹의 혁명가들 역시 권력을 잡고 난 후 대부분 독재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호의호식했다. 또한, 알만한 세상의 많은 슈퍼리치들 역시 아내와 고생은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부자가 된 후 그 즐거움은 조강지처 아닌 다른 여자와 나누고 있음은 물론이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온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인간성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돈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작은 힘이라도 있어야 겸손할 수 있고 적은 돈이라도 있어야 검소할 수 있는 것이다. 힘이 없는 겸손은 비굴함일 뿐이고 돈이 없어 아낄 수밖에 없다면 궁핍함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평안한 일상을 누리며 TV를 볼 때마다 각종 구호단체의 정기후원 광고를 보면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가 많다. 오롯이 그런 미안한 마음을 씻고자 오래전부터 국제구호단체 몇 군데를 정기후원해 왔다. 매달 그 자동 계좌이체 메시지가 핸드폰 화면에 뜰 때마다 미소 짓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그릇의 크기가 딱 그 금액만큼인 것만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