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지하 주차장에서 함께 엘베를 탄 중년 아주머니 세분이 말씀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대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시험시간에 빨리 답안지를 작성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돌리느라 늘 그 친구만 학점이 C등급을 맞았고 자기네들은 모두 A, B등급을 받았다는 얘기를 하면서 크게 웃었다.
우연히 그 얘기를 듣고도 생소하지 않은 나 자신을 보고 그들과 같은 대학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절을 살아냈던 내가 언제부터 공정과 정의를 우선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분명히 달라졌고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코로나 사태로 세계 최고의 미국에서 조차 92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1861년에 시작된 남북전쟁에서 52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 숫자는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한 모든 미국인들을 더한 사망 숫자보다 많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헌신적인 의료진과 질병관리청의 노고에 늘 감사하고 미안할 뿐이다.
한국전쟁에서 폐허가 되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나라를 재건하고 다른 나라에 원조를 해주고 있는 나라가 된 세계 역사상 유일한 나라가 되었지만 분단과 전쟁을 잊은 지 오래다. 우리 스스로도 세계경제 10 대국의 선진국에 진입했다며 사례를 들기에 바쁘고, 각종 재난에는 국난극복이 취미라는 우스갯소리로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를 자랑하곤 하지만 그 소리가 좋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일일이 예를 들지 않아도 망가지거나 빼앗긴 나라를 다시 세우고, 되찾는 일은 언제나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피눈물과 희생적 삶의 노력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모든 재난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열심히 사는 보통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휴전 중이지만, 이 땅에서 다시 한번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이젠 정말 끝이다.
사람이든 국가든 잘 나갈 때가 아니라, 스스로 잘 나간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위험할 때다. 조금 더 긴장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도약할 수 있지만, 교만하면 국가나 개인은 불행한 과거를 잊게 마련이고, 그 잘못된 과거를 다시 반복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도 미성숙한 부분이 많지만, 경제지표상으로는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겨우 강요된 애국심이 아닌,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오직 정치분야만 성별, 계층별,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며 과거로의 퇴행적 정치를 하고 있어 국민들이 오히려 그들을 걱정하고 있는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OECD 국가 중 신뢰도가 최하위인 한국 언론과 기득권 부패 카르텔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많은 지식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지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깨어있으면서도 잠자는 척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깨울 수 없다. 그 사람들은 늘 정당한 이유로 그릇된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바닷물은 3%의 소금기로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 3%의 성숙한 집단지성을 믿어 볼 수밖에 없다.
세계는 다시 강대국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하고 있고, 대격변의 시대에 우리 정치만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짠맛을 잃어버린 바닷물처럼 출렁이고 있다. 한편,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은 분단된 한반도를 지속적인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남북한을 이용만 할 뿐, 한국의 통일에는 관심도 없다.
지금,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대전환의 격변기지만 경제와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기대하기에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 너무 암울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이 있다. 부패 카르텔과의 싸움에서 실패하고, 개혁을 포기하면서 선진국의 문턱에서 추락한 후 후진국의 길을 걷고 있는 남미의 몇몇 나라들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