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이 양심을 만날 때 비로소 공정이 된다

공평과 공정

by 봄날


작년부터 정신건강을 위해 뉴스를 안 보려고 노력해 왔는데, 요즘은 가능하면 뉴스를 찾아보려고 채널을 돌리고 있다. 얼마 전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선전포고 없이 엄청난 숫자의 로켓을 쏘아댔을 뿐만 아니라 영토를 침범하고 음악축제를 즐기던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납치하면서 벌어진 양측,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닌 하마스 간의 전쟁 때문이다.



전쟁의 룰을 어긴 무자비한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지하지도 않지만, 세종시만한 면적에 200만 명이상이 밀집해 살고 있는 봉쇄된 가자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전기, 수도는 물론이고 식량마저 끊은 채로 가혹한 보복을 가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고 있으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가자지구에 빼곡히 들어선 삭막하고 초라한 건물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겨우 국제원조에 기대어 눈물겹게 생존해 왔기 때문이다.



75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양측의 충돌은 간간이 뉴스가 되고는 했지만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나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핍박과 탄압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는 눈감다가 이번 하마스의 만행에는 엄청난 분노와 함께 즉시 항공모함을 보내 위협하고, 즉각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결의를 표출하는 서방국가들을 보면서 공평하지도 않지만 공정하지도 않은 그들의 위선을 비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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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하면서 시작된 그 역사적인 갈등의 원인과 이유를 잘 아는 지성인들이라면 팔레스타인 아닌 잔혹한 하마스를 비난할지언정,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함부로 지지하지 못하고 이 잔인한 전쟁의 향배를 지켜보며 양측의 죄 없는 민간인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작금의 사태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어느 한쪽을 지지하거나, 어느 한쪽만 비난할 수 없는 그런 공평이 양심을 만날 때 비로소 공정이 된다. 이스라엘이 먼저 야비한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컬럼비아대학은 물론 많은 유럽 대도시에서 양측을 지지하고 비난하는 시위가 동시에 이어지는 이유는 ‘공평과 공정’의 이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트위터 이미지


지금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은 아이언돔만 믿고 강경정책과 함께 국가안보에 큰소리를 쳐왔지만, 이번에 망신을 당하고 난 후 핑계 삼아 전면 전쟁을 치를 기세를 보면, 최소한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은 몰라도 서쪽 해안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이자 하마스의 주요 활동 거점인 가자지구의 완전한 소멸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화기 밖에 없는 가자지구를 폭격기, 탱크, 미사일을 동원해 짓이기는 것은 사실 전쟁도 아니고 일방적인 학살일 뿐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절대 팔레스타인 문제를 히틀러가 그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처럼 그렇게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껏 했던 가자지구 봉쇄와 무차별 폭격만으로도 충분한 복수를 했으니 UN의 권고대로 그만 자제해야 한다. 계속되면 레바논의 시아파 무슬림 지하드인 병력 10만의 헤즈볼라, 이란등 이스라엘 주변의 무슬림 국가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유대교 근본주의자이며 극우 정치인이다. 이번 집권기간을 더하면 이스라엘을 16년간 장기 집권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도록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그의 부인은 도를 넘는 사치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극심한 국론 분열과 함께 그럴 때마다 팔레스타인 강경이슈로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가 하면 반발한 일부시민들은 그런 예비군 소집을 거부하기도 했었다.



최근 무장정파 하마스의 행동도 강경일변도의 네타냐후 정권의 대팔레스타인 정책 탓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지금도 전쟁 중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도 정치인들의 부패에 지친 국민들의 70%가 넘는 전폭적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무능한 젤렌스키는 실정으로 그의 지지율이 20% 초반까지 떨어지자 그 지지율을 만회하고자 시선을 외부로 돌려 EU와 NATO가입을 적극 주장하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동강, 영월


그동안 미국과 러시아와의 협약을 무시하고 NATO가 코앞까지 세력을 넓혀오는 것에 위기를 느낀 러시아 푸틴이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는 시도를 중단하지 않으면 즉각 침공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여러 번 보냈지만, 젤렌스키는 대책 없이 큰소리만 치다가 결국 전쟁으로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지금껏 전쟁무기와 전쟁비용을 구걸하고 다니고 있다. 게다가 이번 하마스사태로 인한 남의 불행 앞에 우크라이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처지가 되었다.


붉은 메밀꽃


물론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납치한 하마스처럼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이웃나라를 침략한 러시아가 제일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평화를 원하는 두나라 국민들에게 잘못된 대의명분을 앞세워 참혹한 전쟁을 겪게 하고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옳고 마땅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지점이 될 것이다. 잊고 있지만, 우리도 휴전 중이며 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의 화약고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일부 잘못된 정치인들에게서 비롯된 전쟁의 시작처럼, 모든 전쟁은 일어나는 그 과정이 대동소이할 뿐이다. 국가의 안위와 평화보다는 정치인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며, 아님 말고식의 대책 없이 큰소리만 치는 정치인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아무 생각 없고 무지한 일부 국민들이 그들의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국민이 부패하고 무지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침략자 러시아 푸틴이 무너뜨린 국제질서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깨트린 선전포고 없는 전쟁의 룰은 이제 앞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의 잔인한 전쟁교범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의 기후변화 속도에 따르면 앞으로 2100년까지 기온이 3.4도가 더 오른다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 2백 년 동안 기온이 1.2도가 올랐는데도 세계적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아마도 그때쯤이면 지구는 지금처럼 존재할 수나 있긴 한 걸까.



더불어, 세계 여러 곳에서 이미 무너지고 있는 국제질서와 전쟁의 룰로 인해 그 최악의 기후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지금까지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 뻔하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우선되지 않는 국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국제관계와 함께 서로 탐욕만 부린다면, 종국에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영화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장면처럼 핵전쟁이 일어나고 지구의 북극에서부터 벌겋게 타올라 내려오는 화염의 운명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갑자기 부엌 쪽에서 아내가 내게 바쁘냐, 뭐 하고 있느냐고 묻길래 그냥 글 쓰고 있다고 했더니, 세탁기에서 세탁한 양말을 잔뜩 꺼내주더니 짝을 맞추어 펴고 베란다 건조대에 가져다 열란다. 그리고 건조대에서 마른 타월을 먼저 거두고 개는 게 우선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가을이라고 여행 다니다 모처럼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내 가족, 내 새끼만이 아닌 세계평화의 거대담론을 주제로 사색하고 있는데 소소한 일상은 또 어쩔 수가 없다.



언젠가 들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유치원을 다녀온 아이를 엄마가 반갑게 맞으며 “ 우리 아들, 오늘은 유치원에서 뭐 했어요?” 하고 물으니, 그 아이가 무심한 표정으로 “ 뭐 하긴 뭐 했겠어, 색종이 자르고 풀로 붙이고 그랬지 “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 뭐 하긴 뭐 했겠어, 음악 듣고 글 쓰는 걸 보면서도 집안일을 시킬 때마다 아내는 그렇게 되묻곤 한다. 오늘 저녁에는 밤산책 후 동네성당의 성모마리아상 앞에 촛불을 밝히고 하마스 아닌 가자지구의 무고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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