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책으로 배웠어요.

아무렴 무작정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by KayYu

피아노의 빠른 연주가 테크닉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테크닉은 코드, 레가토, 루바토, 스케일, 아르페지오, 스타카토 등의 다양한 주법과 적절한 페달링 등이 아우러진 복합적인 개념으로 한정 짓고 빠른 연주 속도는 이 모든 것을 한 바구니에 담고 그대로 들어 올리는 것을 상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둘 사이에는 깊은, 아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운전을 하면서 과속방지턱을 천천히 넘어가면 뒷좌석에 잠들어 있는 아이가 깨지 않지만 행여나 한 눈 파는 사이에 덜컹 넘어갈 경우 엉덩이도 아플 것이고 충격도 꽤나 크다. 빠른 속도에서는 모든 테크닉이 한 번에 무너지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속도가 문제인지, 테크닉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대 환장스러운 면이 있지만 속도가 빠르지 않다 하여 피아노 기량이 부족하다는 폄하, 혹은 그 반대로 빠르기만 하면 굉장히 실력이 뛰어난 것처럼 호응하는 잘못된 인식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길거리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속주 실력을 보여준다. 그만큼의 역량을 쌓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을 해 왔음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빠르다는 것 외에 음악을 느끼는데 필요한 많은 요소들을 찾기 어려운 점과 그렇게 해야 '피아노 잘 치는 핵인싸'로 박제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속주가 아니면 조회수를 올릴 수 없기에 '음악'은 잠시 숨겨두고 있을 거로 믿고 싶다.


속도를 높이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는 크게 두 가지를 얘기한다. 천천히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올리는 방법과 처음부터 빠르게, 원 템포에 가까운 속도로 시작하여 다른 테크닉을 끌어올리는 방법 두 가지. 여러 트레이닝 강의나 지도 교재를 들춰보면 대략 8:2 정도의 비유로 '점진적으로 올리기'가 훨씬 많다. 그리고 이어서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아주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으로 보인다. 초보자에게는 어느 쪽이 좋을지 생각해 보면 안타깝게도 이 질문은 초보자에게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초견도 힘든 초보자는 애당초 빠르게 연주할 수 없기 때문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피아노 관련 전문서적은 피아노 전공생 등 음악을 업으로 하는 독자를 대상으로 쓰인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아쉽게도 초보자를 위한 친절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할 듯 하다. 결국 이것저것 중 선택해야 할 처지가 아닌 초보자들의 유일한 방법은 천천히 끌어올리는 길 뿐이니, 이리저리 잴 필요 없이 하나만 바라보면 되고, 대신 잘못된 습관을 들이지 않도록 요령을 습득하는 게 올바른 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속도를 높이는 게 잘 안되다 보니 여기저기 책을 들여다보았고 결국 같은 얘기들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이제 책은 좀 그만보고 그 시간에 연습이나 해야겠다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천천히 시작하는 것에도 주의할 점은 있다. 마음은 이미 길거리 버스킹을 하고 있으니 끝내주는 로망의 곡을 하고 싶지만, 무작정 덤벼들면 시간 낭비하기 십상이니 떡잎 볼 나무를 잘 골라야 한다. 우선 초견으로 능력껏 연주해 보면서 시간 체크를 해보자. 빈약한 테크닉 때문에 절뚝거리고 여기저기 부딪히면서도 마침표를 찍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전체 완주에 걸린 시간을 확인해 본다. 그 시간이 원 템포의 1/4 (25%) 정도라면 그동안 해오던 통상적인 연습으로 원 템포의 90% 정도까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면 선택한 곡을 공부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쉽지만 좀 더 실력을 향상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조언하고 싶긴 하다. 50% 이상의 속도라면 몇 번의 완곡으로 70~80% 템포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한다. 25%보다 낮다면 포기해야 하나요? 의지만 있다면 10% 속도에서 시작하여도 인 템포에 도달할 수도 있긴 한데 다만 그냥 의지가 아니라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고 안 되는 게 아니라 오래 걸릴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래 걸린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시간을 희생한다는 뜻이기에 올바른 방향인지는 스스로 잘 판단해봐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다가 결국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절반의 연주로 머물 가능성도 높을 것이고, 지겨움과의 난투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렴 속도가 좀 느리면 어떤가요? 속도라는 게 꼭 인 템포를 맞춰야지만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선택은 개인의 몫이 되겠네요.



하나 더, 조금씩 속도를 올려가는 과정에서도 레가토, 악센트, 핑거링, 페달 등의 테크닉과 규칙들을 지킨 상태, 그리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끝까지 완주한다면 그 속도에서 완성한 것입니다. 이제 속도를 조금 높여 다시 반복을 하고 좀 더 빨라진 속도 때문에 실수나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보인다면 반드시 그 부분만 다시 반복하여 실수를 고쳐내고 넘어가야 합니다. 잠깐 실수했네라고 생각하고 다음에 다시 할 때는 잘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면 대부분 다시 걸리기 마련이다. 반쪽짜리 완성해 놓고서 나중에 하나씩 고쳐가려 하면 이미 습관 된 기억들을 다시 고치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 수 있는데, 그건 그동안 열심히 실수하는 연습을 해온 셈이라는거죠. 속도를 높이면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니 자신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계속 연습할 이유가 생긴 것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내가 속도를 책으로 배운 내용입니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의 실패를 시작으로 빠른 곡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맛보면서 속도의 어려움으로 수 차례 펀치를 맞고 항복을 선언하기 직전이긴하지만 펀치의 경험이 진하기에 이를 잊지 않고 다시 일어려서한다. 뭐 진짜로 맞은거 아니잖아. 다시 해보면 되는 거잖아. 조금 더 차근차근 해 보면 되는거잖아. 이렇게 나의 어깨를 스스로 두드려보면서 의지를 불태워본다. 그러다 언젠가 될 꺼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 때 두고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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