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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Mar 20. 2019

내가 사랑한 움직임, 나를 사랑한 움직임.

운동이 노동이 되지 않도록.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몸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얘긴 아니다. 고질적인 허리디스크 때문에 너무 힘든 운동은 할 수 없을뿐더러 운동으로 하는 자기와의 싸움은 언제나 피하고 싶다. (크크.) 나는 그저 적당히 내가 행복할 만큼 움직이며 얻는 즐거움을 누린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으로는 춤, 걷기가 있고 가끔 수영도 한다. 나의 모든 운동은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다. 수영만이 아주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것인데 그마저 아주 초보자 수준으로 자유형, 배영, 평영 겨우 할 줄 아는 정도니 운동 능력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일 뿐. 이따금 자전거도 타는데 그건 운동용이라기보단 바람 쐬기에 가깝고.


춤은 그냥 언제 어디서든 약간의 리듬만 있다면 즐길 수 있어 좋지만, 그래도 스피커 가득 시끌벅적하게 음악을 틀고 여럿이 모여 강하게 에너지를 뿜는 공간에서 함께 출 때 가장 신이 난다. 개인적으로 클럽 문화를 좋아하지 않기에 클러빙보다는 동호회 형식의 모임이나 수업을 선호하는데 뉴질랜드에 온 이후 내가 시작한 것은 바로 Zumba dance다. 한국처럼 다양한 댄스 스튜디오가 많지 않은 이곳에서 어디서나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춤이 바로 줌바 아닐까 싶은데,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처음 접하곤 나와 너무 잘 맞는 춤이라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해오고 있다. 무려 이 시골 동네에도 클래스가 있을 정도니 뉴질랜드에서 줌바의 인기는 꽤 높은 편인듯하다. 내가 줌바를 좋아하는 이유는 살사, 메렝게, 힙합, 맘보 등 온갖 장르의 움직임이 골고루 섞여 있어 다양한 리듬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잘 추기 위해 만들어진 춤이 아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디자인된 춤이라 좀만 익숙해지면 어떤 동작이든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런지, 스쿼트 등 근력 운동 동작들도 포함하기에 그야말로 전신운동이 제대로 된다는 점 등이다. 사실, 줌바를 할 때마다 내가 정말 행복해지는 진짜 이유는 바로 사람들에 있다. 처음 줌바를 접한 그 순간 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함께 줌바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의 인생에 완벽한 주인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단 느낌을 받는다. 오늘 하루 먹고사니즘의 고단함이 어떤 무게였건, 인생의 크고 작은 고민들로 얼마나 시끄러웠건, 그 순간 그 자리에서만큼은 우리 모두 우리 인생 최고의 주인공이 된다.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나의 오감과 흥분에 몰입하는 그 찰나, 흑백영화 같던 삶이 총천연색의 필름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느낌이랄까. 그 진한 아름다움의 빛을 감히 내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을 나는 정말 사랑하기에 앞으로도 줌바를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처럼 내게 춤이, 이따금씩 찐하게 몰입하는 일탈 같은 것이라면 걷기는 빠지면 섭섭한 일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같은 것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린, 하고 나면 개운하고 빠뜨리면 왠지 찌뿌둥한 그런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이사할 동네를 고를 때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산책할만한 길이 있느냐를 챙기곤 했는데 닫힌 공간에서 러닝머신으로 걷는 건 잘 못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틀어놓아도 답답하고 지루하다. 대신 바람과 내리쬐는 태양, 때로는 흩뿌리는 여우비까지도 그대로 받아내며 걷는 걸 좋아한다. 지금 사는 동네는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산책로가 제법 잘 되어 있는 곳이다. 호숫가로, 바닷가로, 잔디 위로, 동네 골목골목 사이로 걷노라면 매일 같은 풍경 같아도 또 다르다. 어떤 생각을 갖고 걷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날씨와 계절 따라 천차만별 다양한 시간들이 펼쳐지곤 한다. 오늘은 동네의 한 학교 옆을 지나면서 마주쳤던, 흐드러지게 핀 라벤더 꽃밭의 청량한 향기가 쑤욱 내 코로 들어왔던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There’s no reason not to be happy here.


언젠가 전해 들은 소중한 말이 그 순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운동 그 자체로 즐거운 운동을 사랑한다. 체중 감량을, 조각 같은 몸매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 믿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내 몸을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아프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을 더 오래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내 몸을 움직이고 단련한다. 나 자신이 아닌 곳에 목적이 있는 운동은 피곤한 노동이 되기 십상이다. 함께 줌바 수업에 참여하는 몇몇 아줌마들을 보며 놀란 적이 있다. 산악자전거, 마라톤, 수영 등 철인 3종 경기에서나 나올 법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많은 운동량에도 불구 납작한 배는 없었다. 허벅지가 튼실했으며 등살도 올록볼록했다. 한국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하면 떠오르는 탄탄하고 마른 몸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주체적으로 운동하며 살아간다는 걸 알았다.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운동을 녹여낸 듯 보였다. 미디어가 만드는 완벽한 몸의 환상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삶, 난 그 심플한 삶의 방식이 좋았다. 그들처럼 나 역시, 운동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길 바란다.



어느 날, 동네 산보 중 발견한 귀여운 돌멩이. Be ama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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