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인정받고 싶고 아내는 위로받고 싶었다

서로의 물컵을 채워주지 못해서

by 로니부

아들이 일주일째 폐렴으로 입원 중이다. 아들한테 옮았는지 으슬으슬 몸이 떨리고 열이 올랐다.아마 3년 전 코로나 이후로 가장 몸이 아팠던 날이었다. 독감 기운이 온몸을 짓누르며 머리는 멍하고 팔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목은 따갑게 쓰렸지만, 아내는 일을 나가고 휴직중인 내가 아이를 돌봐야 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하루 종일 아들을 혼자 돌봤다.


아내도 역시나 힘들었을 것. 일주일째 퇴근 후 거의 바로 병원으로 와 나랑 교대 후 밤에 아이를 돌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도 퇴근해서 병원으로 오자마자 아내가 말했다. "나 무릎이 너무 아파. 시큰시큰해"


나는 일하랴 아이돌보랴 거기다 아프다는 아내에게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름 공감해준다고 "어떡해, 너무 아프겠다. 진료 봐 봤어?"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솔직히 그날은 내가 이미 한계였다. 나도 너무 아프고 힘들었으며, 그 와중에도 아내가 편히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보채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달래고 어르고 고생했었다. 정말 '격하게 공감해주는' 것까지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내에게는 부족함으로, 무심함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내가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보채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 곳곳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아들은 나랑 하루종일 있어서 그런지 엄마만 찾았다. 어쩔 수 없이 1층 편의점으로 가 미봉책으로 과자를 사주고 겨우 달래서, 아들을 데리고 내려가 기다렸다. 힘든 몸을 이끌고 병실로 다시 올라왔을 때, 아내가 말했다. "애기한테 과자 너무 많이 주지 말라고." 아내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순간, 아무 말 없이 정색하는 그 표정이 너무 크게 사무쳤다. 나도 배려한다고 내 딴에는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며 겨우 진정시켜서 처음 준 건데, 마치 과자만 먹인다고 면박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훗날 들어보니, 아내는 자기가 아프다고 말하는데 아기한테 과자만 먹이는 내 모습이 신경도 안 쓰고 야속했다고 했다.


그치만 그순간에 '내가 고생과 배려는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뭔가 잘못한 사람이 되어 혼나는 듯한 분위기가 싫었던 것 같다. 순간적으로 서러움, 억울함, 화가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내 속에서는 울분이 튀어나왔다.


조금 후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까 감정적이어서 미안해… 우리 지쳐있어서 그런가 봐…" 그 메시지를 보면서 내 마음도 조금은 풀리려다가도 일부러 읽고도 답장하지 않았다.


사실, 아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그녀도 퇴근 후 병원 들렀다가 와서 지쳤을 것이고, 무릎이 아프다는 얘기에 무신경하게 반응한 남편에게 속상했을 수도 있다. 나는 낮에 아픈 몸으로 하루종일 아이를 보고 아내는 퇴근하고 밤에는 아이 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이게 반복되니까 서로 여유가 없는 거다.​ 그날 밤 내 감정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아프고 힘들고 나도 배려하고 있는데 아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느낌. 그 인정받지 못함, 그 허탈함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결국 우리는 둘 다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픈 무릎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말 한마디가 필요했고, 나는 나대로 독감으로 죽을 것 같은 몸으로 하루 종일 육아한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서로 자기 컵이 비어있는데, 상대의 컵을 채워줄 여력이 없었던 밤. 그렇게 우리는 둘 다 목말라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았다.


육아는 이렇게 때때로 우리를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못되게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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