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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Jul 07. 2022

<山녀 -6> 경험주의

4년 전 첫 직장을 퇴사했다. 입사하기 까지 얼마나 긴 노력을 들였는지는 나보다 주변에서 더 잘 알았다. 지금 생각해도 옳은 선택이었고, 그때도 단일 선택지였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진 시간이 꽤 걸렸다. 다시 취직할 때까지 들여야 할 시간과 정신적·물리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친구, 동료, 엄마아빠에게 “나 퇴사할 거다”는 말을 200번 하고 나서야 그해 마지막 날 짐을 쌌다. 이듬해 내 생일 엄마는 “나라면 하기 힘들었을 결정을 네가 하는 것을 보고 멋지고 부러웠다”고 편지에 써줬다.  솔직히 퇴사가 멋있을 건 하나도 없다. 다만 내가 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러나 동시에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한 경험이 현재 자산의 하나가 됐다.

경험주의자가 되기까지 가장 오래된 기억은 11살 때다. 걸스카우트에 입단한 날. 여름이 되면 학교 운동장 흙바닥에 텐트가 들어서고 제복을 입은 초456학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직접 밥을 지었다. 학교에서 1박 예행연습을 한 뒤 다음 날엔 어디론가 단체로 버스를 타고 가 또 하루를 자고 온다고 했다. 엄마아빠도 없이 밖에서 야영을 한다고? 어린이가 어떻게 그래? 엄마는 내게 제복을 입혀 입단시켰다. 안 친한 언니동생들과 코펠로 밥 짓고 땅에 못 때려박고 침낭을 펴고 누워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천마산 중턱에서 야영을 했다. 새벽에 방에 들러 이불을 발 끝까지 내려줄 엄마아빠 없이 자려니 침낭 속에서 잠이 안 왔다. 갑자기 누가 와서 텐트를 부수고 납치하면 어쩌지? 다음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으로, 그러나 ‘어? 별 일 없는데?’ 하면서 깼다. 그 즐거운 풍찬노숙은 21살 배낭여행 때 이 공항 저 공항에서 노숙할 용기를 만들어 낸 발단이 됐다.

첫 시도는 웬만해선 무섭다. 첫 면접, 첫 해외 장기체류, 첫 기숙사 생활, 첫 출근과 퇴사, 첫 고백, 첫 독립 등등 돌이켜보면 내겐 다 그랬다. 무서워서 안 하고 내뺐으면 어땠을까? 면접 탈락은 어떤지, 인종차별은 어떤지 몰랐을테고 어떤 면역력도 길러지지 않을 거다. 퇴사해도 굶어죽는 거 아니고 내가 들어갈 곳은 어딘가 또 있다는 건 회사 안에서 벌벌 떨고만 있을 땐 알 수 없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직접 결정하고 그 책임을 스스로 져보는 경험이 쌓일 때 그 이후 결정해볼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절대적으로 하지 않아도 될 경험들만 아니라면.

내가 저질러놓은 한라산 등반을 10시간 째 수습하던 하산길, 한 모자를 봤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땅 바닥에 앉아 있었고 그의 엄마는 저 아래 앞서 내려가고 있었다. 두꺼운 나뭇가지를 붙들고 아주 죽겠다는 표정으로 앉아서 더 이상은 못 가겠다며 엄마에게 와달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엄마는 천천히 되돌아 올라왔지만 똑같이 지쳐보였다. 엄마가 아들을 업고 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제 발로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고 나면 당장 ‘자신의 발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을 오름’ 뱃지를 얻을  것이고, 결국 경험 뱃지의 축적으로 도전의 폭이 넓은 사람이 될 거다. 해볼까 말까 싶을 땐 일단 해보는 경험주의자의 모습으로. 보급형 정주영 회장이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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