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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05. 2024

꼬깃꼬깃 접은 오천원과 생일 파티

흙투성이 바지. 여린 주먹.그리고 냄새

유치원때부터 8년 내리 연속 한반이었던

시골 학교  큰 아이 21명 친구들은

유독 서로 서로 돈독했다.


큰 녀석은 그 해 자기 생일 파티에 반친구 모두를 초대하고 싶어했다.

좋은 생각이라 얘기해주며

단!

한명도 빠진 친구가 없도록

꼼꼼히 연락하라고 일러주었다.


반 친구 남자아이A와 B도 반드시

초대를 해야한다고 나는 조건을 붙였는데

친구들과 한발짝 떨어져있는 아이들이었다.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해 

양해를 구하고 얻은 번호로

A와B 부모님들께 내가 전화를 했다.

 

A어머님은  초대를 고마워하며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우리 집에 처음 놀러온 A는

신발을 벗고 현관에 들어서자

흥분된 몸짓과 목소리로 즐거워했고

지켜보기에 참 좋았다.


어렵사리 B 아버님과 통화가 되었을 

B의 아버님의 목소리는 매우 경직되어 있었다.

난 B와 같은 반 아이 엄마이며

아이 생일 파티가 있어서 B를 집에 초대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지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제서야 아버님은 낯선 여자 전화에 대해

경계심을 내려 놓으셨다.

그리고 시쿤둥하게 말씀하시기를,

B는 지금 일을 하러 밭에 나가 있어요.

방학 중이니 할 일도 딱히 없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는데 보냈어요.

난 큰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와 있어서요.했다


난 다음 말이 짐작되어서

아.네네.걱정마세요.

제가 B가 있는곳을 말씀해주시면

밭에 가서 아이를 저희 집으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잘놀고 7시 무렵에 집으로 다시 데려다 드릴께요.하고 안심시켜드렸다.


B 아버님은 아이가 일하러 가 있는

주인 아주머니 전화 번호를 하나 일러주고는

전화를 한 후 애를 데려가도 좋다고 다.

 

처음에

난...


B가 지금 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소소한 집안 일을 거들고 있다.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아이는 일당을 받고 남의 집 밭일을 하러 나간 상황이었다.

그때 아이는 초 6학년이었다.


이건 뭐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나는 알지 못하는 B 가정사를

섯부르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진심 애를 썼다.


날씨가 풀렸다고는 하나

아직은 그래도 추운 날씨였

아이가 자기 집 밭 일을 거드는것도 아니고

일당 받고 밭일을 하러 나갔다니.

초6학년 남자 아이가 추운 겨울날

밭에서 할수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이들과 모이기로 약속한 1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

그 아이를 데릴러 아이가 일하고 있다는

밭 주인 집 근처로 바쁘게 내려갔다.

 

내가 그 집앞에 차를 세우고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는 매우 짧은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무겁고

체한것처럼 울렁댔다.

내가 평생 처음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아니야.

이건 내 맘대로 넘겨짚은 심각한 편견일지도 몰라!

동시에 마음 속에 이는

이 두가지 복잡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을때

그 아이가 그 집 현관을 열고 내 차로 다가왔다.

 

 B야. 안녕?

내가 인사를 하자  아이는

누가 자기를 생일 파티에 초대를 했고

누가 자기를 직접 이곳까지 데리러 왔는지

매우 어리둥절 하고도 호기심나는 얼굴로

 차 유리창안을 고개숙여 들여다 봤다.


ㅇㅇ아. 이모야.ㅇㅇ이 이모.

아.이모 안녕하세요.

나를 누가 초대했나 했어요.

아이는 짧고도 쑥스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서

자.이리 타.빨리 가자.하니

아이는 내 차 조수석에 자리를 잡았다.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아이의 흙투성이 바지였다.

도대체 추운 겨울 밭 한가운데에서

이 아이는 무슨일을 했던걸까?

무슨일을 했기에 바지가 이리도 흙투성이가 되었을까?


얼어있는 밭에서 반나절 내내 뒹굴기라도 한것처럼

바지 앞과 뒤. 허리춤에서부터 바짓단까지

온전한 바지 고유의 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이의 바지는 흙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흙투성이 바지가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들었기에

나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B야.밭에서 무슨일을 했어.? 하고

묻고싶은 충동이 순간 크게 일었지만

혹시나 B가 대답하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묻지 않았다.


다만

ㅇㅇ아. 오늘 있지.ㅇㅇ이 생일파티하는데

네가 왔으면 했어.

그래서 이모가 너를 데리러 온거야.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운전하면서 그 집 골목을 돌아나오는데

언뜻  눈에 흙투성이 바지마냥

흙투성이가 된 그 아이의 여린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차안 공기를 묵직하게 가득 메우는

아이 몸에서 나는 짙은 악취에 잠시 당황했다.


나는 창문을 내리지 않았다.

 

운전을 하면서 흙투성이가 된 아이 바지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말이다.

조심스럽게 B에게 말을 건넸다.


B야.너 오늘 열심히 일했구나!

바지가 흙투성이가 되었네.

있잖아.

너가 필요하면

이모 집에 가서 이모가 깨끗한 바지 빌려줄께.

가서 그 바지로 갈아입자.


아!

이모는 네가  바지 그냥 입어도 괜찮은데

만약 네가 갑자기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서

혹시 지금 옷이 불편하면 말이야.

근데,

바지를 갈아입든 그대로 입든

네가 하고싶은 대로 그냥 하면 돼.알겠지?

(제발. 깨끗한 바지를 달라고 내게 말을 해주렴!)

그러나

아이는 바지는 갈아입지 않아도 된다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사실 흙투성이 바지도 바지였지만

우리 초대로 갑자기 이 아이가

옷차림을 준비못하고 우리 집을 왔기에,

이렇게 흙투성이 바지로

견디기 힘든 악취까지 풍기는 아이 모습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착한 반 아이들은 결코 내색 하지 않겠지만,

똑같이 초대되서 온 아이 입장이 즐겁기보다 잠시라도

부끄럽거나 혹시 초대되서 온걸 후회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오히려 내가 조바심이 났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수월하게

내가 건넨 바지를 건네 받고

다른 아이들 오기전에 말끔하게 갈아입은 뒤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 


갑자기  

아이는 자기 점퍼 주머니에서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한손으로 뭔가를 한참 주물럭 거리더니

운전하고 있는 나에게 수줍게 그것을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 있잖아요.

ㅇㅇ이 생일선물을 사지 못해서요.

이거라도 드리고 싶어요.


아이가 나에게 내민 주먹 안에는

지폐를 꼬깃꼬깃 네번 접은 오천원짜리

지폐 한장이 있었다.

그돈이 어떤 돈인지 알 것 같았다.

아이가 추운 바람 거센 밭에서 종일 뒹굴다시피해서 그날 번 일당이었다.


ㅇㅇ아. 선물은 안 줘도 괜찮아.

왜냐하면

ㅇㅇ이한테는 네가 와주는 것이

정말 큰 선물이거든.


나는  네번 접어진 오천원 지폐를

다시 아이 점퍼 속으로 넣어주고는 똑딱이를

똑 채워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 하지 않았다.

  

한참을 아무 말하지 않던 그 아이는 갑자기 그 질문이 생각이라도 난듯이 나에게 물었다.

있잖아요.

ㅇㅇ이가 내가 꼭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럼!

ㅇㅇ이가 넌 특별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이모가 너를 특별히 태우러 왔지.^^ 했더니

아이는 씨익 싱겁게 웃었지만

순간 아이에게서 행복하고도 수줍은 미소를 나는 본 듯 했다.

 

우리가 마당에 들어왔을 

우리 집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해 있지 않았다.

아주 다행이었다

마당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던 큰 녀석은

B와 인사를 했다.

안녕?어서와.B야.

어. ㅇㅇ아. 안녕?

둘이 인사를 나누자 마자 아이를 거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재빠르게 옷장을 뒤져

 아이한테 작아진 남자들이 입을만한 하늘색 골덴 바지하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우리집 거실에서 쭈뼛거리며 구경을 하면서 어색하게 서있는 B를 빠르게 불렀다.


B야.이 바지봐.색깔 이쁘지.

너 이바지로 갈아입을래?

아...니가 좋다면 말이야

그리고

집에 돌아갈때

너 바지를 다시 갈아입고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되고 그대로 입고 가도 되고.

네가 편할대로 했으면 좋겠다.


아이는 내게 손을 뻗어

하늘색 골덴 바지를 받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속으로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다시 화장실  밖으로 나왔을 

아이는 이제 말끔한 바지로 갈아입고는

다시 한번 나를 보고 씨이익 웃었다.

오....

너무 멋지구나.

 

그러고 보니

 아이에게서 나는 악취가 바지 때문인지 윗옷때문인지 난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이 도착하기전 급한대로

내가 반 아이들에게서 그 아이 자존심을 지켜줄수 있는것이라고는

낡아서 닿고 닿은,

흙과 얼룩으로 똑같이 엉망이된,

점퍼를 갈아 입히는것이었다.


집에는 큰 아이가 입지 않는 두꺼운 남자용 겨울 점퍼가 있어서 그것을 후다닥 꺼내어

B야.너 이것도 한번 입어봐.

어디 잘 어울리나 한번 보자.

하고는 얼렁뚱땅 점퍼를 갈아입혔

아이는 이제 정말 딴 아이가 되어 있었다.


ㅇㅇ아.너무 멋지다!

네가 좋으면 이거 그냥 입고 있어. 알았지?

그랬더니 아이는 고개를 아주 작게

나를 보며 끄덕였다.

그제서야 나는 겨우 안심을 했다.

 

하나둘 아이들이 도착했다.

B는 수줍어 했지만 조심스럽게 아이들속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마당에 나가 놀이를 했다.


모닥 불을 지필 때를 가장 즐거워해서

 주변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쌓을수있게 도와주었고,

일일이 고구마를 호일에 싸고 불 사이사이에 넣고 기다린후 고구마가 잘 익자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호일을 벗겨 하나씩 나눠주었다.


저녁시간이 되어가자

아이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이모.

저.아빠가 저를 데리러 오지못할꺼에요.하길래

음.알고있어.

아까 이모가 아빠랑 통화 할때

7시 쯤에 너를 집에 데려다 주기로 약속했어.

그러니 걱정하지마.

이모가 집에 태워다 줄께.했더니

아이는 마음이 놓였던지

다시 마당에서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아이는 집으로 갔다.

 

난 하루종일

갑자기 우리 집에 초대된 이 아이 마음이

혹시라도 어떤 이유에서라도 다치지 않을까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었다.


만약 그랬다면

난 본의 아니게 그 아이에게

아픈 유년시절 기억 하나를 심어주는게 아니었겠는가.


나는 혹시나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할까봐

종일 그게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즐거워했고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내게 선물해주었다.


고맙게도

그 아이는

른 친구들과 똑같이 장난을 치고

놀이를 하고

동네 산책을 하고

마시멜로를 구워먹었다.

그냥 친구들과 똑같이 놀고 즐기면서 즐거워했다.

  

흙투성이 바지.

흙으로 더렵혀진 자그마한 아이 주먹.

흙과 때가 달라붙은 지저분한 점퍼.

호주머니속에서 수없이 접었다 폈다 했을 오천원.

그리고

차안 가득했던 아주 진하고 강했던 냄새까지.


 

그 아이가 나에게 남긴 잔상과

느낌과 감정과 생각들은

너무나도 강력하고 선명해서

시간이 한참 흘러도

그 아이를 떠올리면

어제 모습인듯 생생하고

그때 내 감정 또한 여전하고 아릿하다.


이제 성인이 된 그때 그 아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든

ㅇㅇ이가 반드시 행복하길 바란다.


애정을 담은 내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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