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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07. 2024

말 타는 신부님들

펄럭이는 수단자락.날개달린 백마.그리고 성호

매일 오후 두 시가 되면

신부님 세 분이서 말을 타러 오신다.


이 신부님들은

안식년에 제주로 오셔서 삼 개월 동안 지내시며

교육도 받으시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지내는 중이신데

우연히

ㅡ신부님 가라사대, 주님의 이끌림에 순종하사ㅡ

우리 마장에 오셔서 승마 교육을 받고 계신다.


신부님들은 이제 막 승마에 입문하셨으나

제주에서 지내시는 삼 개월 동안

승마 수업을 몰아서 받으시는 통에

다른 회원들 삼 개월간 말을 탄 횟수보다

전체 횟수는 두 배 이상으로

그야말로 몰입 수업을 받고 계신다.


그날 탈 말들을 배정받고서

수장대에서

(말을 타기 위해 준비하고. 씻는 준비 공간)

말을 손질한 후 안장을 얹고

직접 재갈을 물려 말 탈 준비를 하는데

이젠 여느 회원들보다 능숙하게 잘하신다.


워낙 차분하고 점잖은 양반들이라

그들이 말을 대할 때 태도 역시 그러한데

그날 본인이 탈 말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

ㅡ기도하는 마음으로다가!ㅡ

오늘 본인을 잘 태워 달라고

사정하시거나

애원하시거나 한다.


말을 타실 땐

누구보다도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타시는데

수업하는 나 역시도

소년들 같은 신부님들 모습에 즐거워서

신부님들 수업땐

말 타는 신부님들이나 수업을 하는 나나

늘 와그르르 웃음이 터진다.


신부님들이 수업을 받으실 

기승 자세를 교정해드려야 할 때가 있다.

보통, 일반 회원님들에게는

잠깐 무릎을 터치해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한 후 자세를 바로 잡아드리는데

신부님들 수업 때는

이 양반들이 워낙 거룩하신 분들인지라

무릎 위라던지 발목이라던지를

터치해서 교정을 해드려야 할 땐

나는 속으로

ㅡ이 성스런 양반들 발목을 만지면 안될껀디!ㅡ하면서 불가피하게 자기 검열을 한다


그러나 수업은 수업이라서

신부님들  수업얄짤없다.

ㅡ워워워. 정지! 정지!

신부님 말 세워요. 딱 세워야죠! 딱!ㅡ

라던가

ㅡ더 보내요. 아니 아니! 발목 힘을 빼야죠!ㅡ

라던가 하며 하게 수업한다.


수업이 끝나갈 때쯤엔

점 잖은 신부님 셋은

얼굴이 버얼겋게 상기되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경건하고 성스러운 신부님들을

이러케 거칠게 다루는 여자는

모르긴해도,

제가 세상에서 유일할 겁니다!

신부님들은 그 말이 엄청 마음에 드신 듯

진짜 좋아하신다.

신부님들 유머 코드에 맞는 멘트인건가?!


가끔 신부님들을 태우는 말이

움찔 놀라거나 예민하게 반응했을 

나는 신부님을 태운 말을 조용히 혼내며

이렇게 말한다.


ㅡ대단아.

니가 지금 태운 분이

어떤분인지 알고나 하는 짓이냐. 이것아!

니가 생을 다해 하나님 앞에 슬 적에

하나님이 너에게 묻기를,

대단아. 너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느냐.

하시면

너는 답하길,

저는 성스럽고 거룩하신 신부님을

등에 태우고 운동을 하다 왔습니다아.하면

오오. 너는 착하구나

옛다!천국 티켓이다. 한다고!ㅡ


말 위에서  말을 듣던 신부님이

얘기도 맘에 드셨던지

또 한번 웃음이 터졌다.


수업 

신부님들이 수장대에서 말을 준비를 하면

그날 신부님 짝꿍이 되어 운동할 말들

한 놈 한 놈에게 다가가

나는 늘 그렇게 얘기해준다.

ㅡ성스러운 분이시다.

정중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태워드려라.ㅡ


한 번은

운동이 끝나고 말에서 내리신

신부님 신발끈이 풀려있길래

내가 허리를 굽혀 신발끈을 매어드리니

신부님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셨다.

ㅡ신부님 괜찮아요.

저는 사람들 신발끈 묶어주는 거 좋아해요.

왠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느낌이 들잖아요.ㅡ했더니

신부님은 그날 짝꿍 말인 마망이에게

그렇게 즉각 화답하셨다.


ㅡ마망아.

너는 이렇게

사랑이 많은 엄마랑 같이 사니

얼마나 행복한 말인 거시냐.

넌 참 복 받은 말이로구나ㅡ


신부님들이 말을 타고 운동하실 땐

당연히 수단이나 제의가 아닌

쫄쫄이 승마복차림이다.

언젠가 승마복을 처음 입고 나타나신 신부님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살다 살다 이런 쫄쫄이 바지는 첨 입어봅니다.ㅡ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승마 바지는 남녀 공통

레깅스처럼 쫄쫄이 바지처럼 생겼고.

입은 모양새 역시 쫄쫄이 바지 입은 듯

다리에 엄청나게 쫘아악 달라붙는다.


신부님은 옷차림이 아무래도

어색하고 민망하셨던지

다리를 엉거주춤 벌리고서

몸에 짝 달라붙은 스판끼 좋은 바지 자락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서

탁 탁 뜯어 냈다.


하긴!

경건한 사제 신부님들에게

경박스러운 쫄쫄이 바지라니!

그것은 엄청나게 불협화음 나는 장면이고

방송사고 같은 이미지인 것이다.


수업받는 신부님 중에 한 분이

본인 유투브 영상을 십만 뷰 영상이라

자랑스레 보여주신 적이 있다.


아주 큰 성당에서

성당을 가득 메운 신도들을 보며

까만색 수단을 입으시고

근엄하게 강론하시는 모습이었다.


신부님이니까 당연히 수단을 입으셨고

신부님이니까 당연히

말. 이 아닌 주님. 을 찬미하는 영상이었는데,

쫄쫄이 승마복을 입고서

당신이 오늘 탄

말이 어쨌느니 저쨌느니 이야기 하시는

신부님에 익숙했던 나는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 뻔했다.


오오오오오오오

신부우니이

진짜 신부님이셨구나아아아아.


그렇지!


신부님들은 까만 신부님 옷이나

미사 드릴 때 제의를 입은 모습이

신부님 이미지에 합당한 것이지,

신부님이 쫄쫄이 승마 바지는 아닌 것이다.


쫄쫄이 승마복을 입으신 신부님이

흰색 말  마망이를 타고

마장에서 운동하실 땐,

ㅡ모습은 러하여도

분은 분명 신부님이시기에!ㅡ

종종   눈엔 그 모습이 이렇게 비춰진다.


검은색 거룩한 수단을 입은 신부님이

검은 옷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하늘에서 천사가 보낸

개 달린 하얀 말 마망이를 타고서

하나님 성전을 항해

구름 위를 아름답게 다그닥 다그닥

달려가는 모습으로 오버랩될 때가 있다.

진심으로!


왜곡된 장면이

내 뇌 속에서는

신부님이 말을 타시진짜 모습을 대신한

아주 강력한 이미지로 잔상이 남아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신부님이란 존재가 그렇듯이,

내게도 역시 신부님이란 존재는

고귀하고 홀리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고결한 사제들을

세상에서 가장 거칠게 다룬 여자가 되었으니

훗날 내가 죽어 하나님앞에 불려갔을 적에,

너는 이승에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느냐. 물으시면

나는 도대체 뭐라 답해야

천국엘 갈수 있을랑가 모르겠다.













#거룩한

#말타는

#신부님

#거칠게

#쫄쫄이바지

#천당티켓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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