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타는 신부님들
펄럭이는 수단자락.날개달린 백마.그리고 성호
매일 오후 두 시가 되면
신부님 세 분이서 말을 타러 오신다.
이 신부님들은
안식년에 제주로 오셔서 삼 개월 동안 지내시며
교육도 받으시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지내는 중이신데
우연히
ㅡ신부님 가라사대, 주님의 이끌림에 순종하사ㅡ
우리 마장에 오셔서 승마 교육을 받고 계신다.
신부님들은 이제 막 승마에 입문하셨으나
제주에서 지내시는 삼 개월 동안
승마 수업을 몰아서 받으시는 통에
다른 회원들 삼 개월간 말을 탄 횟수보다
전체 횟수는 두 배 이상으로
그야말로 몰입 수업을 받고 계신다.
그날 탈 말들을 배정받고서
수장대에서
(말을 타기 위해 준비하고. 씻는 준비 공간)
말을 손질한 후 안장을 얹고
직접 재갈을 물려 말 탈 준비를 하는데
이젠 여느 회원들보다 능숙하게 잘하신다.
워낙 차분하고 점잖은 양반들이라
그들이 말을 대할 때 태도 역시 그러한데
그날 본인이 탈 말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
ㅡ기도하는 마음으로다가!ㅡ
오늘 본인을 잘 태워 달라고
사정하시거나
애원하시거나 한다.
말을 타실 땐
누구보다도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타시는데
수업하는 나 역시도
소년들 같은 신부님들 모습에 즐거워서
신부님들 수업땐
말 타는 신부님들이나 수업을 하는 나나
늘 와그르르 웃음이 터진다.
신부님들이 수업을 받으실 때
기승 자세를 교정해드려야 할 때가 있다.
보통, 일반 회원님들에게는
잠깐 무릎을 터치해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한 후 자세를 바로 잡아드리는데
신부님들 수업 때는
이 양반들이 워낙 거룩하신 분들인지라
무릎 위라던지 발목이라던지를
터치해서 교정을 해드려야 할 땐
나는 속으로
ㅡ이 성스런 양반들 발목을 만지면 안될껀디!ㅡ하면서 불가피하게 자기 검열을 한다
그러나 수업은 수업이라서
신부님들 수업도 얄짤없다.
ㅡ워워워. 정지! 정지!
신부님 말 세워요. 딱 세워야죠! 딱!ㅡ
라던가
ㅡ더 보내요. 아니 아니! 발목 힘을 더 빼야죠!ㅡ
라던가 하며 엄하게 수업한다.
수업이 끝나갈 때쯤엔
이 점 잖은 신부님 셋은
얼굴이 버얼겋게 상기되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ㅡ경건하고 성스러운 신부님들을
이러케 거칠게 다루는 여자는
모르긴해도,
제가 세상에서 유일할 겁니다!ㅡ
신부님들은 그 말이 어엄청 마음에 드신 듯
진짜 좋아하신다.
신부님들 유머 코드에 맞는 멘트인건가?!
가끔 신부님들을 태우는 말이
움찔 놀라거나 예민하게 반응했을 때
나는 신부님을 태운 말을 조용히 혼내며
이렇게 말한다.
ㅡ대단아.
니가 지금 태운 분이
어떤분인지 알고나 하는 짓이냐. 이것아!
니가 생을 다해 하나님 앞에 슬 적에
하나님이 너에게 묻기를,
대단아. 너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느냐.
하시면
너는 답하길,
저는 성스럽고 거룩하신 신부님을
등에 태우고 운동을 하다 왔습니다아.하면
오오. 너는 착하구나
옛다!천국 티켓이다. 한다고!ㅡ
말 위에서 내 말을 듣던 신부님이
그 얘기도 맘에 드셨던지
또 한번 웃음이 터졌다.
수업 때
신부님들이 수장대에서 말을 탈 준비를 하면
그날 신부님 짝꿍이 되어 운동할 말들
한 놈 한 놈에게 다가가
나는 늘 그렇게 얘기해준다.
ㅡ성스러운 분이시다.
정중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태워드려라.ㅡ
한 번은
운동이 끝나고 말에서 내리신
신부님 신발끈이 풀려있길래
내가 허리를 굽혀 신발끈을 매어드리니
신부님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셨다.
ㅡ신부님 괜찮아요.
저는 사람들 신발끈 묶어주는 거 좋아해요.
왠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느낌이 들잖아요.ㅡ했더니
신부님은 그날 짝꿍 말인 마망이에게
그렇게 즉각 화답하셨다.
ㅡ마망아.
너는 이렇게
사랑이 많은 엄마랑 같이 사니
이 얼마나 행복한 말인 거시냐.
넌 참 복 받은 말이로구나ㅡ
신부님들이 말을 타고 운동하실 땐
당연히 수단이나 제의가 아닌
쫄쫄이 승마복차림이다.
언젠가 승마복을 처음 입고 나타나신 신부님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ㅡ살다 살다 이런 쫄쫄이 바지는 첨 입어봅니다.ㅡ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승마 바지는 남녀 공통
레깅스처럼 쫄쫄이 바지처럼 생겼고.
입은 모양새 역시 쫄쫄이 바지 입은 듯
다리에 엄청나게 쫘아악 달라붙는다.
신부님은 옷차림이 아무래도
어색하고 민망하셨던지
다리를 엉거주춤 벌리고서
몸에 짝 달라붙은 스판끼 좋은 바지 자락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서
탁 탁 뜯어 냈다.
하긴!
경건한 사제 신부님들에게
경박스러운 쫄쫄이 바지라니!
그것은 엄청나게 불협화음 나는 장면이고
방송사고 같은 이미지인 것이다.
수업받는 신부님 중에 한 분이
본인 유투브 영상을 이십만 뷰 영상이라
자랑스레 보여주신 적이 있다.
아주 큰 성당에서
성당을 가득 메운 신도들을 보며
까만색 수단을 입으시고
근엄하게 강론하시는 모습이었다.
신부님이니까 당연히 수단을 입으셨고
신부님이니까 당연히
말. 이 아닌 주님. 을 찬미하는 영상이었는데,
늘 쫄쫄이 승마복을 입고서
당신이 오늘 탄
말이 어쨌느니 저쨌느니 이야기 하시는
신부님에 익숙했던 나는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 뻔했다.
오오오오오오오
신부우니이임
진짜 신부님이셨구나아아아아.
그렇지!
신부님들은 까만 신부님 옷이나
미사 드릴 때 제의를 입은 모습이
신부님 이미지에 합당한 것이지,
신부님이 쫄쫄이 승마 바지는 아닌 것이다.
쫄쫄이 승마복을 입으신 신부님이
흰색 말 마망이를 타고
마장에서 운동하실 땐,
ㅡ모습은 그러하여도
저 분은 분명 신부님이시기에!ㅡ
종종 내 눈엔 그 모습이 이렇게 비춰진다.
검은색 거룩한 수단을 입은 신부님이
검은 옷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하늘에서 천사가 보낸
날개 달린 하얀 말 마망이를 타고서
하나님 성전을 항해
구름 위를 아름답게 다그닥 다그닥
달려가는 모습으로 오버랩될 때가 있다.
진심으로!
그 왜곡된 장면이
내 뇌 속에서는
신부님이 말을 타시는 진짜 모습을 대신한
아주 강력한 이미지로 잔상이 남아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신부님이란 존재가 그렇듯이,
내게도 역시 신부님이란 존재는
고귀하고 홀리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그 고결한 사제들을
세상에서 가장 거칠게 다룬 여자가 되었으니
훗날 내가 죽어 하나님앞에 불려갔을 적에,
너는 이승에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느냐. 물으시면
나는 도대체 뭐라 답해야
천국엘 갈수 있을랑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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