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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02. 2024

황구 메리를 등에 업고 장에 팔러 가는 할머니

굽고 작은 할머니 등. 황구 메리.보자기. 부엌 굼불

어릴 적부터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친정엄마의 큰 어머니셨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그분을

큰 외할머니라 해야 옳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외갓집과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

그 모든 것은

오로지 그분에 대한 기억뿐이다


친정엄마의 진짜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친 외할머니는

내가 유치원을 들어갈 무렵에 돌아가셔서

내가 기억하는 진짜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없다


반면,

친정엄마의 큰 어머니인

나의 가짜 외할머니는

 유년시절 무수히 아름다운 추억들을 남겨주셨

내가 성인이 된 후에 돌아가셨다


친정 엄마는 어릴 적

엄마의 큰 어머니와 친 어머니  

 분과 한 집에서 함께 사셨다


엄마의  어머니는 손아래 자식이 없으셨고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가 되었다

친정 엄마는

어릴 적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의 어머니도 

큰 어머니처럼 일찍 젊은 과부가 되었다

그렇게 젊은 과부 두 분은

산골 마을에서

서로 의지하며 자식들 키우며 평생을 사셨다


친정엄마가 기억하는 큰 어머니는

당신 친 어머니보다도 자상하고

정이 깊으신 분이었다고 하셨다


본인 슬하의 자식이 없으니

작은 집 조카들

그러니까 친정엄마 형제들을

본인 자식들처럼 평생 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우셨다


어린 내게 친 외할머니 기억은 거의 전무했고

내 기억 속 외할머니는 큰 외할머니 셨기에

큰 외할머니가 친 외할머니가 아니라는 걸

아주 뒤늦게 알았을 때도

 외할머니는 오직 그분이셨다

나에게는 그랬다


외할머니는

키가 아마도 150센티도 안되어

체구가 아주 작고

강단 있는 몸을 가진 양반이었다


외할머니는

친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자식들(엄일히 말하자면 조카들) 성장하여 다 떠난

산골 마을 집에 혼자남아

논농사 밭농사 혼자 일구시며 악착같이 사셨더랬다


할머니는 마당에 개 한 마리를 키우며

함께 살았는데

그 개 이름은 언제나 메리였다

검둥이도 메리였고

그 녀석이 죽고 나서

다시 키우는 황구이름도 메리였다


아주 가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할머니의 타지 나들이는

자식들 집 방문이었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나의 외할머니 제사라던가

할아버지들 제사라던가 할 때뿐이었다


자식들 집에 머물고 떠날 때는

어서 집에 가야 한다고

뒤를 잡는 자식들을 뿌리치고 바삐 떠나셨다


논에 물을 대야 해서.

밭 잡초를 뽑아야 해서..

메리 밥을 챙겨줘야 해서...

할머니가 자식들 집을 부랴부랴 떠나야 할 이유는

언제나 그랬다


자식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늘 말했다

농사 이제 그만 지으시라.

그놈의 메리도 그만 장에 내다 파시고

자식들 집에서 편하게 며칠 쉬시다가

가시라 사정을 했다


언젠가

여름방학이 되어 외할머니댁에 갔더니

마당에서 뛰어나와 반겨줄

메리가 보이질 않았다

할머니께 메리가 어디 갔냐고 여쭤봤더니

할머니는 내 시선을 피하시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말씀하셨다


메리, 시골장에 내다 팔아버렸다!


메리를 내다 팔았다는 시골장은

외갓집에서 가자면

산길을 한 시간 넘게 걷고

강을 건너가야 있는

오일에 한 번씩 장이 서는 오일장이었다


타지에 나갔다가도 메리 밥 챙겨주느라

매번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야 하니

불쌍해도 어쩌겠냐.

너네 외삼촌 말대로 장에다 갔다 팔았다. 하셨다

그렇게 말하시면서도

할머니는 자식같이 돌보던 메리를 팔자니

눈물이 나서 혼났다. 했다


장에 내다 파는 날

따뜻한 된장국에 아침밥을 말아 먹이고

메리야 이제 장에 가자! 하니

할머니랑 함께라면 어디든 앞장서고

할머니 말이라면 끔뻑 죽는시늉하는 메리가

그날은 꿈쩍도 안 하더라 하셨다


메리 목에 목줄을 메고서

작은 체구로 힘주어 앞에서 끄니

네다리를 버티고 낑낑거려 꿈쩍도 안 해서

할머니는 메리랑 그렇게 몇 시간 실랑이를 하셨다 했다


결국 할머니는 점심 무렵쯤에

메리를 애기처럼 등에 업고서

ㅡ지금은 강아지를 등에 업고 다니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건 사십 년 전 깡촌 시골 노인 얘기다ㅡ

보자기로 감싸 꽁꽁 잘 여민 다음

홀로 산길을 걸어가  강을 건너

장에 내다 파셨다고 했다


그날

혼자 장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너무 허전해서 눈물이 나드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어린 나는

체구 작은 할머니가

메리를 업고서 산길을 걸어갔다는 이야기에

모습이 상상이 되어 웃다가

어린 마음에도

메리도 불쌍하고 할머니도 불쌍해서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표현하신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150센티도 안된 작은 체구 할머니가

당신 등짝보다도 큰

누런 황구 메리를 등에 업고서

산길을 걸어갔을 그 장면은

내가 어른이 되어 

불현듯 외할머니가 생각이 날 때마다

저절로 떠올려지는 그림이 되었다


그날 메리를 장에 팔고 혼자 돌아와

저녁 부엌 굼불을 때며

혼자 쭈그리고 앉아 훌쩍였을 할머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정말 정말 사랑했던

나의 가짜 외할머니이자 진짜 외할머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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