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oney Kim Nov 22. 2020

장범준과 잔나비, 이 마성의 감성꾼들이여

늦가을 언저리까지 상처 받은 가슴을 녹이는 감성 사냥꾼들



감성이 뭐길래


행복, 웃음, 즐거움, 여유로움 그리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삶은 사실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되어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우리는 나이 들수록, 공부할수록, 경험할수록 편협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하며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은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며 이성이 아닌 본능이 개개인의 판단을 지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이 현명할 것이라 믿지만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모난 돌은 어느 방향으로든 뻗어나갈 수 있지만 정 맞은 돌은 그 모양 안에 갇히게 마련이다’.


관계와 경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깨닫게 한다고 믿지만, 이를 통한 분노, 억압, 스트레스로 인해 각자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시각과 호의적인 태도가 너무 많이 잘려나간다. 결국 여기저기로 뻗어있던 수많은 가능성은 개인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정을 맞아 어느 돌담길 벽의 일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감정으로 겪은 고통은 감성으로 풀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인 판단으로 ‘사회에서 겪은 고통만큼의 돈’이면 관계에서 얻는 짜증과 분노의 고리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결국 그 돈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 무언가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 그저 음원 스트리밍 앱 중 하나를 선택해 유료로 결제한 뒤 들으면 그만이다. 음악은 지치고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당신을 위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매년 매 시즌, 특히 감성이 차올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시즌에는 대중의 넘치는 감성을 담아주는 대형 세숫대야 같은 발라드, 포크송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시즌에 나오는 노래들은 없던 감성마저 샘솟게 해 줄 정도로 사랑받지만 모든 노래가 대중의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선택, 즉, 픽(pick)을 받는 노래는 극히 제한적인데 특히, 매년 같은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거리의 가게들과 사람들의 이어폰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될 확률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확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중 가요사에도 무수한 히트곡들이 있었다. 전쟁 직후의 '대중가요'는 시내(또는 읍내)의 극장 혹은 라디오를 보유한 부유한 어른들이나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TV가 등장하면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대중가요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데 당연히 '어른들의 취향'에 맞춰진 TV쇼에 나오는 노래들이 인기를 끌었다. 80년대 들어 컬러 TV가 탄생하고 다양한 쇼가 만들어지며 TV매체의 발달과 함께 시청자의 규모는 커지고 다양한 시청 계층(세대)이 생겼다. 다양한 노래들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TV를 보는 세대가 다양해지면서 성인 가요 일색이던 과거를 지나 포크, 발라드와 댄스가 가요계를 양분하기 시작했다. 이 기류는 이후 발라드, 락, 락발라드, 댄스, 힙합, 네오소울 등으로 이어지며 매우 세분화되었다. Kpop으로 대표되는 한국 가요계는 마치 댄스곡에 정복된 것 같지만 수년 전부터 유행한 힙합은 물론 발라드 그리고 지금 이 가을을 접수하고 있는 락/포크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다시, 다양성이 존중받고 있는 건강한 생태계다.


장범준과 잔나비, 무시무시한 감성 사냥꾼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제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대중의 픽을 받을 수 있는 좋은 타이밍에 발표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개중에는 대중성이 없는 노래가 상위 차트에 머물기도 하는데 이는 기획사는 물론 일반 대중도 무시할 수 없는 '팬덤'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인 사항은 차치하고, 그저 현악기의 힘 빠진 병약미로 감성의 현을 튕겨 아스라진 가슴을 눈물짓게 하는 인트로와, 무심하게 긁은 목소리의 한 구절 음률만으로도 지독한 고독함의 공감을 잡아끌어내 냅다 매쳐 한쪽 가슴 시리게 맺혀있던 지난 추억들을 가을볕에 툭-하고 (마치 고추라도 말리듯이) 늘어놓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수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도 이 시대에 드물게 롱런 중인 두 남자가수, 장범준과 잔나비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의 페르소나


장범준

보통 남자들의 희망사항을 대신 읊어줌, 찌질한 용기, 그런데 알고 보면 나쁘지 않은 외모, 자신은 없지만 자신감은 넘치는(?) 우리네 보통 남자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대변함.



이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의 자칫 잘못하면 민사 소송을 당할만한 근자감이 아닌, 큰 키는 아니지만 적당한 비율, 꾸며놓으면 괜찮은, 마성의 외모는 아니지만 볼수록 보고 싶은, 그리고 알고 보면 평소에도 은근한 매너와 자상함 그리고 소소한 유머러스함으로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분무기로 물을 뿌려 적시듯 자신의 매력을 차곡차곡 적립해온 대한민국의 '겪어보면 괜찮은 남자'의 표준을 제시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이 속담은 정확히 장범준의 노래를 위해 우리 선조들이 구전해준게 아닌가 싶다.



잔나비

소심하지만 속은 굉장히 깊고 그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평범한 남자아이. 쉽게 상처 받지만 쉽게 상처주지는 않는, 그래서 세상이, 좋아하는 마음이 더 버거운 아이. 누군가는 화낼 법하고, 누군가는 짜증내고, 그래서 다툴법한 상황에도 마치 득도한 구루(guru)처럼, 세대를 초월하는 현인과 같은 한마디를 남기는 아이.



더 나아가면 안 될 걸 알면서도 결국 나아가 일을 저지르고 마는 실연한 남자의 찌질한 감성이 아닌, 미치도록 슬프고 외롭지만 그 슬픔 베개 삼아 외로움을 이불 삼아 살 떨리는 늦가을의 새벽이슬을 견뎌내는 어느 초월자의 애틋하지만 강인한 사랑노래.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의 현실 고증형 가수가 아닐까 싶다.


두 가수 모두 히트곡도 많고 전설이라고 부를 만한 수록곡들도 많다. 따라서, 한곡 한곡 리뷰를 해도 여러 개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곡들이 많지만, 아래 곡들은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픽한 각각의 매력 터지는 곡들이다. 지면 관계상 아래 곡들만 실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두 가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그만큼 좋은 노래들이 많다.


장범준

-싱글: 잠이 오질 않네요
-멜로가 체질 OST: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장범준 3집: 노래방에서, 당신과는 천천히
-버스커버스커 1집: 벚꽃 엔딩, 꽃송이가, 여수 밤바다


잔나비

-ELLE Korea: 사라진 모든 것들에게
-잔나비 소곡집 I: 가을밤에 든 생각, 그 밤 그 밤
-전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꿈과 책과 힘과 벽
-Monkey Hotel: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싱글, OST: 처음 만날 때처럼, SHE, 나는 볼 수 없던 이야기


남녀 모두의 감성을 꿰뚫다



장범준과 잔나비는 대한민국의 평균 혹은 그 이상과 이하를 오가는 대부분 남성의 감성을 대변한다. 스스로 잘났다고 믿지(믿고 싶지)만 세상은 자신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토록 수많은 바보짓으로  결국 '평균 인증(또는 이하)'을 하고 만다. 주로, 고백 직전의 아슬아슬한 남자 마음을 노래하는 장범준과 이별 후에 놓아줄 수밖에 없는 소심하지만 세심한 남자의 감성을 대변하는 잔나비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인류의 역사를 따라 무수하게 이어지는 ‘보통 남자들의 사랑앓이’에 대한 순간 포착의 명수들이다.


과거, 한국 가요계를 돌아보면 이문세가 그랬고 김민종이 그랬으며, 임창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래 주고 있고, 또, 김종국과 이승기가 그러했다. 지금은? 최근 수년간,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어리숙하지만 순수한 사랑 감성은 ‘장범준과 잔나비’가 쌍끌이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핫한 두 가수와 과거 선배 가수들의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들도 남자들만큼이나 둘의 노래를 좋아하고 공감한다는 것이다.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만’을 위한 감성 울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둘의 미래는 더 강력하게 롱런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 꼭 그래 주길 바란다.


사회인이 되었든 아니든, 사랑에 빠졌든 아니든, 삶의 언저리에 있든 아니든, 우리는 상처 받고 싸우며 서글프다. 이런 혼란한 가슴에는 항상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극약이 아닌 ‘화와 슬픔과 아픔’으로 들끓는 보통 사람들의 곪아 터진 감성을 끄집어내 녹여 처치하고, 다시 건강한 감정으로 온 정신과 몸을 가득 채우는 감성 테라피 말이다.


장범준과 잔나비가, 더 나아가, 전 세계 수많은 가수와 작곡&작사가들이 끊임없이 그들의 재능과 욕망을 뽐내며 평범한 범인들의 삶에 치유와 에너지를 주길 바라며, 이번 달도 ‘벅x와 플x’의 월 정기결제를 승인한다.




[이미지 출처]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90416/95069408/9

https://sosweetcar1.shop/231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494

https://unsplash.com/s/photos/songs


이전 09화 초록을 쥐어준 그대는_잔나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