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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r 17. 2022

아이유 연대기 13: 설렘으로 파도치던 ‘나의 바다'

이미 용서했으니 더는 미안해하지 않길


'아이와 나의 바다'

http://naver.me/5EQUndKP


자기 연민은 이내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모자라는 것, 부족한 것에 대한 불만은 항상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불안을 잠재우려면 문제의 원인을 제거해야 하기에.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헤매었지만 그 누구도 대신 아파해줄 이가 없다. 결국 내 안에서 원인을 찾는다. 나 자신을, 나를 괴롭히는 아픔과 슬픔의 가해자로 몰고 가는 것이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었다면, 내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를 멈추게 했더라면..’


힘든 상황으로 고통에 허덕이던 ‘나’는 어느새 그 모든 나쁜 일들의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못난 놈, 운도 없는 놈, 그래 네가 그렇지. 결국 너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야.’


나를 보호하려 당긴 활시위가 거꾸로 나를 향한다. 가뜩이나 팔이 아파 더 이상 시위를 쥐고 있을 힘조차 없어진 나는 결국 내 가슴을 향해 활시위를 놓고 만다.


이 고통과 슬픔에 내 잘못은 하나도 없음에도 여린 마음은 그 고통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결국 자신을 파괴해야 원인이 제거될 것이라고 믿는다. 무언가 끝장내야만, 누군가 희생되어야만 해소되는 그릇된 직성이 어느새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현재의 자신이 더 이상 과거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없기에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그나마 이를 통해서 여전히 순수한 시절 속에 있는 과거의 자신이라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이룬 것도 가진 것도 많지만, 자유를 잃은 생각과 꽉 막힌 굴레에 갇혀 멍청히 바라본 거울 속엔, 찌푸린 주름, 탁한 눈빛, 거칠어진 피부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을 한 채 불만 가득하게 쏘아보는 낯선 이만 있으니 날 사랑할 마음이 퍽이나 있을까.



아이


그 시절 아이의 공상은 무궁히 넓었고 풍성했다. 타인의 눈에는 망상으로 치부될 한낮의 백일몽에 불과할지라도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넘치는 작은 주머니에는 놀이터의 모래와 바닷가의 조개껍질과 이따 먹으려고 아껴둬 꼬질꼬질해진 사탕이 몇 알 굴러다녔다. 무진하게 주어진 시간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모험의 세상이 열렸고 또 그 위로 수많은 이야기가 탄생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각각의 모험의 끝은 한 푼의 가치가 없을지언정 매일 밤 펼쳐졌고 아이는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설레었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그 행복감은 단순히 그날 하루치 공상의 품삯으로만 그치지 않았고 어쩌면 미래에 꼭 이루어지고 말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감마저 품고 있었기에 아이는 언제나 밝고 당당했다.


‘어푸’



손끝이 아릴 정도로 차가운 물을 두 손 가득 퍼올려 얼굴을 적셔 문지른다. 차가운 냉기가 굳어있던 감정의 근육을 움찔거리게 할 정도로 아찔하다. 아무리 봐도 거울 속의 얼굴은 더 이상 그 아이가 아니다. 매일 떠나던 모험 열차는 연료가 바닥난 지 오래고 정비하지 않아 낡은 레일은 더 이상 열차를 출발시킬 수 없다.


나는 파괴되었고 그저 썩어 빠져 닳고 닳은 인간 무리의 하나가 되어 출발의 설렘과 이룸의 황홀함을 잊은 채로 그저 하루하루 건조하고 아픈 삶을 살다 가야만 할 것 같다. 거울 속 과거의 아이는 계속해서 나를 찾지만, 이미 현재의 나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아 온몸에 가득한 상처와 멍으로 물든 몰골을 차마 보여줄 수 없다. 다가온 아이를 억지로 떠밀었지만 아이는 기어이 떠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밤늦게 돌아온 집에 아이가 있다. 당당하게 버티고 선 자세와 나를 뚫어져라 꿰뚫어 보는 눈빛이 나의 마음을 연신 뒤흔든다.


아이와 


아이는 철길을 정비하기 시작한다. 마음만 먹으면 과거의 열차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빛에 찌푸렸던 주름이 조금씩 펴진다. 그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에 언제 쌓였는지도 모르는 산더미 같은 마음의 담이 무너진다. 아이가 내게 다가와 손을 잡는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에 십 수년을 흘려본 적 없는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그렇게 가방을 메고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려 바닥에 기댄 채 불이 꺼진 방 안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삼켜왔던 눈물을 한 움큼 두움 큼 마구마구 쏟아낸다.



‘넌 잘 살아왔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이제 나랑 다시 모험을 떠나자. 재미있을 거고 행복할 거야.’


바닥에 떨군 뜨거운 눈물이 가슴속 메말랐던 깊은 바다의 모래를 적시자 모래 바닥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밀물이 밀려와 바닥에 기댄 팔과 다리가 바다에 잠겼다. 놀란 나는 일어났지만 넘치는 바닷물과 세찬 파도에 별안간 휩쓸려 떠내려가다 어느새 백사장에 다다랐다. 아이는 열차에 올라타 내게 얼른 타라며 손짓한다. 밀려오는 파도를 거슬러 그 시절 매일 밤 떠나던 모험 열차의 레일이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건너 미지의 곳에 닿았다.


올라탄 열차는 바다를 시원하게 가로질러 수평선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다 어느새 레일 위를 떠나 곧장 하늘을 향해 떠오른다. 아이는 그저 해맑게 웃고 나는 이미 그 웃음에 전염되어버렸다. 저 까마득한 아래에 내가 잠들던 작은 방의 불빛이 희미하게 일렁인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니 어느새 진 태양 뒤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저마다 자기를 보러 오라며 끝없이 반짝인다.


‘아이야,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할까? 어느 별 길을 따라가야 헤매지 않을까.’


아이는 그저 싱긋 웃고는 밤하늘을 보며 내게 말했다.


‘헤매도 괜찮아. 어차피 난 알아. 돌아오는 길을.’




[이미지 출처]

아이유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lwlrma/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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