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oney Kim Jan 02. 2022

아이유 연대기 12: 삶이라는 계절

각 시절의 조각집이 만나 결국 네 삶이 될 거야



모든 삶은 수십층으로 켜켜이 쌓인 관계의 지층을 지탱한 채 매년 되풀이되는 사계절의 온도차와 부피를 이겨내고 다시 돌아 리셋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도돌이표의 계절로 이루어져 있다.


만남, 헤어짐, 이벤트 그리고 해결 등 모든 때와 장소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은,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는 평범하거나 특별한 일상의 모든 과정을 통해 고스란히 담긴 기억을 소환할 수 있도록 돕는 색인 역할을 한다.


시간이 흘러 1년 뒤, 3년 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을 돌아보면 기억의 색은 좀 바랬지만 과거의 감정은 오히려 증폭되어 마치 오늘 겪은 일인 양 더 생생해진다. 어쩌면 과장되었을지도 모르는 감정은 추억, 여운 또는 아쉬움이라는 미련과 만나 본래의 감정과는 사뭇 다른 혹은 완전히 다른 더욱 강렬한 기억으로 변한다.


아이유 20대의 연대기가 닮긴, 조각집



스무 살: 사랑의 모서리에 베인 상처에 아파하는 친구를 위해 ‘드라마’를 쓰고,

스물네 살: 몹시도 그리운 친구에 대한 마음을 풀어내 ‘너’를 짓고,

스물다섯: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연결해줄 ‘정거장’을 만들기 시작했고,

스물여섯: 그 ‘정거장’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봐서일까, ‘러브레터’를 쓰기 시작했는데,

스물일곱: 하늘도 무심하게도 소중한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며 감정의 ‘겨울잠’에 들기 시작했다.

스물여덟: 그 사이 ‘러브레터’는 완성되었고, 정승환 님이 그걸 먼저 불렀다.

스물아홉: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렸던 20대를 돌아보며 라일락으로 20대 여정의 공식적인 대장정을 끝맺고, 서른이 되기 직전 감정의 ‘겨울잠’에서 깨어나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너무 절제하지도 않은 ‘인간 아이유’의 날 것의 순수한 감정들을 담은 곡들을 골라내고, 동의를 얻은 후, 마무리지어 정제되지 않은 20대 시절 그녀의 여러 감정을 담은 조각집이 탄생했다.


20대의 에너지, 상처, 깨달음


스무 살은 법적으로 성인 즉, 다 자라고 커버려 더 이상 다른 성인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나이다. 술을 마시는 것도, 인생의 첫 항로를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도, 좋아하는 이성과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연애하는 것도 모두 가능한, 어른의 걸음마를 배우는 십 년이다.


처음 느껴본 사랑이라는 감정 덕분일까 분홍빛으로 물든 세상이 온통 내 것인 것 마냥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기분, 큰 걱정 없이 또래 특유의 활달하고 재미난 에너지로 영원할 것 같은 우정에서 느끼는 강력한 연대감, 돈도 능력도 아직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이유 없는 자신감. 이 모든 것들이 20대가 누릴 수 있는 무료로 제공되는 에너지다.



이미 다 자랐다는 착각이 들만큼 어른스러워진 고등학생 시절도 20대에 돌아보면 종종 창피할 정도로 어린 티가 물씬 풍기는 기억들인 만큼, 사실, 20대도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미숙하고 어리석다. 최고라 믿었던 우정보다 연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아보기도 하고, 학업 이후 취업 걱정에 우정도, 사랑도 내팽게친 채 자신의 삶을 위해 온전히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우정에 실망하고, 사랑에 상처받아보니 결국, 자신의 따뜻한 보금자리는 가족밖에 없었다며 가족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절이기도 하다.


이런 질풍노도의 20대에 절대적으로 믿었던 우정, 사랑 혹은 가족으로부터 처음 경험한 배신감은 아마도 하늘이 두쪽으로 갈라지는 듯 충격적인 경험일 테다.


‘영원’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은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비관적인 관계론을 맹신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20대에게는 상실도 여전히 낯설다. 특히, 그 상실이 물건 분실이나 단순한 관계의 끝이 아닌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은 결과라면 더욱 그렇다. 사건사고, 병 등으로 인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감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죽음으로 인한 누군가의 상실은 슬픔과 괴로움의 단계를 지나 또 다른 가족 및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을 넘어, 마침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측으로 치닫는다.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 젊어서든 나이 들어서든 아무튼 언젠가는 죽겠구나. 그래서 뭐든 후회 없이 해봐야겠구나.’


그렇게 20대는 폭발하는 삶의 에너지와 함께, 이에 반하는 부정적인 결과물들과 부딪히고 싸우며 이미 다 자란 겉모습을 지나, 자신의 내면의 성장을 부추기는 시절이다.


나만 아는 나의 조각집


평범한 사람은 꿈꾸기 조차 힘든 성공
길고 진한 여운이 남는 사랑
절친이라 불러도 마지않을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


이런 아이유의 20대에도 선 굵은 조각만 있는 건 아니다. 보고 싶은 친구에 대한 작고 이쁜 마음도, 실연의 상처에 우울한 친구를 위한 작은 이벤트도, 삶이라는 여정에서 겪는 크고 작은 굴곡에서 머뭇거리며 아쉬워하는 마음도 모두 조각집에 들어가 있다.


아이유가 그러했듯 파란 하늘과 거친 풍랑이 공존하는 20대를 지나면 이제 각자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각집이 생긴다.



밤새 마르지 않는 주제로 수다를 떨어도 심심하지 않던 친구
가슴 터질듯한 설렘을 안겨준 그 아이

어이없어서 슬프지도 않게 이별한 그날
돌이켜보니 너무 후회되는 가슴 아픈 사랑
끝없는 시험 준비, 면접 준비로 아득해 보였던 자신의 미래
처음 맛본 사회라는 쓴 맛에 엄마품이 가족 곁이 너무 그리워진 퇴근 후 깊은 밤

이 와중에도 나를 지지해주는 연인
나를 믿고 파이팅 해 주는 친구들
언제라도 와서 쉬었다 가라며 넓은 품 한껏 더 늘려 안아주는 가족들


조각이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듯이


누군가의 20대 조각집은 빛이 가득한 아크릴 유화일 수 있고 어떤 이의 조각집은 미완이지만 가능성이 넘치는 묘사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도 완벽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 20대의 조각집은 한 사람의 인생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이제 겨우 물을 조금 적셔준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20대가 모자랐다면 30대에도 가능하고 40, 50대에 뿌릴 수 있는 씨앗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부단히 움직이고 시도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웃고 울고 다투고 화해하길 바란다. 조각집은 다양한 색으로 가득 찰 때 빛난다. 다양한 빛은 강력한 에너지가 되어 곧 다가올 새로운 계절을 일군다. 그렇게 또 다른 조각집이 탄생하고 삶의 계절은 더 풍요로워진다. 당신의 시각, 미각, 촉각도 그 계절에 따라 더 풍성해질테다.




[이미지 출처]

이담 엔터테인먼트

조각집 티저 캡처

https://unsplash.com/s/photos/young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유 연대기 11: 사랑이 필요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