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너와 다르게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다.
지금 이 시대에는 트렌디한 상품이나 스타일을 쫓으며 타인의 선택이나 결과물에 자신의 안목을 맡기고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물론, 특정 아이템이나 주류 상품, 스타일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이 역시, 아직 자신의 취향이 정립되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또는 누가 봐도 합리적으로 따라갈 만한, 굳이 내 의견이나 취향을 내세워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제품들에 한 할 뿐이다.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시대에도 개개인의 개성이나 취향이 이렇게나 구체적으로 세분화되고 상품화 되며 개인에 맞춘 산업들이 발전한 적은 없었기에 우리는 원시, 선사, 중세, 근세, 근대, 근현대를 지나 이제 막 ‘취향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취향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무형의 개성이다. 그 개성이 발현되어지는 것들이 물건, 사상, 이론, 유머, 의견, 음식, 라이프스타일 등으로 나눠지며 유형의 것이 되기도 하고 무형의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취향은 보이지않지만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의 것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특별하며, 여러 곳곳에서 자신만의 취향이 하나 둘 생겨나면 어느 새 취향들은 강력하게 결합하여 단순한 나의 기호가 아닌 내 삶이 되고 그 삶은 나의 인생 전반을 걸쳐 ‘나’라는 사람의 색과 향을 결정하는 일종의 DNA가 된다.
그렇다면 취향은 무엇일까?
도대체 취향은 무엇이길래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지고
나이가 들수록 확고 해질까?
취향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좋아한다고 그걸 ‘내 취향’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엄마, 아빠를 좋아하고 따른다. 그럼 그 부모님은 그 아이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취향이란 무엇인가? 취향은 도대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요인에 의해 결정될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 갤럭시와 애플의 아이폰은 모두 수 많은 고객층과 팬을 보유하고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마트폰들이다. 시장 초기, 아이폰은 심플하지만 번뜩이는 디자인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그리고 앱(Application)이라는 획기적인 컨텐츠를 가지고 나왔고, 그걸 본 수 많은 사람들은 단번에 애플의 충성 고객이 되었다. 물론, 스티브잡스의 카리스마, 천재적인 심미안과 마케팅 능력도 크게 한 몫 했겠지만 어쨌든 아이폰이라는 기기 자체가 가지는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런데 그 수 많은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아이폰에 열광했을까?
당시, 아이폰은 다른 스마트폰과는 다른 달리 물리적인 키를 최소화하고 유저의 사용환경을 고려한(UX) 설계 및 디자인, 게다가 앱이라는 전혀 새로운 컨텐츠를 가져왔음에도 이를 처음부터 편리하게 사용 할 수 있게 구현해 놓은 덕분에 사람들에게 기능의 복잡성을 배워야하는 숙제 대신 그들의 미적 감각과 세련됨을 갈구하는 본능을 일깨우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취향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아이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굳이 내가 내 입으로 ‘난 합리적이고 깔끔하며 세련되었고 또 스마트하기까지 하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통해 저절로 ‘난 그런 사람’ 혹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걸 전달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사람들이 아이폰을 선택했다. 이 점이 사람들이 아이폰에 열광한 이유이며, 바로 여기서 우리는 취향의 핵심 요인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취향의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어떤 요소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특정 물건에 집착하게 하고 특정 맛에 길들이며, 특정 분위기를 갈구하게 할까?
그것은 바로 '미적 감각, 차별화, 신분 변화, 색다른 분위기로 전환, 자기 대리' 이 다섯 가지로 축약해서 볼 수 있다. 즉, 우리가 어떤 사물, 분위기, 맛, 향, 디자인 등을 볼 때 이 다섯 가지 요인이 발생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선택을 취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또는 취향이 아닌 다른 필요나 주어진 조건(예를 들어 마트에서 식료품 사기, 부모님과 가족을 좋아하는 감정)때문 인지를 구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다섯 가지 요인이 충족되더라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자신의 취향이 될 수 없는 것도 있고 구매하거나 갖지는 못해도 자신의 취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게다가 요즘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자신이 선호하는 식료품의 브랜드에 따라 구매를 하기 때문에 취향이 단순히 고가의 물건, 특정 장소, 특정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에 한정 지어지던 과거를 넘어 개개인의 삶에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 문화란 것이 누적되어 발생하고도 수 천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개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이 발현되고 사회, 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절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자신의 취향에 대한 선호와 개성에 대한 욕구가 없었을까?
과거에는 태어날 때 부터 신분의 한계에 대해 세뇌되었기에 개인의 취향의 발현이 없었다고 볼 수 도 있지만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시대의 벽 때문이었다고 보여진다. 신분, 교육환경, 기회, 사회적인 분위기 등을 고려해 볼 때 약 백 년 전의 과거만 해도 신분은 법으로 정해져 나뉘어져 있었고 그 때문에 새로운 것, 지식,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환경은 제한적이었으며 역시 덩달아 평민들의 사회, 상위 계층, 변화에 대한 기회는 극히 적었다. 무엇보다 이런 분위기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자신의 취향은 커녕 굶어 죽지않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취향이라는 것은 고위층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품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전히 암묵적인 신분, 사회의 벽, 기회의 차별 등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분위기가 사회 곳곳에 웅크리고 앉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과거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억압받던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현대에는 누구나 다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가질 수 있고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개개인이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고 그걸 이룰 수 있는 사회적인 바탕이 마련된 것도 불과 수 십년 전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이 시대를 ‘취향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속에서 개개인인 ‘나’가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 20~30대, 많게는 40대인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들의 어린 시절에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며, 사회적으로도 비교적 안정되어 유복한 유년기를 거쳐 성장한 이들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과거 세대에 비해 쉽게 가졌고 부모의 보호 아래 오로지 자신의 교육 및 진로에만 삶의 초점을 맞춘 세대로 국가적인 재난이나 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내 고민, 내 걱정, 내 행복, 내인생’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자아가 형성된 첫 세대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애, 내 것, 내가 원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내 취향’으로 연결되었고 현재 취향은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보호하는 내 고유의 것이 되었다.
물론,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도 많다. 스타, 문학, 음식 등 같이 공유했을 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 크게 확산되는 것에는 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그 덕분에 자신의 취향은 더욱 확고 해지며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취향은 개인적인 기호인데 함께 나누고 그걸 통해 더 발전 한다니 좀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결국 공유를 통한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것이므로 여기서 우리는 취향의 또 다른 힘과 색다른 능력을 엿 볼 수 있다.
취향의 또 다른 역할은 다양성에 있다. 획일성을 강조하고 개인의 개성을 죄로 여기던 시대에는 지금처럼 이토록 다양한 문화와 상품들이 필요 없었다. 그저 비슷한 구성,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색, 비슷한 맛과 향 만으로도 대중은 불만 없이 선택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다양하지 않으면 결국 살아남지 못하는 생물의 종처럼 개인들의 개별적인 다양화는 산업, 사회, 문화적인측면 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삶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며 반가운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은 문화와 산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더욱 도전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산업이 세분화되면서 사회가 지속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부터 신분이 높거나 부유하거나 혹은 특정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취향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들은 남들이 쉽게 구하기 힘든 위스키를 마시고 남들과는 다른 공간에서 유희를 즐기며 남들은 먹기 힘든 계절음식을 먹고 남들이 가지고 있지않은 물건들에 집착했다. 사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 시대에 그들이 누렸던 것들은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안에도 취향에 따른 차별화는 분명히 존재했으며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인간 본연의 욕구인 ‘내 취향’의 발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신분적, 경제적, 사회적 요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취향이라는 것이 내 속에서 나와 바깥으로 표출 될 수 있는 유일한 나의 색이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볼 때 이제 취향은 단순히 기호식품 취급을 받던 과거의 개념에서 한 개인의 삶을 유지하고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며 또한 이런 다양성을 통해 사회와 산업을 움직이는 큰 힘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취향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개인의 다양한 취향 덕분에 TV에는 무수한 음식, 여행, 쇼핑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고 사회에는 다양한 제품들이 공장이 아닌 수작업으로, 작은 가게에서, 집에서 만들어져 독특하고 특별한 자기 만의 물건을 원하는 대중에게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 개개인들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든 세상이니 그 누구도 부럽지않고 그 누구의 간섭도 없다. 단지 내가 느끼고 내가 즐기며 또 내가 구매 할 뿐이다. 자신의 삶은 그 안에서 문제없이 돌아가며 그렇게 나이가 들수록 나의 삶과 세상은 더 독특 해지고 개성이 넘친다. 그리고 ‘나’는 만족스럽다.
스타를 향한 팬심이 그렇듯, 취향은 오직 ‘나’만을 향한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타인들에게 ‘나’의 특별함과 다름을 발산한다. 이를 위해 내가 선택하는 물건들은 비쌀 필요도 없고, 백화점에 있을 필요도 없으며,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할 필요도 없다. 기존 사회와 경제를 구성하던 필요충분조건들과는 어긋나지만 시장은 더 활성화되고 개별 제품에 대한 충성고객들은 늘어나는, 이 얼마나 차세대적인 시장의 형태인가?
취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움직인다. 취향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시장의 판도를 정형화시키지 않는다. 취향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건 오직 ‘나 자신’ 일 뿐, 그 누구도 나의 취향에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다. 그것이 취향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다음 세 포스팅에서는 사람들의 취향과 특유의 감성을 잘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엄청난 공감을 이끌어낸 드라마, 영화, 웹툰(작가 인터뷰)을 소개하겠다. 일상 속에서의 인간적인 공감, 예술을 통한 하나됨의 유대감, 그리고 저속해서 '함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대변해주는 B급 정서에 대한 콘텐츠와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취향과 그것이 가지는 힘에 대해 더 깊이있게 알아보겠다.
(메인이미지 출처: 네이버블로그 '봄그라미' 포스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