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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y 05. 2018

'나의 아저씨', '나의 현실'

드라마가 녹여낸 우리네 삶의 진짜 치부 그리고 그토록 듣고 싶던 속내


나의 삶과 '나의 아저씨'


치열한 삶 속에서 돌파구를 찾기 힘들수록 사람들은 현실을 잊거나 타개할 방법을 외부에서 찾게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편안하게 조용히 소파에 누워 별 생각없이 리모컨만 누르면 복잡한 생각을 잠시나마 날려버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 인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삶, 사회생활, 직장생활, 대인관계, 가족관계, 울타리 없이 살아온 삶, 성공에 집착한 근시안적인 삶, 오래된 굴레(프레임)에 스스로 갖힌 삶, 과거에 집착하는 삶, 냉정한 현실에 부딪혀 나락으로 떨어진 삶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바른 선택을 하려는 이들과 그들의 그런 바른 선택에도 불순한 의도나 값싼 동정심 따위는 아닌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오버랩. 하지만 마침내 모든 긴장과 오해를 불식시키며 안도하게 만드는 얼어붙은 가슴도 봄볕처럼 녹여버리는 진심.


진정한 어른들로부터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배웅을 받은 지안과 그녀의 진심어린 한 마디. '감사합니다.'


세상에 나 홀로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던 각기 다른 모두의 한 평생을 보듬어주는 너무나도 평범한 한 마디.


감사합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무수한 상징과 메시지가 그들의 대사, 눈빛, 장소, 제스처, 주변 환경 등에 숨있다. 그리고 이는 매 화를 거듭할 수록, 그리고 사건이 전개되며 등장인물들의 갈등 구조와 해결 방안이 드러날수록 시청자들은 재미를 넘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치유를 경험하고, 누구나 고민하고 두려워했을 법한 상황에 대한 공감과 감동으로 큰 위안을 얻는다.


대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컨텐츠들을 경험다보면  훈계성 발언이나 보기 불편한 억지 감동 및 교훈 코드로 오히려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하고 또는, 무리 정답의 제시 공감은 커녕 해당 콘텐츠 끝까지 보기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 만큼 의식 수준이 높아진 시청자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쌓여있는 감정을 매만지는 것은 매우 어렵고 다양한 형태의 삶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어온 다양한 사건들을 이슈화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극화하여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해당 매체와 극을 통해 어떤 정답을 갈구하기보다는


'나와 같은 사람도 있어', '이런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도 있지.', '답답하지만 나도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어.'


같은 보통 사람들의 정서가 대변되고 함께 그 감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해소를 느끼고 위로를 받는 것이다. 마치, 극 중에서 동훈(이선균)이 지안(이지은)에게 '인생도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라고 하자,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라고 묻는 지안에게 '몰라..' 라고 대답한 현답처럼 말이다.


'행복하자' 한 마디에 웃는 둘. 그래, 우리도 그냥 그렇게 쉽게 행복해보자.


상징성, 메시지 그리고 나의 '좋은, 존경하는' 아저씨


여느 문학 작품이나 드라마가 그렇듯 똑똑하고 감성이 넘치는 작가들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무수한 상징과 메시지를 숨겨놓는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 역시 그런 의미 있는 상징과 따뜻한 메시지가 넘치는 작품이다. 덕분에 감성이 풍부한 시청자들은 의미 있는 대사, 장면, 환경 하나하나에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위안을 받으며 힘을 얻기도 한다.


첫 번째 - 식당


'나의 아저씨'에는 식당신(scene)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회사 사람들과의 회식 장면, 후계동 사람들과의 식사자리, 술자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안과 동훈의 저녁 식사. 보통 식구(食口)라고 하면 가족과 혼동하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식구와 가족은 완전히 다른 개별적인 단어다. 가족(家族)이 친족, 즉, 혈연을 중심으로 한 관계라고 한다면 식구는 피붙이도 아니요, 먼 친척도 아니지만 적어도 함께 살며 밥도 같이 먹는 사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굳이 같이 살지 않아도 같이 자주 밥 먹고 함께 어울린다면 '식구'라고 부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족보다 훨씬 넓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안과 동훈이 자주 식사하던 장면의 실제 식당. 주택가에 위치한 이 곳은 평일 점심이라 문은 닫혀있었지만 뭔가 특별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사실, 지안과 동훈의 저녁식사는 지안의 트랩(trap)이었다. 동훈을 파괴해야만, 이미 파괴된 자신의 삶을 더 세게 짓누르는 빚이라는 짐을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훈 역시 자신이 누명을 쓰게 된 상황과 그것을 눈치챈 지안의 심중을 파악하기 위해 식사와 술 한 잔을 제안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덕분에 둘은 함께 정기적으로 식사를 하는 식구(食口)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를 통해 조금씩 더 친분이 생기게 되는 계기도 얻게 된다. 지안이 동훈의 휴대폰을 도청(나쁜 의도이든 아니든)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는 오히려 이점이 되었다.


현실이 지옥이야. 여기가 천국인 줄 아냐? 지옥에 온 이유가 있겠지.
벌 다 받고 가면 되겠지 뭐.

벌은 잘못한 사람이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대신 죽여줄까요?

-지안과 동훈의 대화 중.


시간이 흐를수록 그 둘의 식사 시간은 특별해졌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둘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소리 없이 식사를 하고 딱 필요한 이야기만 나눈다. 여러 화를 거듭할수록 식사 시간, 즉, 식당 안은 지안과 동훈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고통, 아픔, 슬픔, 현실의 짐에서 벗어나 그저 그 시간을 담담하게 보낼 수 있는 일종의 성역(聖域)이 되었고 이제 '밥 먹었니?'와 '밥 좀 사주죠.', '술도 사줄게.'는 직장과 삶의 전쟁터에서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중립지역에서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더 특별한 관계도, 이벤트도 없이 그냥 고요히 시간이 흘러가길, 또, 배는 불러오길 바랄 뿐임을, 그리고 그게 우리가 바라는 휴식임을 넌지시 알려다.


참,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 식사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둘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 도청


처음의 의도야 동훈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 더 빨리 그를 파멸시키기 위함이었겠지만 역설적으로 지안은 동훈의 휴대폰을 도청함으로써 그 역시 자신만큼이나 삶의 고통과 짐에 허덕이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개인 휴대폰을 도청한 것은 명백히 불법적인 행위이지만 북적이는 지하철 속에서 잠깐 흔들리는 틈을 타 그의 휴대폰에 도청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듯한 지안의 태도에서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바닥의 삶을 살아왔는지, 또, 얼마나 그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이질적인 세상에서 처음으로 느낀 동질감은 그녀가 도덕적으로 전혀 거리낌 없이 행하는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 얻게 되었으니 참 웃지 못할 상황 설정이다.


 위기에 빠진 동훈의 한 마디에 급기야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지안. 처음으로 느껴본 '내 편'의 힘. 그 안의 위안.
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들은.. 다 죽여.

- 광일과 싸우던 중 동훈의 대사.


그리고 극 중에서 그 누구와도 진지한 또는 의례적인 상식선 상에서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 지안이지만 동훈을 도청하는 이어폰을 끼고 있을 때 만큼은 순수하게 진지하고, 차분하며, 진심으로 상대방을 느낀다. 도청은 그녀의 유일한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며 타인의 진심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첫 번째 창구가 되었다.


세 번째 - 길, 철길


'나의 아저씨'는 유난히 걷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메인타이틀에서도 주인공들은 걷고 있으며 극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상적인 장면들에도 걷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후계동 철길로 나오는 용산 서부이촌동의 철길은 드라마의 분위기와 톤을 살려주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 중 혼자 걷는 장면과 지안과 동훈이 조금은 떨어져서 걷는 장면은 누구 하나 주목하는 이 없어도 묵묵히 혼자 걸어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주는데 매일매일 아침 일찍, 야근 후, 밤늦도록 그렇게 걷고 걷고 성실하게 걸었지만 남는 게 없는 사람들의 허탈한 심정이 그들의 걸음걸음에 녹아있다. 그나마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기에 종종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이벤트도 생기고 다투기도 하지만 이내 곧 화해하고 집에 데려다다. 그게 삶이다. 그리고 삶의 전부다.


지안과 동훈은 길 위에서 담담히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담담한 그들의 대화 속에 삶의 고통도 살아가는 방법도 묻어난다.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디고,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
이런저런 스펙 줄줄이 달려있는 이력서보다 달리기 하나 쓰여있는 이력서가 훨씬 쎄 보였나 보지.

- 지안에게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동훈의 대사 중.


네 번째 - 정희네


정희네는 실연의 아픔으로 가득 찬 여인의 한이 넘쳐나는 공간이지만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동훈 삼 형제와 후계동 패밀리들로 왁자지껄 얼큰히 취한 밤이 되면 현실의 아픔과 좌절을 한 밤의 열기로 뿜어내는 에너지가 넘치는 가장 활기찬 공간으로 바뀐다. 과거 한 고을의 주막이 그런 역할을 했듯 동네마다 한두 곳 정도는 있을 법한 작은 술집에는 각기 다른 사연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일 밤 묵은 피로를 풀어낸다. 우리네 일상에서 동네의 흔한 선술집처럼 중에서 정희네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동훈의 형제들, 정희, 후계동 패밀리들 등 기타 인물들이 그들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풀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으로 그들의 갈등과 고민이 해결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정희네의 실제 건물은 일반 가정집이다. 혹여나 찾아가시더라도 조용히 멀찍이서 외관만 즐기고 가시길.


하지만 또 그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늦은 밤이 되면 사무치게 그리운 과거와 사람에 흥건히 젖은 순수한 여인의 한으로 가득 차버리는 가슴 달랠 이 없는 공허한 곳으로 변해버린다.


생각은 무슨...
봤어.
너 데려다주면서...
그대로더라...

- 동훈인 줄 알고 보낸 겸덕의 솔직한 메시지.


다섯 번째 - 청소방


형제 청소방은 상훈과 기훈(동훈의 형과 동생)이 각각 대기업 퇴출, 자영업 실패 및 영화감독 실패를 극복하고자 친구에게 인수받은 생계형 자영업이다. 최근 들어 청소 업은 각광받는 새로운 산업 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청소'라는 직업에 대한 여론의 인식은 여전히 그리 높진 않다. 나는 여기서 청소를 실패한 사람들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 정도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극 중에서 청소는 자신들의 실패, 대책 없는 성격과 욱하는 성질을 닦아주는 대체재의 역할을 하며 쭉 펴보지 못한 삶에 대한 애증의 심정으로 자신들의 슬픈 과거를 씻어내려는 의도로 풀어볼 수 있다. 즉, 청소방은, 대성하지는 못하겠지만 아픈 과거 때문에 슬픔에 절여 살지도 않겠다는 중년의 몸부림치는 에너지가 응축되어있는 곳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 그래 잘해보자.', '아, 빨리 좀 나오라고!' 둘은 그렇게 '형제청소방'을 시작했다고 한다.
기타노 타케시가 한 말이 있어.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 자꾸 자기 반찬을 뺏어 먹는 상훈에게 욱하며 내뱉은 기훈의 한 마디.


다행히 상훈과 기훈, 두 형제는 얼떨결에 함께 청소를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각자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여유로움과 욱함을 가지고 있다. 둘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또 그렇게 자신들의 삶의 여정을 즐겁게 티격태격 대며 이어나간다.


여섯 번째 -  골목 계단


지안은 그동안 그 누구의 진심 어린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 1회 성 이벤트로 뿌려주는 동정이 담긴 선심성 행태는 호의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도 없이 할머니를 돌보며 받지 않아도 됐을 부모의 빚을 떠안은 채 긁히고 터지며 벌어온 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 아이였을 뿐, '어른의 보살핌'이나 '비빌 언덕'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런 지안에게 처음으로 '어른의 힘'을 체감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이 골목 계단에서.

아주 오래된 동네의 울퉁불퉁 각기 다른 높이이 계단들. 지안이 혼자 올랐을 들쑥날쑥한 삶의 굴곡을 이젠 누군가 함께 올라준다.
착하다.
... 간다.

- 지안의 현실을 알게 된 동훈이 할머니를 모셔다드리고 남긴 한 마디.


지안의 삶에서 힘겹게 책임지고 있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짐(할머니)'은 그동안 온전히 스스로 버텨내야 하는 현실이었는데 처음으로 그 할머니를 업고 집까지 올라간 동훈은 아마도 지안이 처음으로 느낀 '진짜 어른'이었을 테다.


일곱 번째 - 집 그리고 가족


'나의 아저씨'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나온다. 부모 없이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지안이, 아들은 유학 중이고 아내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도 남편이 자기만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동훈네, 항상 이혼 위기인 상훈네와 40대가 되어도 어머니 집에 얹혀사는 기훈을 데리고 사는 동훈 삼 형제의 어머니네, 그리고 실연의 아픔을 안고 정희네를 운영하며 혼자 있을 때마다 슬픔과 외로움에 사무쳐 사는 정희네까지.


극중 지안의 집으로 나오는 곳. 오래된 골목, 오래된 집이 극의 리얼리티를 잘 살려주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인 부모님과 형제, 자매 혹은 거기에 조부모까지 함께 모여사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가족'은 여기에 없다. 그리고 사실 그게 현실이다. '나의 아저씨'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잘 묘사해주며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심리를 잘 헤아려주고 있다. 가령, 가족은 짐이 되기도 하고 갈등의 대상이며 때로는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여길 만큼 경멸하다가도 또 그들을 위해 살고, 그들의 편이 되며, 그들이 없으면 살지 못하, 누군가 우리 가족 중 누구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당장 달려가 두 배, 세 배 이상의 복수를 할 수도 있는 우리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가족애를 한 스쿱, 두 스쿱 잘도 퍼낸다.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집 역시, 물리적, 정신적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공간이 되질 못한다. 지안의 집은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낡은 대문이 말해주고, 시도 때도 없이 집 안에 들어와있는 사채업자 광일이 그러하듯 조용하고 안전하며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그저 잠시 인스턴트 커피로 끼니를 때우며 겨우겨우 할머니를 모시는 정도의 기능만 할 뿐이다. 동훈의 집은 또 어떤가? 자신은 대기업 부장에 아내는 변호사로 중산층 가정에 걸맞게 아늑하고 큰 집, 깔끔한 인테리어 등 누구라고 살고 싶은 집에 살고 있지만 아들은 타국에서 자라고 있고 아내는 남편의 관심을 갈구하고 갈구하다 급기야 남편의 회사 대표와 바람까지 난(그럼에도 바람에 대한 변명까지 분명한) 상황이라 항상 우울감이 깔린 정체된 침묵 속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했던 지안의 집은 어느 새 '내 편', '내 식구' 덕분에 조금씩 안전한 곳이 되었다.


'나의 아저씨'는 극 중 이런 비정상적인 집과 가족들을 보여주며 우리의 삶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일, 행복할 일,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은 항상 존재하기에 굳이 언젠가는 좋은 집, 좋은 가족을 이루고 살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지도, 정답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이렇게 살아도 틀린 삶은 아니다, 그러니 네가 원하는 삶을 살면 그뿐이다'는 메시지를 잔잔하게 흘려준다. 어차피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며 살아 갈테니.


아직 끝나지않은 처절하지만 즐거운 우리 삶의 이야기


'너 누구 편이야? 쟤 편? 내 편?'
어린 시절 동네에서 편을 가르고 놀던 때 항상하는 질문. 네 편? 내 편?


그 동안 지안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 지안은 아무리 어려워도 할머니를 포기하지않는다.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편은 '가족'이다. 싫든 좋든 항상 함께 해야 하고 공동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다. 제아무리 가족, 식구가 귀찮고 짜증 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우리 가족을 욕하고 해하려고 하면 여지없이 달려와서는 멱살을 잡고 지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 '나의 아저씨'는 처절하게 때론 비참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내 편'의 소중함을 찾게 해준다. 그것이 가족이든 식구든.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보살펴 준 어른이 없는 아이, 지안.


안전하게 조심스럽게 불안정한 현실에도 앞만 보고 살아왔을 뿐
그 누구에게서도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동훈.


그리고 저마다 각기 다른 결핍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이해하고 바라봐 주길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


자신을 이해해주고, 도와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생겼을 때의 기쁨.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온몸을 던져 보호해주는 사람이 생겼을 때의 안도감.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내게 그런 사람은 누가 있을까? 또,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일까?


할머니에게 동훈의 소식을 전하는 지안. '좋아서' 나를 알아주고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어른이 생겼다는게 너무 '좋아서'
좋아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게..
좋아서.

드디어 존경하는 어른이 생긴 지안. 그런 지안에게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맙고, 그리고 너무 좋다.




*이미지 출처

- TVING tvN '나의 아저씨' 클립영상 스크린캡처 및 현장 방문 촬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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