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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Jan 14. 2023

더 글로리 파트 1: 나의 평범한 영광을 위하여

내 타락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깊은 분노는 뜨거운 쇠꼬챙이가 되어 밤마다 네 눈 깊숙한 곳을 노리고, 성난 인두는 날 비웃던 네 입가의 더러운 미소를 향하고, 오래돼 케케묵어 나조차 맡기 싫은 이 감정은, 최초의 목적은 잊었어도 최후의 갈 곳은 영원히 잊지 않아. 나의 타락은 더 이상 너의 고통을 향하지도, 네 주변의 종말에 개의치 않거든. 이건 이제 오로지  내가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나의 삶, 나의 영광'을 향할 뿐이야.



너의 무자비하고 끔찍한 복수를 위하여


개인의 영광은 한 사람이 지나온 일생의 정수다.


이 영광은 화려한 불꽃쇼나 번쩍거리는 트로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영광의 지속을 위해 타인의 무의미한 감정이나 노력은 사실, 필요치 않다. 그저 어느 날 돌아본 내 과거의 하루, 한 자락이 평안의 기쁨과 일상의 화목으로 가득 차 있어, 그 사이 불필요한 잡음조차 웃으며 넘길 수 있다면 그 삶은 무한한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실로, 우리 삶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그런 평안 위에 있을 때,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환희도 모두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내 삶의 일부가 된다. 타인의 개입이 적당하여 내가 밀면 사라지고, 원하면 들어올 수 있을 정도 일 때, 개인의 삶은 안정되었다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하면 ‘더글로리’는 개인의 명예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명예는 현재 자신의 현실, 가장 기본적인 상태를 반영한다. 즉, 외부의 어떠한 가해도 없이 그저 지금껏 자신이 살아오며 쌓은 일상의 행위가 누적되어 이룬 삶의 틀이다. 이 틀에서 개인의 꿈이 시작되고 삶은 더 나은 변화도 생성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무리의 타인이 온갖 욕설과 폭력으로 이를 깨부수고 내 삶을 난장판을 만들고 난도질을 해버렸다면 어떨까. 즉, 타인의 개입에 의해 나의 일상이, 현실이, 명예가 일순간에 파괴되어 버렸다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


힘의 진짜 의미



그럼 힘을 가지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힘은 약육강식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학교는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다. 즉,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의 명예를 외부의 다른 방해나 왜곡 없이 차곡차곡 쌓을 수 있도록 보호받는 곳이어야 한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학교가 공평한 곳이라는 뜻은 아니다. 부모의 재력으로, 아이의 타고난 능력으로 이미 여러 단계를 건너가 30층에서 성장을 시작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타고난 능력이나 부모의 도움이 없어 지하층에서 시작하는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공평한 상황은 그걸로 족하다. 그걸 넘어서는 폭언과 폭력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더럽히기에 충분하고,


그 충분조건은 곧 어긋난 결정이나 ‘복수’라는 이름의 또 다른 무자비한 폭력을 낳는다.


힘을 기르라는 말은 힘으로 타인을 눌러 으깨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힘은 어리석은 저들처럼 힘과 권력에 취해 미쳐 날뛰는 미친 자들에 대항하기 위함이고, 힘이 부족해 타인으로부터 고통받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나의 지극히 평범한 영광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 동은이 겪은 폭력과 폭언의 끔찍한 기억에 함께 분노를 느끼며 복수를 다짐할 때 사실, 동은의 목표는 ‘복수’ 이상의 것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복수’가 ‘복수’로 끝나면 그저 또 다른 복수를 낳거나 ‘복수 이후의 허무’에 삶은 더 깊숙한 곳으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동은의 복수는 이제 ‘처절하고 끔찍한 고통을 안길 복수’와 더불어 '더 큰 목적지'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극 중 동은이 복수를 준비하는 십수 년의 기간 동안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 험난하고 외로운 여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눈눈이이’와 같은 복수 자체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가장 일반적이고 정상적이었던 삶의 밸런스, '건축학도가 되어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꿈'으로 하루하루 채웠을 학창 시절의 평범한 ‘문동은’을 되돌려 받기 위함이었다.



‘나의 평범한 나’를 되찾은 뒤에야, 동은은 자신의 평범한 하루 끝에 긴 숨을 몰아쉬면서도 ‘난 언젠간 건축가가 될 거니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와 같은  평범한 꿈을 다시 꿀 수 있다.


한 개인의 명예는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외부의 자극을 스스로 개척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때 유지된다. 따라서, 다수의 타인에게 폭행과 폭언, 협박으로 점철된 학창 시절을 가진 동은에게는 ‘명예 회복’으로 다시 만회할 수 있는, 과거의 나약한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고, 이제라도 다시 삶을 그려나갈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이 필요하다.


복수에는 '사죄의 옵션'이 필요하지만, 이를 넘어선 영광의 단계에서는 '사과를 받아내거나, 용서를 구하라고 하는 것'도 모두 무의미해진다. 그저 복수하는 자신이 ‘충분히 과거의 나를 되찾았다는 자발적인 인정’만이 필요할 뿐, 더 이상 가해자의 ‘사과와 인정’은 필요치 않다.



과거, 그들이 '나의 허락'없이 나에게 폭력으로 가해한 만큼, 과거의 나를 찾는데 그들의 ‘사과와 인정’과 같은 ‘허락’을 받아내는데 집착하기엔 ‘나의 영광’은 너무나도 크고 밝게 빛날 것이기 때문에, 나의 복수와 영광에 '그들의 허락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에.




[이미지 출처]

https://sports.donga.com/ent/article/all/20221220/117086026/2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5850

https://v.daum.net/v/tsr8bhlfnf

https://www.etnews.com/2023010400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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