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동시절에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면 부모님께 칭찬을 받았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학교를 잘 다니고 그럭저럭 중상위권의 성적 정도면 부모님께 칭찬을 받았다. 성인이 된 대학시절도 비슷하다. 학점이 잘 나오고 과외 활동을 잘하면 부모님께 칭찬을 받았다.
그다음 문제는 취업이다. 하지만, 취업을 할 때까지만 해도 취업 자체만으로 부모님께 칭찬을 받았다. 부모님들은 드러내든 그렇지 않든 굉장히 기뻤을 것이다. 그저, 자녀에 대한 자신들의 가장 큰 근심 하나가 이제 막 해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딱 여기까지. 참, 행복하고 안정적인 시절이 이제 막 마감됐다.
이제 직장에 들어온 당신은, 사회생활이라는 복잡한 네트워크에 진입한 그대는, ‘세상 물정’이라는 기준을 익히고, ‘눈치&코치’라는 멀티 센서를 장착한 후, ‘이율배반’이라는 세상의 원칙에 대해 익숙해져야 한다.
직장생활이 마냥 힘든 것도 아니고 사실 따지고 보면 힘든 날보다는 좋은 날, 무난한 날이 더 많다.
그런데 나는 왜 '이율배반'을 직장생활 핵심 키워드로 넣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체로 힘든 일의 임팩트가 좋은 일의 임팩트보다 강하고 오래가기 때문이다. 성과로 인한 보너스는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 기쁘다면, 회사에서 힘들었던 날은 짧게는 한 두 달에서 길게는 평생에 걸쳐 문득문득 떠오르며 내 미간의 주름에 더 깊은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랑 저녁을 먹으면 항상 회사 자랑보다는 회사 욕, 상사 칭찬보다는 상사 뒷담화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힘든 일, 나빴던 일을 더 많이 얘기한다. 불쾌한 기억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발설을 통해 타인과 공유하며 감정을 전이시킨다. 덩달아, 친구도 힘들었던 회사 일을 입 밖으로 꺼낸다. 한 동안 욕설과 뒷담화가 난무한다.
하지만 대화는 즐겁다. 깔깔, 껄껄 오래 묵은 감정이 해소되며 체증이 내려간다.
두 사람 모두 만면에 찡그림과 웃음을 번갈아가며 안면근육이 쉴 틈이 없다. 기분은 한결 나아지고 혈압은 극단을 찍고 쑤욱 내려간다. 덕분에 사회생활의 수 만 계단 중 몇 개 단 정도는 쉬이 걸어 올라갈 힘이 생겼다.
어차피 다음 주에 회사를 가면 또 어떤 배반이, 어떤 뒤통수가 나를 기다릴지 모른다. 물론, 그런 나쁜 일들이 흔하지는 않다. 하지만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그런 것처럼 내가 당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당하고 있고, 회사에서 내가 한없이 행복하면 어쩌면 내가 또라이일 확률이 높다고 하지 않나.
노력, 결과, 그다음은 요?
직장생활에서 놀라운 또 하나의 사실은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물론, 노력은 언제 어디서나 기본 소양이다. 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음에도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되거나 나의 노력이 타인의 성과로 이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서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직장생활에 자신이 쓸 수 있는 하루 에너지의 절반을 넘기지는 말라. 욕먹지 않게 일하고, 시간 내에 일을 다해내면 기본은 된 사람이다. 혹시라도 그 이상을 하면 눈에 띄는 사람이고, 거기서 성과까지 내면 훌륭한 인재다.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결과가 나쁠 때도 있고, 그냥 되는대로 시간을 맞춰 꾸역꾸역 일을 했는데도 훌륭한 성과가 나와 칭찬을 받고 보너스를 받을 때도 있다. 당신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하루라는 삶’을 위한 에너지 분배를 잘하라는 뜻이다. 회사에 목매지 말고 회사에서 발생한 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삶이 더 중요하고, 당신의 존재가 더 고귀하다.
우리는 우리가 한 노력에 대해 회사에 청구할 수 없다. 그저 우리의 성과를 기반으로 평가되고 지불받을 뿐이다.
예측하되 믿지 말고, 의지하되 믿지 말라
직장 생활은 세상이 내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직장에서 ‘나’는 언제나 조연일 수밖에 없다. 그럼 누가 주연일까. 당연히 ‘대표’다. 주인의식은 대표가 직원들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바람일 뿐이다. 주인의식에 종용될 필요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대표나 임원이라면, 제발 직원들에게 ‘대표 같은 마인드나 회사를 내 것처럼’이라는 말로 직원들의 애사심을 부추기지는 않길 바란다.
회사에는 직원의 역할이 있고, 대표 및 경영진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만 다해도 회사는 굴러가고 발전한다. 서로 더 욕심을 내다보니 불협화음이 생기고, 배신감을 느끼고, 떠나가는 것이다. 역치는 높이되 기대는 낮추길.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룰 예정이라 여기까지)
단, 효율적으로 일하고, 효율적으로 공금을 쓰는 것은 중요하다. 회사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이는 이를 운영하는 ‘담당자의 능력과 인성 측면’에서 중요하기에 굳이 ‘회사’를 위해 그랬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직장인으로서의 양심과 떳떳한 직원’으로 임했다는 것만으로 배덕감에서 자유로워질 정도면 좋다.
사실, 조연도 주연도 감독(시장, 경쟁자, 고객)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건강한 직장생활을 위해서는 믿음을 살짝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이럴 것이다, 이렇겠지?' 보다는, '그럴 수 도 있지. 아, 그렇구나~'가 더 낫다는 말이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