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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Oct 23. 2021

(우리의) 노동의 미래

스몰 워크, 빅 머니! 

<(나의) 노동의 미래> #00



최근 마음을 빼앗겨버린 브랜드가 있다. ‘모베러웍스’다. 스스로를 일하는 사람이라 지칭하는 이들은 ‘일하는 태도’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며 이를 의류나 굿즈 혹은 공간으로 구현한다. 2019년 8월에 시작된 이 브랜드는 일 년이 되기도 전에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모베러웍스는 브랜드의 성장을 ‘모티비’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낱낱이 연재했는데 영상을 보고 있자면 이들이 정말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에게 그들의 존재감을 알렸던 메시지는 ‘ASAP : As slow as possible’, ’No Agenda’ 등이다. 모두 업무의 비효율성을 위트 있게 비튼 메시지다. 이들은 5월 1일 노동절을 자신들의 기념일로 정하며 노동자들을 모아 기념한다. 브랜드를 만든 모춘은 말했다. ‘내가 서핑을 좋아했으면 서핑 브랜드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일을 좋아하니까 일에 대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일을 좋아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모베러웍스에 열광했고 그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들은 외친다. ‘스몰 워크, 빅 머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종교다. 삶의 안녕과 축복은 모두 돈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두 손에 돈다발을 쥐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돈을 벌어야만 한다. 그리고 2021년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돈을 쓰는 이야기. 돈을 버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두 손에 돈다발을 쥐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돈을 더 많이 벌어야만 한다. 



돈을 버는 것은 인간의 숙명과도 같다. 특별히 출근이 더 하기 싫은 날이면 만원 버스에서 ‘인간은 매일 만원 버스에 몸을 싫어야 하는 끝없는 형벌에 처해졌구나’라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시지프스에게 감정 이입하기도 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있거나 명품백을 사고 싶은 게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맛있는 식당에서 배불리 먹고 산책을 하다 분위기 좋아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도 다녀오려면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다. 우리가 행복이라는 감각까지 얻기 위한 일상의 비용은 높다. 행복을 포기하더라도 다달이 나가는 월세, 한 끼를 포기한 삼시두끼 그리고 반려묘가 아플 때 바로 동물병원에 데려가 온갖 검사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카드 한도까지 일상을 지키는 최소한의 비용을 우리는 매달 벌어야 한다. 



미래의 안녕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던 노동자들은 ‘욜로’를 외치며 ‘플렉스’했다. 물건으로 꽉 채워진 집을 보자니 미래의 안녕을 저당 잡아 현재를 사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두근거리지 않는 물건을 버리며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로 결심하고 미래를 위해 ‘N잡’을 뛰고 내 주식이 떡상하길 매일 기도한다.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게 됐다. 돈을 벌고 있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동은 고단한지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도 조기 은퇴를 하는 ‘파이어족’이 생겼다. 파이어족이 되려면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한다. 더욱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얘기다.

 


1인 가구든 2인 가구든 4인 가구든 가구를 부양할 정도의 돈을 벌어야만 한다.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부동산, 주식, 코인처럼 일확천금이 생길 로또 같은 가능성이 아닌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고정 수익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일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차피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돈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한다. 유튜브에 들어가도 단 시간에 수익 내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를 올리고 돈을 버는 나만의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는 온라인 강의에 몇십만 원을 지불한다. 제목을 보면 보통 이런 워딩이다. ‘하루 1시간 투자로 직장인 월급 버는 방법’, ‘00으로 수익을 내는 나만의 방법’, ‘상위 0.1% 부자들의 돈 버는 습관’ 등.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한다면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이 좋고, 어차피 일할 거라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좋다. 굳이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를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지금 생각하면 훌륭한 노동자를 키우기 위한 밑밥이지 않나 싶다). 자아가 실현되는 일이라면 일이 싫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부모님에게 노동이란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주말도 없이 일했던 이유를 물으면 자식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 잘 보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적어도 내 부모는 그랬다. 거기에 자아실현이란 없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했나. 나는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꿈꾸면서도 그건 판타지라고 여겼다. 그것 또한 돈다발을 손에 쥐고 태어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했던 노동은 언제나 고된 것이었고 자기희생적이었으며 나의 노동 또한 그럴 것이라 은연중에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 일은 즐거운 것이었다. 취업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어디든 일만 시켜준다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때도 있었고, 꿈꾸던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과로사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고 잠들기 전까지도 일에 대해 생각했다. 취미가 일이고 특기도 일이었다. 나는 일을 좋아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고 다양한 문화가 한데 뒤섞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은 더 이상 생계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해소하고자 한다. 나도 그랬다. 다만 그럼에도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일 해도 통장은 항상 말라있었다는 것이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고 수익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아실현의 길은 험난하고 지난했다. 그럼에도 자아실현이란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그것에서 삶의 의미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방법은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수많은 직업 중 원하는 직업을 탐색하는 것은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이란 말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다. 일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팬데믹을 경험하며 재택근무에 익숙해졌고 프리랜서는 기반이 불안한 근로 형태가 아닌 긱 경제(대안적  근로 형태)에 뛰어든 고용의 선구자들이다. ‘N잡러’, ‘디지털노마드’ 등 이제 직장을 떠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회사를 다니느냐 스스로 회사, 돈을 버는 주체가 되느냐는 이제 선택의 문제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모베러웍스는 자신들의 브랜드 히스토리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노동자들이 열광하는 브랜드 모베러웍스가 만든 책의 이름은 바로 ‘프리워커스’다.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래오래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게 맞는 속도와 방식으로 일할 순 없을까.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프리워커’의 삶을 제안한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노동의 미래로 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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