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산책 (Spazieren gehen)

by 뿌리와 날개

독일 사람들은 산책을 좋아한다.


이곳에서는 산책이 일상의 의식처럼 이미 자리 잡은 것 같다.


서울에서는 바쁜 일상에 치여 숨을 헐떡이며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


바빠 죽겠는데 평일에 누가 한가롭게 숲을 찾아 거닐고, 자연을 만끽한단 말인가.


아스팔트 숲 속에서 이 식당에서 저 카페로,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종종종종 옮겨 다니며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게 당연했다.


하늘을 본다는 것, 나무와 잔디를 본다는 것은 일상과 거리가 멀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한국에서 바쁘게 살던 습관이 남아, 자연을 즐긴다는 발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한 겨울에도 햇살 내리쬐는 한국과는 달리 괴팍하기 짝이 없는 독일의 날씨는 내가 산책하는데 재미를 붙일 수 없었던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일 년 중 8개월은 패딩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날씨에, 산책은 무슨 산책.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산책을 나가는 독일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한 겨울에도 유모차 속에 갓난쟁이 아기를 꽁꽁 동여매 산책을 하는 독일인들을 보며 미쳤다고 생각했다.







싱글맘이 된 뒤로는 혼자 살아내느라 더더욱 시간이 없었다.


가끔 틈이 날 때면 피곤해서 드러누워 있기도 모자랐다.


안 그래도 부족한 휴식 시간에 왜 굳이 힘 빼며 걸어 다니고 싶었겠나…..


나에게 힐링은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고, 조금이라도 덜 뭔가를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년 중 5년을, 엄마 아빠가 입학할 때 가르쳐 준 한 길로만 등하교했다.


기질적으로 고지식한 아이였던 것 같다.


6학년 때 친구 뒤를 따라 처음으로 낯선 길을 통해 집에 가던 날의 느낌이 생생하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뭔가 큰 죄를 짓는 듯한 불안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두려움, 그리고 이 길로 가도 정말 집이 나올까? 싶은 약간의 흥분.


하지만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두려움보다 그 친구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걷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했다.


사람은 그렇게 새로운 일을 해내는가 보다.


시작의 두려움보다 그로 인해 얻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커지면, 우리는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된다.


욕망의 순기능이다.






남자 친구는 정말 흥미로운 사람이다.


지금 내 삶의 꼴이 보여주듯 어딜 가든, 나와 아이가 지금 있는 이곳이 내 집이라 생각하는 나와는 다르게 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 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


살짝 지루할 수도 있겠는데, 싶었던 것도 잠시.


그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늘 Abenteuer(아벤토이어/ 모험)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나와는 달리 열 번 산책을 하면, 열 번 다 다른 길을 찾아 걷는 사람.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동네 산책을 즐기게 된 나는 이제야 우리 동네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그와 손잡고 함께 하는 산책.


1년 넘도록 반복되고 있는 이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고 좋아서 매번 산책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픔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같은 거랄까?


별 거 아닌 일상이 눈물 나게 감사하고, 행복한 그런 것.


나는 그가 참 좋다.


그리고 고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 곁에 서 있는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 고맙다.





애니메이션을 그릴 때 그 작품이 훌륭한지 아닌지 보는 기준 중에 하나가 ‘사물의 그림자를 적절하게 그려냈는가’라고 들었다.


아무리 잘 그린 그림이라도, 그림자가 제대로 따라 그려지지 않으면 생동감이 없어서 움직임이 이상하고 어색하다고.


살아가며 겪는 아픔도 그런 것 아닐까?


일차원적이고, 밋밋했던 삶에 조금씩 음영을 그려 넣는 것.


저마다의 아픔은 그래서, 그렇게 저마다의 삶을 더욱 입체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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