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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그녀들은 왜 보호소에 사는걸까?

현재 보호소 입소자들

1. A



 옆방에 사는 외국인 아주머니.

팔다리가 아파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청소는 제외이고 주로 전화받는 일을 한다.

우리 아기를 특히 예뻐해 주시는 분.



2. Y



A 맞은편 방에 사는 독일 아가씨.

큰 덩치와는 달리 성격은 온순한 편이고 빈이와 자주 몸으로 놀아준다.

가족 간의 불화로 보호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3. B



내가 보호소에 들어오던 날 S와 함께 짐을 옮겨준 독일인 친구.

골초에 아주 게으르고 지저분하다. 당최 먹은  설거지도  하고 오븐도 쓰고는 더럽게 놔둬서 S 자주 흉을 본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새벽에도 클럽 음악을 엄청나게 시끄럽게 틀어놔서 원성이 자자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주 나쁜 여자 같지만 사실 순한 성격에 웃음 절제에 문제가 있어서 맨날 실실 웃고 다니는 재밌는 친구다.

역시 가족 간의 불화로 보호소에 와있다.







4. S



30 초반 외국인 아가씨.

아주아주 깔끔하고 근면 성실하다. S와 나는 같은 화장실을 쓰고 있는데 우리 화장실은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남이 먹다 남은 설거지도 자주 하고 아무튼 보호소 사람들 중에 가장 마음씨가 고운 사람.

지나가면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직업을 잃고 보호소에 와있다고 했다.



5. St



국적 미상.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른단다. 아버지를 모른다고..

정말 예쁘게 생겼는데 엄청나게 뚱뚱하다. 고도 비만의 외모. 그리고  성깔 한다. 지난번에 누가 자기 음식 먹었다고 욕을 욕을 얼마나 하던지.


그리고 무개념. 아이들이 있는데도 그냥 담배를 피운다. 내가 주의를 줬더니 Mir egal( 알바 아냐) 이랜다.  다했지.



6. T



아마도 러시아 출신인 것 같은데 50-60대 정도 된 것 같다.

독일어는 전혀 못하고 부티나게 생긴 금발머리의 엄청 깔끔한 할머니. 근데 자기만 깔끔하다.


S는 다른 사람을 위해 깔끔한 성격을 활용한다면 이 할머니는 자기 전용 컵, 전용 도마, 전용 냄비 등을 쓰며 철저히 본인만 가꾼다.

늘 예쁘게 화장을 하고, 선글라스를 쓰고, 예쁜 옷을 입고 외출한다.







7. An



지난주에 들어온 외국인 아기 엄마. 독어 실력은 나와 비슷하고, 4 아이와 돌쟁이 아기와 3층에서 지내고 있다.

남편이 알코올 중독으로 일도  하고 몇 년 째 문제가 있어 이혼을 결심하고 들어왔다고 했다.


절대 다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그동안 충분히 힘들었다고 했던  지난주인데..

남편이 매일 연락을 하며 하루는 협박, 하루는 애원 등으로 매일 말이 바뀌는데도 점점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옆에서 보기 안타깝지만 어쩌겠나. 자기 인생인 걸.

유순한 성격 같던데 부디 힘든 시기를 잘 버텨서 아이들과 새로운 삶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8. J



외국인이며 젊은 아기 엄마.


어린 딸을 유겐트암트에 뺏기고 임신 초기의 몸으로 이번 주에 새로 들어온 여자다.

코에 피어싱을 하고, 진한 화장에 밥 대신 홍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운다.


마약 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고, 협박하는 남편을 피해 보호소에 들어와 있다. J 아이를 뺏긴 얘기를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같이 울었다.  1  시간 정도만 아이를 보여준다는데 얼마나 잔인한가.


그런데 나중에 듣자 하니, 유겐트암트에서 아기를 뺏아갈 때는 그 엄마도 같이 마약에 손을 댔거나 전과가 있거나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뺏는 거지, 절대 쉽게 아기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마 J는 본인에게 유리한 말만 했던 것 같다.



9. 나



알다시피 바람  독일인 남편에게 하루아침에 버림받고 15개월 아들과 보호소에 들어와 이혼 소송 중인 한국인 엄마.


보호소 내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밝고 적극적으로 살고 있다. 고 생각한다.

개구쟁이에 소리 지르는 게 취미인 아들 덕에 보호소가 시끌시끌하지만 나름 우중충한 보호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는 중.이랄까?







첫 주는 참 낯설고 어색하던 보호소.

둘째 주부터 조금씩 익숙해지더니 3주 차인 지금은 어느새 정이 들었다.



특히 An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그녀와 장도 같이 보고, 밥도 같이 해 먹고, 아이들끼리 같이 놀리고, 놀이터도 같이 가고..

정말 좋다.


 

지금 이 생활,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다.

마음 편하게.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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