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선택

by 뿌리와 날개

10년 전 이 맘 때 나는 선택을 했다.


내 나라에서 사회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할 것이냐, 아니면 사랑하는 남자의 나라로 떠나 가정을 꾸릴 것이냐.


어리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 삶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옵션이 있지만, 그 다양한 경우의 수들 중에서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


더 멀리, 더 다양하게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나이 든 이들이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길이 아닌 것 같은 무모한 길에도 발을 내디뎌 결국 새로운 길을 내버리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어리다는 것은 어쨌거나 그런 것이었다.


일단 취직을 하고 장거리 연애를 하며 우리의 관계가 발전해나가는 것을 조금 더 지켜본다거나,


결혼이 아니라 유학의 형태로 상대의 나라에 넘어가 조금씩 환경을 익혀 나가며 독립적으로 그 나라에서 자리를 잡는다거나,


상대가 내 나라로 넘어와 내 나라에서도 함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 내지는 제3 국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 등등….


지금에 와서는 끝도 없이 보이는 이 다양한 선택지들을, 십 년 전 나는 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 관계가 3년이 채 안되어 끝날 수도 있기에 내 모든 것을 그와의 관계라는 불확실성에 걸기보다는 변하지 않을 “나 자신”에게 투자하며 서로가 한 방향을 향해 나란히 걷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만약 그랬더라면 오히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관계가 그 지속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모종의 가능성 같은 것조차 나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왜 나는 그토록 어리석었던 것일까.


왜 나는 그토록 무모했던 것일까.


그때 그 상황에서 지금의 나라면, 이번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꼭 십 년이 지난 뒤 그 당시와 같은 상황에서 같은 고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다시 한번 그런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이번에야 말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까?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나 역시 의도하지 않았지만 짓궂은 신은, 운명은, 삶은, 나를 다시 같은 자리에 세워 놓았다.


재미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더니 개인의 삶도 반복되는 것인가.


같은 일이 반복되다니, 그렇다면 나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말인가.


아닌데, 나는 충분히 겪었고, 배웠고, 나아진 줄 알았는데….


왜 나는 다시 이 기로에 서 있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삶은 삶대로 흘러가고 있고, 나는 그저 발맞춰 걷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너무 수동적인 삶의 태도일까, 아니면 겸손한 삶의 자세일까.








혹자는 말한다.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니라고.


그때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더 이상 그때의 네가 아니라고.


과연 그럴까?


나는 이토록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결국 십 년을 돌아 다시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아 때로는 무력감마저 들기도 하는데….


정말 다른 것일까?


혹자는 말한다.


과거의 상처에 발목 잡히지 말고 당당하게 나아가라고.


성가시다.


나의 모든 경험과 배움과 성찰과 지혜가 때로는 뭇사람들에게 단순히 과거의 상처와 그 짝꿍인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치부되어 한 카테고리 안으로 분류되는 것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인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릴 수 있지 않을까?


그때의 그 선택이 정말 틀리긴 했던 것일까?


어쩌면,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쩌면….


어쩌면….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았던 것일 수도 있을까?








십 년 전 나는 내가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적어도 그때보다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무언가를 배웠고, 그래서 안다고 믿는 것이 과연 그렇게 오만한 태도였을까?


나는 이제 그 믿음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도통 모르겠다.


과거에는 단호히 틀렸다고 믿었던 그 선택마저 옳고 그름이 모호해진다.


결국 나는 여전히 어리석은 사람인 것일까?


아니면, 같은 자리에 여전히 같은 고민으로 서 있을지라도 십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보다는 현명해진 것일까.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더 어리석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때의 나는, 내 선택에 대한 의심 대신 굳은 믿음이 있었으니까.


나이를 먹으면 조금 달라질 줄 알았건만, 젠장.


그 때나 지금이나,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것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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