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한없이 작고 보잘것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바로 그렇다...
직업교육만 하게 되면 어쨌든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을 줄 알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대학공부든 직업교육이든 3년이 걸리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어쨌든 대졸자 아래에 위치한 직업교육보다는 한 단계 나은 대학 진학은 어떨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직업교육이 대학공부보다 쉬운 건 전혀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대졸자와 직업교육 이수자는 초봉부터 차이가 난다고 하니...
하지만 싱글맘에게 대학교육은 사치였다.
내가 지금 정부로부터 받는 돈은 실업급여인데, 이 나라에서 대학생은 실직이 아니라 일종의 직업이기 때문에 대학을 가면 생계가 막막해진다.
고교 졸업생의 86%가 대학을 가는 한국과 다르게 대학 진학률이 15% 내외에 머무르는 나라인 만큼 대학생에 대한 인식과 대우도 한국과는 아주 다르다.
대학에 가는 순간 정부 지원금은 끊기고, 그렇게 되면 나는 아기를 키우면서 돈을 벌어 집세와 학비를 내고 그 밖의 생활비를 스스로 조달해야 하며, 대학에 나가 독일 학생들과 독일어로 경쟁을 해야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시간은 길어야 9시간인데 차도 없는 내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려면 앞뒤 한 시간씩 빼고 7시간 안에 대학 수업과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에는 살림과 육아도 해야 하고... 나 혼자서.
대학 다니며 할 수 있는 반나절 아르바이트가 몇 개나 있으며, 그중에 출퇴근이 용이한 위치에 있는 자리는 또 몇 개일 것이며 설사 찾았다한들 하루 서너 시간 근무로 벌면 얼마를 벌겠는가...
아이가 아픈 날은 일도, 공부도 당연히 못한다. 하..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정부보조가 끊기면 그냥 생활비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그동안 면제가 되었던 각종 고지서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TV 수신료, 보험료, 아이 유치원 급식비 등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하나씩 보면 몇십 유로에서 백 여 유로밖에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다 모이면.. 게다가 내가 버는 금액 대비 지출액으로 본다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닌 것이다.
거기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돈을 벌면, 세금 역시 내야 하는데 그러고 남은 돈으로 내야 할 것들을 내고 나면 나랑 빈이는 옷 사 입는 건 둘째치고 밥도 굶으란 소리다. 훗...
그렇게 너무 밥벌이에만 연연하지 말고 어느 정도는 네가 원하는 일을 찾으라던 친구마저도 내 말을 듣자마자 '누군가 금전적 지원을 해준다면 고민해 볼 일이지만, 사회복지제도를 벗어나 공부를 시작하는 건 정말 위험하다'라고 말렸다.
한 학기도 아니고 휴학 없이 공부해도 6학기인데, 독일 애들도 6학기 안에 칼 졸업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일과, 육아와, 공부라... 몇 년이 걸려 끝날지도 모르는 공부를 그것도 외국어로 시작......
학자금 대출도 있지만, 그것도 사정이 복잡하다. 나이 제한도 있고, 심사도 까다롭고...
밑져야 본전이니 알아보기야 할 테지만 된다 한들 지금 내가 책 몇 자 보는 데도 아이는 책 덮으라고 난리다.
꼴난 독일어 수업 다니며 B1 공부 좀 하면서도 '아.. 하루에 딱 5시간씩만 아이 없이 책상 앞에 앉아서 원 없이 공부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굴뚝같은데 그 어마 무시한 대학 수업을 따라간다라...
내가 대학을 간다면 아이의 희생도 분명 필요하다.
독일인 싱글맘들도 대학은 함부로 못 간다고 들었다. 대학에 다니는 싱글맘들은 열이면 열 친정 가족들이 곁에 있다고.
아이가 있으니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돈이든, 가족이든 둘 중에 하나는 있어야 가능하다.
그 모든 것을 투자해가며 긴 시간 공부를 마칠만한 가치가 있는 "과" 여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졸업 후에 돈을 잘 번다면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 테니...
그러니 독일에서 대학을 가려거든 이공계로 가라고 하는 것이다, 다들...
하지만 내가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것은 아동 교육학이다. 밥벌이가 아닌 순전히 내 개인의 욕망이자 고고한 자아실현의 꿈...
그래서 나는 여름부터 진작에 대학 진학의 꿈을 버리고 직업교육으로 마음을 굳혔던 것인데...
얼마 전 직업교육에 필요한 서류 때문에 잡센터에 갔다가, 내 담당자가 '대학도 나왔으면서 무슨 직업교육이냐!'며 웬만하면 지금 가진 대학 졸업장으로 취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소개받아 찾아간 대학 내의 직업상담자에게서 뜻하지 않게 대학 진학을 권유받았다.
해리포터 작가도 애 딸린 이혼녀였지만 생활고에 굴하지 않고 꿈을 찾아 쓴 원고로 대박이 났으니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요 며칠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꿈을 찾아 사회복지제도를 박차고 나오기에 현실의 벽은 높다 못해 잔인했다.
정말 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룰 수 있을까?
독하게, 악착같이..?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희생하면....
먹고살아야 하니 돈은 안 벌 수 없고, 목적이 공부이니 공부도 안 할 수 없다. 그럼 남은 건 아이니까... 아이를 팽개친다면 가능할지도... 더불어 요리와 살림도...
몸이 하나인데 저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더구나 도와줄 가족 없이.
안 그래도 마음이 쓰린 와중에 오늘 아는 중국인 언니로부터 또 다른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직업교육이라고 다 같은 돈을 버는 게 아니니 직업교육으로 벌 수 있는 돈과 지금 받고 있는 돈의 액수를 잘 비교해보고 지금 받는 돈보다 적은 액수이면 일을 하지 말라고......
나는 직업교육을 받으면 당연히 먹고 살만큼 돈을 버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외국인 이민가족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 언니는 독일살이가 오래된 만큼 외국인으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보았고 그래서 누구보다 독일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알고 있다.
독일인 남편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살던 때의 독일과, 외국인으로서 맨 몸으로 부딪혀 살아남아야 하는 독일은 완전히 달랐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