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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Oct 25. 2022

제법 미니멀리스트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들에 작별인사를.

그냥 쌓아만 놓지 않기


요즘은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할 때, 제법 쓸만한 물건은 당근 마켓에 내놓곤 한다. 사람들이 1,000원에라도 사간다면, 그들은 필요한 물건을 얻어 좋은 것이고, 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얻었으니 좋으니까.


최근엔 옷장 속에 묵혀뒀던 옷들을 3000원, 5000원에 팔았다. 한 옷은 삼촌이 물려주신 회색 후드티인데 나의 퍼스널 컬러와 맞지 않은 듯하여 팔았고, 다른 옷은 휠라의 후리스인데 이젠 취향에 맞지 않아 팔았다.



그리고 파란모자도 팔았다.



열심히 당근 마켓에 판매할 물건들을 모색하다 보면 문득 집에 안 쓰는 물건들이 생각보다 많음을 느낀다. 안 쓴 지 1년이 넘은 듯한 물건들을 버리기 아깝고, 언젠가는 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굳이 두고 동거해왔다. 그러는 사이 방은 빈 곳 없이 채워졌고, 방 안에서 나의 행동반경은 좁아졌다. 사실은 누가 몰래 와서 가져가도 모를 정도의 물건인데도.


어제도 이와 비슷한 의문을 안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멜론에 들어가 ‘좋아요’를 누른 음악만 들었을 때였다. 내가 직접 ‘좋아요’까지 누른 것이기에 멜로디가 잔잔해서 부담 없이 듣기 좋았다. 그렇게 한참 몰입하며 듣고 있는데 어랏..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노래를 발견했다. 저번에도 느꼈는데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노래. 좋음의 유효기간이 다한 노래였다. 귀찮아서 그 간단한 '좋아요'를 취소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며 '좋아요'를 취소했다.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다시, 지금 좋아하는 노래들로 가득 찼다.






당연하게 쌓이는 것을

당연하게 비워가기


방과 플레이리스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나에게는 이제는 관심사가 아닌 블로그 이웃과 인스타 팔로우의 목록, 오며 가며 추가됐으나 몇 년째 연락하지 않는 카카오톡 프로필, 좋아하는 작가가 썼기에 일단 구매했지만 서랍에 쌓아놓기만 한 책들이 있다. 이제 비우기 시작해서 그런지 불현듯 쌓아오기만 했던 것들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동아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이제는 TMI가 된 상대의 정보를 굳이 접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본다.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 사실 서로를 아프게 하는데 그저 쌓아온 시간과 의무감에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은 생각해 본다.


어떤 미니멀리스트가 물건 한 개를 살 때 물건 한 개를 버리는 원칙을 가진 것은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냥 살다 보면, 삶은 쌓인 것들로 가득 차게 되니까. 그러는 사이 나의 공간의 여유는 줄어드니까.


잘 들이는 만큼 잘 비우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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