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워홀을 갈까?

모르는데 가는 나를 위해 쓰는 글

by 꿀별

집에 캐리어가 배달 왔다.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28인치 5.2Kg의 캐리어였다. 원근법을 적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커보이는 캐리어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쳤지.. 무슨 생각으로 워홀을 간다고 했지?'


26살이 끝날 무렵, 연고도 없는 캐나다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워홀'이라는 개념을 안 순간부터 매해 다짐했던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다.


분명 원래 집에 있던 캐리어도 같은 28인치였는데, 왜 이번에 주문한 캐리어는 이리도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 왕 큰 캐리어를 눈앞에 두니 앞으로 생활할 1년의 무게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이 2개를 끌고 다닐 나의 허리가 벌써부터 가엾게 느껴졌다.




어쩌면 20대의 무모한 도전

떠나기까지 이제 5일도 채 남지 않았다. 가서 어떤 일을 할 지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이 취업난에 다녀오는 것이 맞을까? 다녀와서 취준 시작하면 28살인데 너무 늦지 않을까?!'

28살이 늦었다고? 시기적으로 많은 고민이 들 것 같긴 하지만 늦었다고 보진 않는다.


'그 사이 친구들은 제 짝을 만나서 결혼하고, 나는 혼자 남으면 어떡하지?!!'

한국에서 26년 열심히 살았지만 제 짝을 만나는 건 여기 오래 산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밴쿠버에서 돈 다 떨어지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면?'

집에 전화해서 비행기 값을 빌리고 귀국하면 된다.



다행히 대부분의 걱정들은 해결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이제 와서 이 고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 안다. 왜냐면 나는 이미 신체검사를 완료해 워홀 비자를 발급했고, 밴쿠버행 편도 비행기표를 끊었으며, 1년 치 해외 거주 보험과 유심을 신청했다. 가족들에게 송별회를 받았고, 편집장님께서는 다음 글을 기대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심지어 최근에 만난 친구는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녀온 너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돼!"


아아 이렇게 환희와 함께 결정을 지지해준 사람들이 예전엔 없었는데, 인생 참 잘 살아왔다! 그러니 이젠 진짜 가야만 해!


왜 나를 안 말리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면 어떻게든 된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켠은 불안했다. 이 불안한 마음을 몸은 아는 것인지 출국 일주일 전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1년은 다녀올 거라 말했지만, 혹시라도 내가 일찍 귀국해 꿀별 한국 출몰설이 돌더라도 부디 비웃지 말아 준다면 좋겠는 마음뿐이었다.


가장 두려운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밴쿠버에 도착한 즉시의 삶은 아니다. 오히려 갔다가 한국에 온 이후의 삶이다. 1년이면 생각보다 긴 시간, '그 사이 나의 한국 친구들은 취업도 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을까', '다녀오고 나서 취업은 잘할 수 있을까' 같은.


하지만 나에게 워홀은 평생의 숙제와 같은 일이었다. 인생에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것 '해외에서 살아보기'. 은연중에 정답이 정해진 것 같은 한국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문화를 접해 나의 가치관을 도끼로 파괴하는 일, 무엇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책임질 것이 가장 적을 때 자유롭게 살아보는 경험.




경험해야 아는 게 삶이라면

스피노자는 말했다.


나는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


나는 이 말을 '다양한 경험의 필요성'으로 이해했다. 대학 때도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직 목말랐다. 뭔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았고, 새로운 사람과 가치관을 마주하고 싶었다. 가장 생각이 말랑할 때 마음껏 자극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내던지고 싶었다.


특히 커리어적으로 깊게 쌓기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세상을 넓게 맛보고 싶었다.


물론 스피노자 선생님께서 내 워홀을 응원하고자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만 내 선택의 정당성은 이렇게 내릴 수 있겠다.


더 오래, 단단히 가기 위한 경험 뷔페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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