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된 외노자의 삶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워홀러들이 집을 구한 후 할 일은 바로 ‘잡’을 구하는 것이다. 운 좋게 도착한 지 일주일 정도만에 집을 구했고, 이젠 잡을 구할 차례였다. 캐나다에서도 피할 수 없는 먹고살기 위한 구직활동의 시작이었다.
WORK BC라는 구직자들의 구직활동을 지원해주는 센터가 있다. 이곳에 가면 생면부지의 워홀러들도 이력서를 첨삭받고 인터뷰를 준비할 수 있다. 이사 후 나는 WORK BC로 향해 서버 이력이 적힌 나의 이력서를 첨삭받았다.
보통 구직활동은 Indeed라는 구직 사이트를 활용한다. 하지만 캐나다에는 여전히 직접 이력서를 전달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제는 많이 사라지는 추세라지만 집에서만 있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Indeed로 지원 후, 직접 제출할 이력서 20장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전 집 근처에서 봤던 'hiring'표시가 붙인 가게에 들어갔다. 내 인생의 첫 대면 지원이었다. 내 서류를 받은 서버는 매니저에게 바로 전달을 해주었고, 그 자리에서 대략 3분도 안 되는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래도 명색의 인터뷰인데 매니저는 바텐더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로 내게 질문했고, 매장의 커다란 음악소리 때문에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Yes'를 외쳤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채용됐다.
우와!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이렇게 쉽게 고용이 됐다니 야호~! 신난다! 심지어 외국인 코워커로 가득한 로컬잡이었다. 손에는 19장의 이력서가 남았지만 일단 채용이 되었으니 바로 집으로 갔다. 이제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팀홀튼에 들려 아이스 카푸치노와 달달한 도넛을 사 먹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였다.
기대를 안고 출근을 했다. 접시를 서빙하며 손님들과 영어로 소통할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는데, 정작 내가 시작하게 된 일은 감자튀김을 튀기는 것이었다. 나는 서버가 아닌 주방쿡으로 입사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출근하자마자 감자튀김을 튀기고, 베이컨을 볶고, 고기를 볶아댔다. 중간중간 일을 설명해주긴 했지만 별다른 교육과 분업은 없이 이 일하다 저 일, 저 일 하다 이 일을 반복했다. 밖에서 봤던 캐나다의 가게들은 모두 한가하고 여유로웠는데 막상 주방 안은 달랐다. 심지어 밴쿠버에도 한국의 배달의 민족처럼 다양한 배달 서비스가 있어 홀과 배달, 픽업의 주문은 쉬지 않고 들어왔다. 일을 하면서 이 일을 오래 하지 못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첫날에도 여러 고비가 있었으나 우선 조금 더 다녀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음날 출근을 했다.
이튿날 출근 후 나는 이 상황의 문제를 더욱 직시할 수 있었다. 일이 어렵고, 바쁜 매장을 떠나 코워커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바 너머에서 손님들이 종종 문의하는 말, 직원들이 요청하는 말들은 순식간에 스쳤다. 매장이 바쁠수록 사람들의 말은 빨라졌고, 또는 웅얼거렸다.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입모양까지 확인할 수 없으니 눈치를 보며 일을 진행했다.
총체적 난국에서 소스를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 와중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짤렸다. 분위기를 보며 어느 정도 짐작을 했어서 크게 놀라진 않았다. 잠깐의 인터뷰만큼 해고의 인터뷰도 빨랐다. 매니저와 대화 후, 옷을 두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배가 고파 서브웨이에 들려 빵을 샀는데 기운이 없어 피클을 빼 달라는 소리도 안 나왔다. 그리고 잠깐 울었다. 짤린 것 그 자체보다는 이 서러운 마음을 안고 누군가에게 위로받을 수 없는 그 상황이 서럽게 느껴졌다. 당장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위로받고 싶어도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방에 들어와서 누워있는데 머리에서 감자튀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종종 미디어로 전해 들었던 ‘워홀로 외국에 나가 일을 했다’와 실제로 ‘내가 가서 직접 일했다’는 달랐다. 슈슉 지나간 정신없는 하루에서 워킹 홀리데이의 '워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삼 알게 됐다. 나는 여기 그저 휴양을 하고, 서비스를 제공받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일을 하러 왔다. 그 사실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영어도 잘 하지 못하고, 주방 일도 어려워하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누군가 '그러게 외국 나가서 돈 버는 게 어디 쉬울 줄 알았냐'라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엔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 괜히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