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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Feb 04. 2020

불확실한 인생에서 필요한 한 가지

나만의 루틴은 돛대가 되어

인생에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내 인생은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정도다. 물론 중간중간 목표한 바를 이룬 적은 있지만 항상 그 다음의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난관은 내가 예상했던 성장과 추억을 망가뜨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계획에 굉장히 회의적인 편이다. '어차피 해도 안돼.. '의 느낌보다는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변수들이 너무 많으니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는 거다.


그런 나지만 올 초엔 약간의 들뜸으로 1월을 보냈다. 2월에 베트남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호치민에 가서 아시아 학생들과 교류하고, 현지를 체험할 수 있는 정말 드문 기회! 이걸 가고 싶어서 작년 2학기부터 글로벌 뭐시기 체험도 하고, 갈지 말지 고민하고 돈도 모으고, 심지어는 유심까지 사놨다. 게다가 가서 교류할 땐 어떤 한국 과자를 줘야할 지 고민하며 오리온 초코파이의 인절미맛도 사서 먹어봤다. 그리고 출국 일주일 전, 메일이 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베트남 일정 및 APYE 관련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아..

눈물 흘릴 지 콧물 흘릴 지 고민하다 모두 흘리기로 했다.


이로써 내가 작년부터 갈지 말지 고민하며 돈계산했던 시간들과 기대에 품었던 지난 날의 꿈들은 한통의 메일과 함께 흩어졌다.


사실 나 역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베트남일정 취소를 문의하기도 했다. 일단 해외에 나간다는 거 자체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을 전적으로 높이는 일은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4학년이고, 학교를 통해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즐길 시간이 얼마 안남았기에 (거기다 취소예약금이 상당했기에) 그냥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결국.. 결국.. 이렇게 취소가 되어버렸다.


막상 이렇게 취소가 되니 참여도 못한 채 끝나 버린 일정들이 아쉬울 따름이다. 정말 정말 정말루- 아쉽다. 슬퍼요..슬퍼..


허탈한 마음을 안고 침대에 누워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하긴 내가 열심히 준비를 안했었으니.. 이건 애초에 나의 기회가 아니었던 거겠지...', '거기 가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이제야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나 싶었는데..','유심은 환불 안되겠지..? 아까운 내 돈...'


지난 날에 대한 후회가 가장 먼저 머릿속을 채웠다. 그렇게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APYE에 진짜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들이 생각났다. 첫째론 APYE에 참여하면 1일 1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싶었다. 둘째론 다음학기에 미국인턴을 나가고싶은데 그때 적을 말들을 늘일 수 있겠다는 기대였다. 그래, 나는 지금 내 스펙 한 줄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이렇게 무거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 일상의 루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확정된 상황이어도 언제 어떤 장애물이 생길 지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마치 나의 경우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그런데 그런 큰 계획이 하루아침에 취소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만 남는다. 기대했던 감정들과 상상들도 오롯이 나의 몫이 된다. 그럼 이 일만 예외일까? 앞으로 내 인생엔 변수가 없을까? 아니!!! 그건 NEVER EVER 이다. 정말 많은 변수가 있겠지. 그걸로 놀라고 쓰러지고 지치기도 할 거다. 그럼 그때마다 이번 행사취소처럼 넋놓고 쓰린 마음을 달래야 하는 가?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거 같다. 이번 경험이 그랬듯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기로 했다. 불확실한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의 루틴을 말이다.

그리고 이걸 규칙적으로 지키기로 했다. 적히진 않았지만 그 중 하나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약간 개그우먼 송은이가 불확실한 방송계의 대안으로 팟캐스트를 떠올린 것처럼 말이다.


그럼 내가 적어도 이번 일처럼 멍하니 하늘만 처다보진 않을 거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슬픈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그 다음날 허탈한 마음을 털고 브런치에 올렸던 글(인생최대 몸무게 후기)이 조회수 4만을 넘겼으니 말이다. 내 인생에 역대급 조회수여서 신기했다. 내가 올리는 글이 나를 위로해주는 구나- 싶다.


이 루틴이 나를 완벽하게 지켜주진 못할 거 같다. 기대를 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다는 거 자체가 기대돼 미치겠다는 증거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 조금은 덜 흔들리는 돛대의 역할은 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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