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와 있는 글을 읽어보면 참 술술 넘기기 쉽다가도, 어느 부분에 가서는 산산히 부서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관성으로 살아가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우주에서 근근히 하지만 가끔은 환희를 경험하기도 한다. 가급적이면 나의 이야기보다는 양지바른 창가에서 천천히 조는 고양이처럼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며, 세상을 보는 조근조근한 시선을 던져보는 것도 애틋한 일이다.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젊음은 과연 무엇이었나 하고 물어본다.
경험은 극복의 역사라고 했던가. 개꼰대로 어렵게 산을 타는 어린 사람들에게 훈계를 하려고 하던 것은 아니라고, 도움을 주고 싶어 던진 말이라는 것도 이젠 집어치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모를 이해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이해와 경험의 치가 이제는 어린 나와 이별을 하고, 나의 어린 부모와 조우를 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떤가, 어쩐지 울음이 훌쩍 나왔다면 제법 근사하게 나이를 드는 중이라 생각해도 되겠다. 어쩐지 말꼬리를 잡는 것 같지만, 근사하다는 말은 내가 참 듣기에도 좋은 '적당한 언어'이다.
조용히 '근사하다'는 말을 나의 언어로 남겨보기 위한 연습을 해 본다.
40대에 무언가 이루고 싶었던 것을 이루는 때라고 하기에는 나의 갈길은 묘연하고 걸핍하면 나 알량한 자존심으로 그 근처를 살짝 건드렸을 때 파르르 하고 성질이 난다. 그 스위치도 어찌나 견고하던지, 어디 낡은 타자기 처럼 버튼만 많아져서 누그러지기 보다는 눌러지기에 바쁘다.
가만히 느껴보는 가을 바람에 고개를 기울이다보니, 나의 버튼은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도 미지근한 생리통처럼 왔다 갔다 해서,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싶다가도 하루 정도 지나가면 괜찮을 것 같아 굳이 몸에 약을 넣지 않아보듯. 얼마전 나의 모습도 그러했다.
이 곳의 날은 한국의 날과 아주 같지는 않아서 아마도 슬폇 봄 바람이 느껴지다가도 스타카토처럼 채워지는 추위에 포근함으로 고개를 돌리던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방에서 자고 있던 나를 가끔 찾아오는 손님은 어린 아들이었다. 악몽을 꾸거나 가끔 엄마 냄새가 그리워 질때면 새벽에 불쑥 이불안을 찾아오는 강아지 같은 손님이었다.
함께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품에 안고 잠이 들었던 그런 날, 아이가 사시 나무 떨듯 몸을 부르르 떨어 아마도 동물적인 엄마의 감이었는지 불을 켜고 가만히 들여다 보니 아이 눈의 흰자가 뒤집어져 있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사지를 뒤틀고 있었다. 동공은 찾아볼 수 없는 눈은 뒤로 돌아가 있고 입술은 파래져 있었다.
우리 모두 한번 정도는 나의 죽음과 가족의 죽음을 생각정도는 하고 살았을 것이다. 언제 엄습해 올지는 모르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래도 초연한 척이라도 해보려고 애써 다가가지는 못해서 이해해 보는 척은 해 보지만, 천국에 다녀와서 서술해 주는 이가 없듯, 그 마저도 죽음은 가깝지만 행방이 묘연하다.
고속도로에서 잠깐 졸음 운전을 하다가 앞에 차를 박으려던 차에 '이러다 죽겠구나' 싶지만 그 죽겠구나는 뜨거운 주전자에서 찻물을 우리기 위해 그 옆에서 다소곳이 손잡이를 잡고 아슬아슬하게 물을 따르는 모습과 맞닿아 있다. 아슬아슬했지만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런 느낌이었을까.
아니다 그 보다는 조금 더 강렬한 것 같았다. 색으로 치면, 시뻘건 빨강에 열기를 식히려고 파랑을 던져 버리지만 차도가 없는 느낌.
침대에서 아이를 끌어내려 바닥에 눕혀 보려 애썼지만, 굵은 통나무처럼 강직된 팔과 다리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고, 억지로 모로 눕힌 아이의 손가락은 하나하나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엇을 가리키고 싶었던 것일까? 엄지는 앞을 중지는 뒤로 새끼 손가락은 다시 앞으로. 발가락은 창백한 채로 손가락과 음절을 맞추며 내키는대로 향하고 있었다. 코에 손가락을 대보니 숨은 쉬는 것 같았지만 아이는 여전히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들었던 것 같다.
'엄마 사랑해요. '
아, 얼마나 마조히스트 같은가.
잠깐 생각했다. 수초간의 짧은 찰라였던 것 같은데.
바로 이 순간에 아이를 잃게 된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쉽게 아이와 같이 죽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존재는 나의 인생에 어떤 존재인가. 내가 그래도 저 아이의 엄마라는 인간인데, 그럼 엄마는 뭘하는 사람이어만 하는가.
급히 911을 부르고 응급차에서 사지가 묶인채 응급차에서 정신이 들어가는 아이는 몸에서 액체를 내린채로 건조한 종이마냥 베일 것 같은 쉰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고 밖에서는 영어를 쓰던 차라, 응급구조대원이 발악을 하는 아이를 안정시키고자 설명을 해도, 안중에 없는 아이는 결국 내 목소리를 듣고 울부짖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냐고.
글쎄다. 아가. 엄마도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이다.
의사는 Seizure라고 했다. 어릴 적 듣던 말로는 간질이라고 하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뇌전증이라고들 쓴다고 했다. 10년을 넘게 같이 부대끼며 살아온 아들에게 슬몃 배신감이 들었다. 이건 너무 갑작스럽네. 힌트라도 주지.
적군의 목을 쳐내듯, 해야 할 일을 무자르듯 아니 가끔 칼자국을 내며 살아온 인생에 또 하나의 숙제가 생긴 느낌이랄까.
어려웠다.
뭐 지금도 난제이기는 하지만, 검색창에 뇌전증을 쳐보니 급사한 케이스도 있고 난치성도 있고 약물치료도 수술도 참 다양한 케이스가 있었는데 그간 두부같은 삶은 아니었던 지라 가장 어두운 면을 먼저 들쳐봤던 것도 사실이다. 수영하다가 증상이 있어 그대로 물에 가라앉아 익사한 경우, 요리하다가 쓰러져 끓는 물에 손가락이 없어진 사람, 자전거를 타다가 낙사하기도 하고 운전을 하다가 무의식 상태로 다른 차를 치고 본인도 사망한 케이스도 여럿 보였다.
그때야 머리가 쭈뼛하고 섰다. 항상 댕댕거리며 옆에서 엄마를 찾던 아들이 포토샵처럼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때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 엄마 사랑해요"
아이는 그 때 나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나보더라고 억지웃음처럼 지어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엄마에게 남기고 싶은 말.
주어진 삶을 모두 영위하고 살아갈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어느 순간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 코 끝의 숨을 거두게 될 때까지는.
아이에게 근사한 삶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내 눈에만 근사한 생이 주는 선물을 떨어지는 잎새를 주워가며 들숨과 날숨을 느껴보고 싶었다.
한번이라도 제대로 쉬어볼 수 있는 숨은 어쩌면 영생이고, 삶이 그렇게 나에게 들러붙어 알아가기를 바랬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